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업 복귀를 기다리며 긴 시간을 다양한 일거리를 경험하던 중 후배의 권유로 그의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생산직 일은 경험하지 못해 봐서인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내심 기대도 되었다.
파주시 광탄에 있는 공장지대에 위치한 후배의 공장에는 50대 후반의 푸근해 보이는 부장님이 계셨고 나머지 직원은 미얀마인 3명과 베트남인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장 업무는 후배가 특허를 가지고 있는 생산 업무라는 것 외에는 비밀로 해주길 바래 자세히 남기진 못하지만 내가 쓰고자 하는 내용과는 관계가 없기에 과감히 생략하고, 외국인 노동자들과 일해본 경험 위주로 작성해보려 한다.
Episod 1
히엔, 그의 이름은 히엔이라고 한다. 베트남인이고 나이는 37살, 외국인 노동자 4명 중 유일하게 존칭어를 구사하고, 나를 보자마자 형님이라고 부르던 예의 바른 친구이다. 두 개의 공장동 중 혼자서 다른 동에서 일하고,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국적이라 약간 동떨어져 외로워 보였다.
그래도 나를 볼 때면 항상 커피를 타 준다고 하는 친근한 친구이다. (뭐 다른 사람들에게도 늘 그랬을 수도, 아니면 그래야만 했을 수도 있지만)
그는 주말이면 의정부에 있는 베트남인 모임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공부한다고 한다. 후배의 말에 의하면 일보다는 한국어 공부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한국에 오기 전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사진관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에게 핸드폰으로 사진 잘 찍는 법을 배워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너무도 일찍 그와 헤어지고 말았다.
아침에 일찍 공장 주차장에 도착하면 늘 반갑게 반겨주며 나름 주차 안내를 해주는 그의 수줍은 미소는 늘 기분 좋게 하루 일과를 시작하게 해주는 비타민과 같았다.
하지만 히엔은 그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모두 아버지의 도박으로 날려버렸다고 한다.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술 담배도 하지 않고 월급을 받으면, 최소 생활비만 빼고 모두 부모님께 송금해드렸는데 아버지의 일탈 행위로 크게 실망하고, 한국에서 사귀던 베트남 여자 친구마저 한국 남성에게 빼앗겨버려 충격이 크다고 한다. 외로운 타지 생활 10여 년이 정말 쓰디쓴 아픔이라 내게 말한다. 한국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여 어쩌면 다른 미얀마 친구들보다 좀 더 애틋하게 대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