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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김춘식 Nov 29. 2019

딸 졸업 전시회 감회

큰 딸 입학 실기 시험 날 아침의 아스라한 아버지의 가슴 아픈 기억이 아직 또렷이 남아있어 짧은 세월인 줄 알았는데 벌써 졸업 작품 전시회 한다 초대를 받고 보니 이런저런 생각에 조금 심란하기도 하고 점점 자신의 생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되어 간다는 게 대견하기도 하였다.


전시회 준비로 족히 4개월 정도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학교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기에 전념하였기에 행여나 굶지는 않을까, 속옷은 갈아입었을까 걱정이 되어 졸업 전시회가 학점에, 직장 취직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맘에도 없는 타박을 몇 번 주었지만 묵묵히 힘든 작업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돌이켜 나의 리즈시절인 대학생활을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중요하다 했던 일들이 졸업해서는 아무 쓸 짝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었고 유치하기까지 했으므로 아마도 그런 일과 사건들이 전시회 준비에 대입이 되어 쓸모없는 낭비라고 말하고 싶어을 지 모르겠지만 4년을 마무리하는 당사자들은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었을 테고 열정이 더 했을 것이니 미래보다는 과정만이 중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세대인 우리와의 차이점은 한 가지에 죽도록 집중할 수 있는 젊음의 패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작품 "생각의 색 1, 2, 3" [김예은]


대구에서 제일 큰 손녀에 잔치에 초청되어 오신 할머니, 고모를 포함한 가족들이 총출동하여 찾은 전시회장은 작고 아담했고 큰애뿐만 아니라 몇 학생들의 작품도 전시되어 보기가 좋았다. 큰애의 작품은 유채화 석점, 무식하게 물감의 양이 궁금해 물어볼 정도로 컸다. 그림보다 타고난 사진쟁이(?) 이기에 사진에 대비 강렬함이 없는 부드러운 색채에 구도가 아쉽다 했더니만 역으로 그게 작품의 핵심이라며 이런 자리엔 지적질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눈을 흘긴다. 사실 말은 그러하게 하였지만 세상 모든 아버지처럼 속내는 감동에 눈물을 짓고 뿌듯함에 속절없이 미소를 지울 수밖에 없었다.



친구를 좋아하는 성격을 가진 덕분인지 전시장에서 받은 꽃다발이랑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많이 쌓여 있는 걸 보니 예술인으로서는 아직 부족할지 모르겠지만 사회생활만은 잘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시회 후 다시 대학생활로 돌아와 이제 학생생활을 마무리해야 할 테이고 졸업 후 얼마나 많은 도전과 시련 그리고 퇴사병의 유전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잠시 접어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수고했고 고생했다. 잘했다" 그 말 밖에 할 말이 또 있을까?





2016. 1. 16


오늘 아침, 왼쪽이 큰애, 오른쪽이 큰애 친구

두 놈이 오늘 대입 실기 시험 친다 하여 시험장소까지 태워주기로 하고 차 타로 가는 중 뒷모습이 짠해서 몰래 도촬 했다. 손에는 한동안 참 열심히도 땀을 묻히고 손때가 뭍은 그림도구들이 한통씩 들려 있었다. 딸은 서양화, 친구는 동양화.


평생 잊을 수 없는 사진


이런 애들을 줄을 세워서 합격의 기준으로 잣대를 갖다 된다는 것이 하염없이 오늘은 미안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살다 보면 이보다 더 한 경쟁 속에 한평생을 살아야겠지만 어찌 보면 처음의 경쟁일 것일 텐데.


차 안에서 조잘거리는 말들을 들어 보면 1. 쉬운 게 나왔으면 좋겠다. 2. 합격했으면 좋겠다. 3. 긴장된다로 크게 3가지인데 운전석에서 가만히 듣고 있으니 마음의 동요와 감정이 북받쳐 올라 오더라. 특히 너무 긴장된다는 말은 가슴에 맺히더라. 미안함, 동정심, 부정 그런 것들의 복합적인 감정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잘하지 않는 공부에 도 그동안 공부하란 소릴 거의 해본 적 없어 한때는 왜 공부하란 소리 안 하느냐고 원망도 들었고, 늦은 밤마다 손에 묻혀오는 물감에 수고한다 소릴 한번 안 했는데, 왠지 오늘은 감정은 무엇인지 선 듯 가름하기 어렵다.


하필 또 가는 도중에 실기 장소 안내 용지에 손가락이 베어 아프다 하면서 실기 시험에 지장이 있을까 모른다(액땜했다고 편하게 생각한다더라) 하여 부리나케 밴드를 구입하기 위해 편의점까지 달렸는데 달리는 그 짧은 시간만은 아마도 정말 평생 다시는 담지 못할 나의 진심과 간절함을 가지고 달렸지 않았나 싶다.


중학교 때부터 그림 공부하겠다는 녀석을 미루고 미뤄서 남들보다 늦게 학원을 보낸 것도 마음에 걸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앞으로 평생 살아가야 할 길에 비하면 하찮은 하루일 수도 있겠지만 실수 없이 배우고 익힌 데로의 실력만 발휘하기 바랄 뿐.


그래서 난 아침부터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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