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원이다.
Crew
배에서는 선원, 비행기에서는 승무원. 그런데 영어로 같은 단어가 쓰이는 두 장소, 세상 처음에 배가 있고 비행기가 있었기에 비행기 관련 용어가 배로부터 유래되어 배가 우위임에도 바다와 하늘에서 Crew라고 듣고 말하는 어감의 차이는 실로 크다하지 않을 수없다.
하늘에서는 위풍당당하고 자랑스러운 Crew 승무원이고, 바다에서는 Crew 선원이란 왠지 위축이 들고, 존경의 느낌보다는 내가 그 부류로 취급당할까 선원이란 말을 꺼내기를 주저하고 부끄러워하니 말이다.
왜? 언제부터라는 의구심이 든다. 예로부터 선원이란 사농공상에도 속하지 않는 다섯 번째의 직업이라는 자조스런 말들이 오고 가긴했다. 아마도 60년대 마도로스 열풍을 일으킨 모 배우의 공도 컸을 테다. 영화의 표현을 빌자면 한 손에 파이프 물고 항구에선 술, 술집 여자와 도박으로 한방의 인생을 사는 게 마도로스였을 것이다. 그 후 70년대의 원양선이 늘어나면서 간간히 발생한 폭력 사건들이 기름을 부었고, 선원이란 사고 치고 세상의 도피처로 일확천금의 수단으로 배를 타는 사람으로 굳어지며, 더하여 부족한 선원을 채우기 위한 인신매매의 소문도 끊임이 없었으니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무식하게 보이는 개탄스런 직업이 되어 버렸다. 최근에는 외국선원들의 선상반란 사건이 있었고, 어느 배 기관사의 자살사건과 실습생의 죽음 원인이 산업 대체 요원의 병폐로 치부되면서 점점 더 선원의 명예 회복이 어렵게 미궁으로 빠져 버리게 되었다.
선원법에서는 선원의 정의를 선박에서 근로를 제공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이라고 한다. 즉 배를 타고 근로를 하면 선원이 됨으로 현재 배를 타고 있으면 그렇게도 자랑스럽지 못하는 선원이 되는 것이고, 배를 내려 다른 일을 한다 해도 자연히 전직 선원이란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것이다. 어느 모임에 발표를 하면서 배 타는 분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선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더니 왜 우리가 선원이냐는 예상치 못한 반발로 선원이라는 비하의 의도가 없었다는 사과까지 거듭했으니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잘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열악한 환경의 수백 미터 지하 탄광에서 노동을 했던 파독 광부, 병원에서 시체를 닦았던 파독 간호사가 벌어 온 달러와 월남전에서 병사의 목숨과 바꾼 달러가 우리나라 근대 경제 발전에 공헌을 했다고 한다면 그 이상으로 칠대양, 육대주에서 가족과 헤어져 그리움을 친구삼아 거친 파도에 고통스러운 멀미와 싸우며 목숨을 걸다시피 해 달러를 벌어들인 선원들의 희생은 최소한 그 들만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선배 선원들의 고생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 놓은 지금의 눈부신 해운 발전을 보고 있자면 뿌듯함을 넘어 지금이야 말로 정말 선원에 대하여 재 평가를 해야 할 시기일뿐 아니라 이제 더 늦기 전 우리 자신이 버렸던 자랑스러움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침 6.25일이 선원의 날이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