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이후 오랜만에 가족행사라 대구 나들이다. 자주 와야 함에도 역에서 집까지의 거리와 교통편은 귀찮음의 핑곗거리가 되어 늘 그러하지 못하였다. 귀찮음과 마음 씀씀이와의 갈등에서 귀찮음의 빈번한 승리를 경계하고 반성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대구는 국민 4년, 중고 6년, 즉 총 10년을 살았을 뿐이고 인천 17년, 부산 5년, 울산 7년, 광양 7년을 더하면 10년이란 년수가 턱없이 적은 숫자임에도 여전히 대구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호적은 지워도 학적, 지역 출신은 불멸인가 보다.
고등부 교회 때부터 만나온, 야구장 선약이 있다는 여사친을 만나기 위해 급히 당근표를 구입하고 성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응원석에 앉아 응원가 "엘도라도"를 부르고 응원 막대를 두들겼다. 대구에 와서야 우리 세대와 다른 젊은 층의 놀이 문화를 체험한 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긴 하지만 시대적 문화 차이는 놀랍긴 했다.
말투, 억양에서 구분되는 대구라는 기반의 성장 무대는 지금의 수도권 윗지방 사람들이 나에게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다. 보수적인 도시 이미지에 부정적인 걱정과 어련히 그러하리라는 선입견이 혼합된 추정의 말들을 한다. 뭐 역시나 정치적 성향은 대구에 사는 가족과 그러하지 않은 타지방에 사는 가족과 신기하게도 편 가르기처럼 다르긴 하다.
동대구역이다. 지하철을 내려 역사로 가려면 시간이 조금 소요되는 것 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저께 택시 기사님께서 시장이 관두고 또 철거가 논의 중이라 투덜거린, 미래를 예측하기 거시기한 설치물이긴 틀림이 없다.
유년기를 보낸 대구는 이러듯 좋은 추억을 소환할 수도 있고, 정치적 이유로 자주 오해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여전 가족과 친구들이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 동대구 기차역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상행 열차는 또 대구를 떠나는 아쉬움을 주기도 하지만 언제 다시 돌아와도 반겨주는 친구, 가족이 있으므로 미워할 수 없는 곳이란 상징처럼 보인다. 이런듯 미우나 고우나 영원히 피할 수없은 대구 사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