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냐? 자유냐? 문제로다.

by 바다 김춘식

전화기에 진동이 왔다. 웬일인고 전혀 안 궁금한 모기관의 A 친구 교수다. 연락을 안 하면 절대 먼저 전화를 안 하는 놈이라 머선일 이공 의아했다. 남극 월동대 선발 면접에 일이 있어 들린다는 일방적 통보다. 도랑 치며 가재 잡겠다는 뻔한 심보다. 머 그러면 그러지 절대 먼저 연락을 할 놈이 아니니까.


점심 사준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바로 까였다. 사주라가 아니고 사준다는 데도. 난 안 바쁘고 니는 바쁘다니 이해해줘야지 별수 없다. 그럼 일 마치고 얼굴이나 보구 가시라 했다.


늦은 오후 일이 끝났다 연락이 왔다. 코로나만 아니면 등이라고 치고 질 텐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무실 출입금지라 현관으로 냅다 내려가는 수밖에. 오랜만이긴 한가 보다. 마스크 밖으로 보이는 눈가 주름이 예전 같지 않다. 마음이 아프지만 내색하면 안 된다. 같이 나이 먹어 늙어 가는 처지로 도찐개찐이기 때문이다.


만난 지가 언제 적었는지 탐색 중 작년 9월에 차를 바꾸었단 말이 나왔다. 차 바꾼 걸 모르는 걸 보면 9월 이전에 마지막으로 본것은 틀림이 없다. 이 순간, 아니 그런데 웬걸 만난 기간의 화젯거리에서 갑자기 차 바꾼 게 대화의 주가 되었다. 뭐 남자들의 차 사랑은 원초적으로 대단한 거니까.


근데 일방적 자랑질이다. 뭐 그래 다 들어줄게. 외제차? 아니란다.


그랜다이져는 한물간 우리 시대 분들이 타고 싶은 차로 선망의 대상이자 로망이었다. 그랜다이져를 사고 싶었는데 세월에 감성을 잃고 이미 흔하디 흔한 국민차가 되어 버려 한 단계 높은 국산차를 골랐다 했다. 그 추억의 사각, 각 그랜다이져, 기억한다. 여기 까진 무난하게 잘 들어주었다. 이쯤이면 슬슬 자금 출처가 궁금한 단계다. 그런데 말이 나오자마자 안물어 본것 까지 술술 분다. 사모님이 현금 결제를 해줬단다. 하고 싶었을 자랑질에 매우 깜놀이다. 할부도 아니고 현금으로. 이런 할렐루야, 개 부러운 일이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오늘은 깔끔하게 졌다. 작별 인사를 했다. "잘 가라 친구야!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나지 말고."


L에게 급톡을 쳐 부러움을 알렸다. A 동기 교수가 차를 샀는데 사모님이 현금으로 결재해주었단다. 있을 수 있는 일임? 부러운 일 아님? 말이됨? 폭풍 감정을 전했다.


L이 한치 망설이다 쓰윽 답을 보냈다. "부러워요? 사모님에게 주도권 잡혀 살아야 할 걸요. 무신님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어랍 그러네. 빛의 속도로 꼬리를 바로 내렸다. 그럼 안 부럽.


가만 생각해보니 A교수는 주말이면 사모님과 잘 지낸다. 가끔 공치로 가자 부르면 사모님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해 종종 거센 비난을 받았고, 1박 2일로 공치로 가면 2-3시간 거리를 왕복해 혼자 무박 2일로 만드는 만행을 저지른다 한다.


흠흠흠흠, 차를 받을까? 자유로운 영혼을 누릴까? 중년의 집시 정신(Spirit)에 헷갈리는 하루다. 멀리 경비실을 통과하는 신삥 차는 매우 좋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