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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돌이가 지하철을 타긴 했는데

by 바다 김춘식

수인선, 인천으로 오는 지하철, 승용돌이의 대중교통 이용은 늘 익숙지 않다. 그중 앉을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마냥 힘이 든다. 나이 들면 힘들고 편하게 앉아 가고 싶은 마음은 맞다. 어쩌면 나도 세월을 비켜 갈 수 없을 것 같은 무서움이 필요이상 꼴불견으로 보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눈치 빠른 아내의 촉 덕에 몇 정거장을 지나자 운 좋게 자리를 잡았다. 편하긴 한데 서서 보는 창밖 오월의 풍경은 생각만큼 좋았는데 앉으니 급 시야가 객차 내로 좁아진다. 편안함과 시야를 바꾸니까 얻으면 잃는 것이 있어 공평하단 생각이다. 덜컹이는 지상철은 들판을 지나 안산인근으로 달렸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풍경을 버리고 너튜브의 얄팍한 즐거움을 택한 나는 비단 나만의 선택은 아니어서 위안거리로 삼았다. 지금 다들 머리 숙여있다.


자리 앞쪽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고개를 들었다. 금방 탄 할머니의 인기척이다. 잠깐 아내와 눈을 맞추고 급하게 일어났다. 순간 스친 강한 갈등의 유혹을 이기고 할머니를 자리에 앉혀 드렸다. 웃긴다. 속으로 막 웃는다. 지하철 주변 자리에는 나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몸이 기억하여 반사적으로 일어난 건 나뿐이다. 씨 덥잖은 객기는 아직 스스로 젊다고 착각하고 사는 게 틀림이 없다. 착각은 자유라는데 큰일이다. 언제까지 이러려나, 또 큰일이다.


무릇 지하철은 아무 생각 없이 이용해하는 대중교통이어야 하는데 낭만을 찾고 젊음을 기억하기에는 고달프다. 오랜만 탄 지하철엔 낭만이 없다. 술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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