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떨어졌을 때, 돈 달라고 하는 건 삥 뜯는 거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똑같은 직급이라도, 조직 관리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하는 일이 달라진다. 즉, 같은 책임이어도 파트장을 하는 사람과 팀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 보통 파트장부터 조직 관리자에 속한다. 파트장부터는 부하 직원이 하는 일을 관리하고 문제가 있을 때 해결해 줘야 하며, 본인의 능력으로 해결이 안 되면 팀장, 임원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팀장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팀과의 협업에서의 문제가 발생하거나, 구성원 간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해결해줘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임원에게 보고 해야 한다.
즉, 조직 관리자의 경우 위로 올라갈수록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은 안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과제 진행 간 문제가 없을 때는 Milestone이 달성되거나, KPI가 완료되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크게 보고를 하지 않는다. 중간중간에 진행 상황을 챙기기 위해서 질의응답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예를 들면, 부하 직원 A가 사고를 쳤습니다. B가 다른 부서와의 협업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C가 진행 중인, 과제 일정이 지연되거나, 목표 달성이 불가합니다. 부하 직원 D, E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후배 직원 E가 전배를 원합니다. F가 보안 사규 위반에 걸려 팀 보안 점수가 깎일 예정입니다. 등등...
아무리 강철 멘탈인 팀장도 이쯤 되면, 표정이 좋을 리가 없다. 머리를 싸매고 자리에서 냉수 한 모금을 들이켜고 터질 것 같은 머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철없는 부하 직원 G가 보고를 한다. '어제 회식 중 생산 라인에서 전화가 와서 조치 사항을 전달했는데, 그게 잘못되어서 지금 생산 라인이 섰습니다.' 그 뒤의 상황은 굳이 여기서 언급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결국 G는 A~F가 쌓아 올린 분노 마일리지의 '잭팟'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팀장의 화내는 타이밍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한다. 그런데, 지금 화를 내는지에 대한 타이밍을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게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의 감정 중 분노는 무제한인데 반해, 인내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즉, 팀장님 지갑에는 스트레스를 감내하기 위한 비용으로 약 10만 원의 돈이 있고, 누가 사고를 칠 때마다 사고의 경중에 따라서 1~3만 원씩 돈을 내고 있다. 그런데, F가 보고를 할 때, 팀장은 마지막 만원을 지불하여 지갑이 비게 되었다. 지갑이 비어버린 상황에서 G는 팀장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였고, 더 이상 버틸 돈이 없는 팀장은 폭발하게 된다.
그렇다면, 더 많은 보고를 받는 임원들은 지갑이 더 크고, 돈이 많이 들어있냐? 그렇지 않다. 사람마다 지갑에 넣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비슷하다. 다만, 감정을 위한 비용으로 적게 지불하거나, 부하 직원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하여 자신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적게 만든다. 감정의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지갑이 텅 비어 있는 임원들이 의외로 많다. 결국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본인의 상사에게 언제, 어떻게 보고를 하는지에 따라서 상사가 지갑에서 만원을 꺼낼지, 5천 원을 꺼낼지, 아니면 돈을 꺼내지 않을지가 결정될 수 있다.
어차피 일은 터졌고, 당신이 수습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 보고를 해야 한다면, 가급적 당신 팀장이 해결 방안을 선택할 수 있게 이야기해줘야 한다. 이로 인해 팀장은 만원 꺼내야 하는 상황에서 천 원이나 오천 원만 꺼낼 수 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지만, 당신 팀장의 현재 기분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여러모로 중요하다. 지갑에 돈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레 겁먹고 횡설수설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열 받았는데, 횡설수설하면 더 화를 돋우기 마련이다. 대면 보고가 영 자신이 없다면, 메일로 생각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보내고, 팀장이 메일을 볼 시간을 주고 그 이후에 대면 보고를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스트레스에 대한 기회비용을 조직 관리자는 끊임없이 지불하고 있고, 그 지갑이 비어 있지 않는 상황에서 보고를 해야 덜 혼난다는 점, 그리고, 지갑에 돈이 별로 없어 보일 때는, 돈이 많을 때 다시 보고하거나, 할인된 금액을 지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회사에서 내 목줄(?)을 쥐고 있는 팀장들의 기분을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서 더 상하게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을 살 때도, 굳이 중개인이나 매도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게 하면서 집값을 흥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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