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ommelier, Rhône Master
한국 소믈리에 사이에서는 WSET 쪽의 자격증이 더 많은 인기를 끌고 있지만 뉴욕에 있을 당시에는 Court of Master Sommelier 쪽의 자격증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한다 싶을 정도로 마스터 소믈리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렇다 보니 미국에서 "마스터 소믈리에"라고 하면 소믈리에들은 물론 와인에 관심 많은 소비자들에게도 상당히 인정을 받는 존재다. 이론적인 지식은 물론 서비스, 그리고 정말 지독하게도 문제를 낸다고 악명이 높은 블라인드 테이스팅 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각 단계 별로 몇 년의 수행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스터 소믈리에라면 경험, 지식, 능력을 모두 갖춘 와인 서비스인으로 인정을 받는다.
미국에도 이제는 꽤 많은 마스터 소믈리에가 있고, 각자가 와이너리에서, 레스토랑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도 특별히 유명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영화 Somm에 나오는 Fred Dame 같은 소믈리에는 80년대에 마스터 소믈리에를 취득해 미국 내에서 수 많은 후배들을 양성했고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가장 유명한 마스터 소믈리에 중 하나다.
라스베가스에도 전설적인 마스터 소믈리에가 한 명 있는데 그의 이름은 Paolo Barbieri로 이탈리아의 미식 본거지 에밀리아-로마냐 출생이다. 런던으로 여행을 가 경비를 벌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와인의 세계에 빠져든 그는 후에 런던과 샌프란시스코에서 활약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가 전설이 된 것은 라스베가스의 벨라지오 호텔에서 일을 하면서였다. 당시 라스베가스의 호텔들은 비싸고, 유명하고, 잘 팔리는 와인들을 몇 가지만 리스팅해 놓는 경우가 많았는데 벨라지오 호텔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수준의 리스트를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름을 날리던 Paolo Barbieri를 스카우트했다.
와인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위임 받는 그는 세계를 돌며 와이너리, 도매상, 개인 수집가, 레스토랑, 와인샵들로부터 와인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가 완성한 와인리스트는 장장 150페이지 분량이었는데 거기에는 1970년대 빈티지의 5리터짜리 Chateau Petrus. 전설적이라는 1945년 빈티지의 보르도 1등급 샤토의 와인들 등등 와인 애호가라면 "못 마셔도 좋으니 냄새라도 맡아보고 싶다"는 와인들이 수없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라스베가스의 경쟁 호텔에서는 벨라지오를 비웃었다. 서비스나 개선할 것이지 쓸데 없는 와인에 돈을 쓰는군. 하지만 라스베가스에 와 도박을 즐기는 이들 중에는 와인 애호가들도 많았고 그들은 다른 카지노에서 딴 돈으로 와인을 마시기 위해 벨라지오로 모여 들었다. 이렇게 벨라지오가 성공을 하자 근처의 Wynn 호텔에서 Paolo Barbieri를 스카우트 했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일을 전개했고 마찬가지로 성공했다.
그가 라스베가스에서 일하는 동안 판매한 와인은 우리 돈으로 수 백억 어치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라스베가스의 어지간히 좋은 호텔을 가면 거기엔 미국 최고 레벨의 소믈리에가 와인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다. Paolo Barbieri는 한 마디로 라스베가스의 와인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 버린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라스베가스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뒤로 하고 약혼자와 함께 평화를 찾아 안착한 곳은 산타바바라였다. 소믈리에 시절부터 가격 대 성능비가 좋은 산타바바라의 와인들을 즐겨 리스팅 했던 그는 소믈리에 시절부터 친분을 쌓았던 와이너리들의 도움을 받아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소믈리에 시절 프랑스 론 지방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발휘해 다른 소믈리에들에게 "론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그는 역시 론 지방 품종인 Syrah(시라)를 가지고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시는 건 전문이지만 만드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었던 Paolo는 와이너리 오너들에게 일을 배우며 양조 시설을 빌려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고 처음 몇 빈티지는 도저히 팔 수 없다며 판매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자신이 만든 와인을 테이스팅한 그는 "이제 제대로 된 시라를 만들었다"며 산타바바라의 Los Olivos에 테이스팅룸을 열고 와인을 팔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에 만나본 그는 방문객들과 와인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드는, 그가 즐기던 "소믈리에"의 모습 그대로였다.
긴 이야기를 지나 이제 사진 속 와인을 이야기할 차례. 이 와인은 Paolo Barbieri가 만든 2012년 빈티지의 Rodney's Vineyard. 요 포도밭 하나에서 난 포도로만 만든 와인으로 시라 100%다. 캘리포니아 시라 하면 호주의 시라처럼 진하고 초콜렛, 과일잼 향이 나는 것이 많다.
하지만 이 와인은 "론 마스터"라고 불리던 Paolo가 만든 와인 답게 캘리포니아의 잘 익은 과일맛 속에서도 가죽, 후추, 바이올렛 꽃 향기 등 프랑스 시라 특유의 다양한 아로마와 섬세한 마무리가 특징이다. 신대륙 시라를 좋아하지만 지금까지는 그 파워에만 돈을 지불했다면, 이 와인은 확실히 그보다 한 차원이 높은 느낌이다.
그래서 이 와인을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파올로 아저씨가 하도 돈에 관심이 없어서 귀찮은데...하는 걸 억지로 설득해서 소량이지만 겨우겨우. 하도 서류 작업을 늦게 해줘서 애가 탔지만 이번에 들여온 와인으로 시음회를 했는데 우리 와인 중에서는 고가임에도 반응이 너무 좋아 고생하며 수입한 보람이 있다. 이제 이 아저씨 꼬셔서 한국에 한 번 모셔야 할 텐데 언제가 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