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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O Aug 22. 2021

빈털터리 구성원에게 할인해주자.

이리 와. 확 다 깎아 줄라니까.

조직 관리에 대한 착각

 

리더들에게 조직 관리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대부분 '성과 지향적, 과제 중심적 관점에서 구성원을 어떻게 배치하고..' 등등의 이야기를 한다. 회사의 존재의 이유는 이윤 추구이고 이를 위해서는 성과가 나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랜 연구 끝에 실질적 조직 관리의 핵심은 성과가 아니라 심리상태(감수성)를 관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는 점이다. 즉, 리더가 아무리 똑똑하고 합리적으로 조직을 관리한다고 생각해도 구성원이 심리적으로 반발하면 오히려 갈등만 생긴다는 것이다.


문제는 리더들 대부분이 성과 지향적, 과제 중심적 마인드가 강하기 때문에 구성원의 심리상태를 반영한 조직 관리에 서툴다는 점이다. 리더들은 실무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조직 관리자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리더로서 성장하는 과정 중에 조직 관리에 필수적인 관계 지향적, 소통 중심적 마인드를 경험하거나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리더들은 조직 관리 노하우를 터득하기 전까지 상당히 많은 시행착오와 스트레스를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그들의 심리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리더의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적지 않은 스트레스와 심리적 타격을 줄 수 있다.


빨간펜은 학습지인데 말입니다.


리더와 구성원 간 스트레스를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 사례로 '빨간펜(구성원이 만든 자료를 리더들이 빨간펜으로 수정사항을 첨삭해주는 것)'이 있다. 자료를 만들기 전에 리더가 결론, 방향, 구도를 상세하게 짜주면 구성원은 그걸 보고 한 번만 일하면 된다. 그런데, ‘내가 왜 자료를 만드냐?’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은 일단 만들어오라고 시키고 나서 그들이 만든 자료를 가지고 본인의 결론, 방향, 구도를 설명한다. 그들은 1) 아무런 가이드도 없이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스트레스,  2) 리더가 준 '피바다' A4 지를 받았을 때의 허탈감과 자책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짜증이 오를 대로 오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넌 아직도 이런 걸 알려줘야 아니?’라는 감정적 질책까지 동반되면 구성원의 멘탈은 처참하게 무너질 것이다.


위와 같은 일이 직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리더는 자신의 일하는 방식과 가치관을 강요할까? 사람들의 가치관 형성 과정 관점에서 살펴보자.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과정 속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가치관(상황을 판단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기준)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가치관은 나이가 들수록 인생에서 성공을 경험할수록 견고해진다.


직장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실적, 정치, 아부 등등)으로 직장에서 성과를 인정받아서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리고 리더가 된 순간 그들은 각자의 방법이 ‘성공 방정식’으로 각인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아무리 불합리한 일이라고 해도 상사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조건 했던 사람이 리더로 성장했다면, 그의 성공 방정식은 '윗사람이 시키는 일은 토 달지 말고 하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구성원에게 자신의 성공 방정식을 대입할 것이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동굴 비유(동굴 입구에 있는 사물의 그림자가 벽면에 비치면 그 그림자를 사물로 착각하는 것과)와 유사하다. 리더들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 이는 체계적이지 못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객관적이지 못한 생각일 수도 있다. 이렇기 때문에 각 개인들 간의 가치관은 부딪힐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조직 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리더가 본인의 가치관을 구성원에게 강요한다면 조직 내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구성원의 인내의 지갑을 살피자.


‘인내의 지갑 안에 있는 돈의 액수는 한정되어 있다.’라는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CEO든 신입사원이든 인내의 지갑에 들어 있는 돈의 액수는 비슷하며, 각자의 상황에 따라 인내의 지갑에서 기회비용을 지불하면서 업무를 한다. 그리고 지갑에 돈이 떨어지면 '멘붕'이 온다. 리더는 절대로 구성원의 인내의 지갑에 돈이 떨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돈이 떨어져서 멘붕이 오는 순간 리더 및 조직에 대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왜곡해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업무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내의 지갑에 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리더는 구성원의 인내의 지갑을 살피면서 그들의 인내 비용 소비 패턴을 파악해야 한다. 직무 관점에서는 일이 많은지, 어떤 업무를 버거워하는지, 성향에 맞지 않는 업무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파악이 필요하다. 또한, 그들간 어느 정도의 갈등, 대립 그리고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직 내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파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업무 외적인 스트레스도 그들과의 수다나 면담을 통해서 파악이 필요하다.


리더가 시키면 해야지 왜 이렇게 까지 해야하냐고 의문을 갖는 분들이 계실 수 있다. 심지어 리소스는 쥐어짜면 계속 나온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이는 상당히 잘못된 판단이다. 리소스를 쥐어짜는 것은 사채를 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야 한다. 무리하게 빌려 쓰다가 뒷감당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구성원이 느끼는 부정적 감정과 스트레스를 틀어막고 일만 하다가는 번아웃된 그들이 전배를 요구하거나, 퇴사를 선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직의 리소스는 쥐어짜면 나오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한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인내의 지갑이 텅텅 비었는데, 계속 돈 쓰라고 강요하는 것은 삥 뜯는 거다. 지금이라도 구성원의 인내 비용 소비 패턴을 파악하자.


빈털터리 구성원에게 할인해주자.


힘들어하는 구성원에게 대부분의 리더가 '잘하고 있어. 고생한다. 니 덕분이다.'의 립서비스 수준의 칭찬을 하고 (본인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며) 넘어간다. 이건 배가 아픈데 엄마 손은 약손이라며 배 한번 문질러주고 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플라시보 효과가 잠깐은 효과적일 수 있겠으나, 직장 내 스트레스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프면 병원에서 먼저 검사를 하고 진단을 받듯 그들이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면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을 해야 한다. 칭찬으로 퉁치고 넘어간다면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구성원의 인내 비용 소비 패턴 파악이 끝났다면, 그들의 성향에 맞게 인내 비용을 효율화해줘야 한다. 마치 게임을 할 때 컴퓨터가 버벅거린다면 작업 관리자를 켜고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종료하여 CPU와 메모리 용량을 확보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 분들이 계실 수 있다. 잊지 말자. 한정된 리소스 내에서 그들의 역량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최고의 성과를 내야 하는 모순투성이인 게임을 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리더임을. 당장 생각나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면 어떨까? 자료부터  ‘일단 작성 해오라.’고 하지 말고, ‘내가 초안을 만들어서 보내니, 너의 생각을 얹어서 만들어오라.’라고 해보자.


인내의 지갑에서 5 만원 꺼내다가, 2 만원, 1 만원만 꺼낼 수 있게 리더가 할인해주면, 구성원은 남는 인내 비용을 다른 일에 쓸 수도 있고, 회사에서 인내의 지갑이 텅텅 비는 상황도 덜 생길 것이다. 더 많은 업무를 하면서도 조직의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면 리더 입장에서 과감히 시도해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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