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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Jul 29. 2020

모나미 153과 만년필

국민 필기구 인 모나미 153 볼펜은 똥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기억되고 또 유명했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휴지나 여분의 종이에 볼펜 촉을 비벼서 똥을 닦아내지 않으면 글씨에 뭉텅 거리며 묻어 나와 글씨체를 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153은 볼펜 똥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추억을 소환할만한 기억도 있습니다.  


고급 필기구였던 만년필을 사용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유한 집안이 아니면 어려웠습니다. 이쁜 만년필 글씨를 쓰고 싶은 충동이 생기면 펜촉을 구입하여 펜대에 끼워 사용하였습니다. 가격도 싸고 촉이 벌어지거나 닳게 되면 쉽게 교환이 가능했습니다. 펜대 구입이 어렵다면 모나미 153 볼펜이 사용된 거죠. 펜촉을 볼펜 노크 쪽에 끼워 넣으면 곡률(R)이 맞아 153이 펜대 역할을 훌륭이 해 주었습니다. 검은색보다 파란색을 좋아해 향수병 같은 파란색 잉크병을 사용했고, 펜촉을 잉크병 속에 꼭꼭 찍어 사용하면 아쉬운 대로 짝퉁 만년필 풍의 멋진 글씨가 쓰였습니다.


만년필이 3개가 되었습니다. 처음 것이 23년쯤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 K군의 선물이고 6년 전쯤 SS군이 준 것 그리고 또 다른 K 군이 준 최신형 만년필입니다. 특히 23년 전 K군이 준 펜은 Cross사의 저가형 제품이지만 사무실에서 무려 23년 이상 젊음을 동고동락해 온 소중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낡고 부식이 되어 점점 사용 횟수가 줄고 퇴역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여전히 현역에 있습니다.


요즈음은 이쁘기도 하고 매끄럽게 잘 쓰이는 볼펜이 수두룩하게 생산되어 나옴에 잉크를 손에 묻혀 가며 만년필을 사용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굳이 사용하는 이유를 설명하라면 감성이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153 볼펜에 대한 향수, 반 투명한 병에 파란색 잉크가 들어 파랗게 보였던 잉크병, 형, 누나들이 멋 들어지게 써 내려갔던 이쁜 글씨체들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간직하기 위해서 이겠지요.

언제들어도 좋은 말 & Cross


또 다른 K군이 선물한 만년필은 브런치 작가로서 폼나게  글을 써야 한다는 바램과 협박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냥 회사원인데 뭔 간지럽게 브런치 작가로 포장 해 부담을 줄까요?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글을 쓰는 세상이라 만년필의 용도가 그리 크지 않겠지만 가끔씩 사각사각 흰 여백에 만년필 촉에서 나오는 파란 잉크 글을 채워갈 때의 느낌은 감히 디지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 같아 기대 가득입니다. 아직 만년필은 현역이며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생각게 해 주는 감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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