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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O Jul 24. 2021

직장에도 시어머니가 있다.

직장 며느리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조직생활과 시집살이의 공통점


시집살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있었다. 당하는 사람의 비율과 정도가 달라졌을 뿐 지금도 있다. (막장 드라마의 주요 소재이기도 하다) 시집살이의 시작은 보통 ‘너도 시집을 왔으니, 시댁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따라와 줘야 한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당연히 며느리로서는 그것조차 부정하지는 못(안)한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시어머니는 시댁의 분위기라는 핑계로 며느리에게 일방적 갑질을 자행한다. 시집살이는 대부분 시어머니(갑)가 며느리(을)의 무차별적인 언어적(때로는 신체적) 폭력 행사로 행해지며, 그 패턴은 대략 이렇다.


1.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모든 언행에 대한 논리를 원천봉쇄 해버린다: 직장에서 돈을 벌면 왜 집안일에 소홀하냐고 갈구고, 직장을 안 다니면, 우리 아들 뼈 빠지게 돈 버는데 넌 뭐하냐고 갈군다.   

  

2. 며느리의 살아온 환경, 가치관을 깡그리 무시해 버린다: 구시대적인 남존여비 사상에 찌들어 있던 시어머니로서는 금지옥엽 외동딸로 큰 며느리여도 그냥 ‘계집년’이다. 며느리가 ‘저도 우리 집에서는 귀한 딸인데요.’라고 하면, ‘어디 요즘 것들 무서워 살겠냐?’라고 펄펄 뛴다.     


3. 며느리가 돈, 시간, 정성을 들여도 감사는 고사하고, 무시한다: 며느리가 신경 써서 예약한 고급 음식점에서 시어머니를 대접하면, ‘넌 돈 귀한 줄도 모른다’, ‘너 편해지자고 밖에서 먹자고 했냐’고 핀잔을 준다.


그런데, 시집살이는 며느리만 당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직장생활에서 조직이 바뀌면서 새로운 리더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특히 이직했을 때)에 시집살이가 아닌 ‘직장 살이’를 하는 며느리로 사는 삶이 시작된다. 패턴도 위와 거의 같다. 우리 회사의 분위기,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시작하지만, 이후 직장 내 시어머니(일부 리더, 선배)는 며느리(신입, 경력 사원)의 모든 것(경험, 역량, 시간, 정성)을 무시해 버린다.


조직 Align으로 포장된 보상심리


보통 비합리적인 제도, 관습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여기에 보상심리가 관여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한국 특유의 똥 군기, 꼰대 문화가 대표적 사례이다. 본인이 당할 때는 ‘나중에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선배가 되면 어김없이 직장 시어머니로 변신한다. 직장 시어머니의 보상심리는 ‘선배나 리더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따라야 이상적인 조직이다’라는 말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직장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부속품, 하인, 노비, SCV 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직장 며느리들은 직장에서의 성장은 고사하고, 학대에 가까운 잔소리와 구박을 당한다.


또한, 직장 시어머니는 본인의 존재감과 권위가 남을 깔고 뭉개야 생긴다고 판단한다. 시대가 바뀌면 문화도 바뀌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회 통념적 가치관도 바뀌게 된다. 하물며 회사 일도 마찬가지다. 기술, 사회의 흐름이 바뀜에 따라서 사업을 하는 전략이 바뀌고, 그에 맞추어 세부 전술도 바뀌는데도 직장 시어머니는 며느리들의 논리를 원천봉쇄 해버린다. 시대가 바뀜에 따른 업무의 Paradigm이 바뀐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며느리의 생각이 옳다고 인정해도 직장 시어머니는 마치 자기 생각인 양 이야기하여 마무리하고 상황을 정리한다. (그들은 절대로 며느리가 맞았다는 이야기를 끝까지 하지 않는다.)


보상심리로 인한 직장 시어머니의 횡포는 성과 챙기기에서도 이어진다. 직장 시어머니는 구성원이 좋은 성과를 낼 때, 당연히 자기가 잘한 것이라고 상부에 보고한다. PPT, 이메일 그 어디에도 구성원의 흔적은 없다. 조직의 Align이라는 허울 아래 그 조직의 장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은 무조건 희생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성과를 뺏어간다.


테네리페 공항 참사


테네리페 공항 참사는 1977년 3월 27일 오후 5시 6분 56초경 초대형 제트여객기 보잉 747 두 대가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섬의 한 공항에서 충돌한 사고이다. 이 사고로, 승무원을 포함해 총 583명의 탑승객이 사망하고 61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여 항공 사고 사상 최악의 인명 사고이다. 오랜 시간 사고 발생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당시 조종사 특유의 수직적, 일방적 소통 문화가 사고의 원인임이 밝혀졌다. 당시 상황과 대화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당시, 활주로는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고, 규모가 작은 활주로 특성상 두 여객기의 조종사들은 상대의 비행기를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LM 여객기의 기장인 ‘반 잔텐’은 이륙 준비를 마치고 곧바로 속도를 높여서 전진한다. 부기장이 속도가 빠르다고 지적하였고, 심지어 관제탑에서는 이륙 허가도 떨어지기 전이었다. 하지만, 반 잔텐은 '나도 알아, 어서 관제탑에 허가 요청이나 해.' 라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부기장에게 쏘아붙였다.


이후 관제탑은 이륙 경로를 안내해 주었으나, 반 잔텐은 일방적으로 이륙한다고 관제탑에 통보해버렸다. 단호한 반 잔텐의 태도에 부기장은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후 기관사가 "팬암 여객기가 아직 활주로를 벗어나지 않는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자 다시 반 잔텐은 '아니, 벗어났어.' 라고 다시 한번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이후 KLM 여객기는 이륙 과정 중 팬암 여객기와 충돌하여 폭발하였다. 이 사고 이후로 부기장은 기장에게 잘못된 상황이 감지되면 기장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기장은 부기장의 의견을 강압적 태도로 무시하지 못하도록 규정이 변경되었다.


직장 며느리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올해 팀장이 되고 구성원과의 첫 1:1 미팅에서 ‘지금 일하시는데 가장 불편한 사항이 무엇인가요? 제가 해드릴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했을 때, 무엇인가를 해달라고 답한 팀원은 전체 20%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 그룹은 대부분 3~4번째 1:1 미팅에서 각자의 요청 사항을 머뭇거리는 말투로 입을 떼기 시작했다. 필자는 3~4번째 1:1 미팅에서라도 각자의 요청 사항을 이야기해준 그들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이것은 그들이 ‘너에게 이런 걸 이야기해도 난 너에게 찍히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다는 – 즉, 필자를 직장 시어머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 의미였기 때문이다. (자랑의 의도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직장이라는 조직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다. 직장 내 소통은 피와 같아서 생명체와 같은 조직이 유지되게 만드는 근간이다. 그런데, 침묵이 만연해 있다면, 조직의 리더는 어떤 문제가 생기고 있는지 해결은 고사하고, 파악조차 못 하게 된다. 장기에 피가 오래 통하지 않으면 괴사하듯, 조직의 문제도 소통이 되지 못하면 결국 곪아서 터지게 된다.


가끔 (늙은 혹은 젊은) 꼰대 리더들이 ‘아, 우리 팀 애들은 내가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면 말을 안 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침묵은 본능적인 선택이다. 무슨 이야기만 하면 ‘넌 틀렸고, 아직도 멀었고, 넌 예전 같았으면 재떨이에 날아왔다’라는 말을 듣는데, 차라리 침묵하면, 그런 이야기는 듣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조직의 분위기와 문제가 궁금한 리더분들께 이야기하고 싶다. 무엇이 궁금하냐고 묻기 전에, ‘난 당신이 조직 혹은 나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해도 너에게 어떤 불이익도 없을 것이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직장 며느리가 용기를 내서 조직 혹은 당신의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해주면, 고마워하시기를 부탁드린다. 그 며느리는 괴사 되기 직전의 조직에 백혈구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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