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내가 살고 있는 지축역 주변은 여러 채의 아파트와 빌라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고 옆으로는 전에 없던 길들이 잘 정비되어 가고 있다. 어느 순간에 보면 못 보던 신호체계가 생겨나고, 어느 순간에 보면 다 정비되지 않은 그 길을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있다. 그 길을 따라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건물들, 어느 것은 앙상한 철근으로 뼈대를 잡고 있고, 어느 것은 거의 완성되어 한껏 외관을 치장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 하며 미래를 점쳐 보는 동안 이윽고 시골의 어느 한 개천가인지 헷갈리게 하는 창릉천 주변이 나온다. 오랫동안 다듬지 않은 듯한 우거진 수풀 사이로 맑지만 야트막한 천(川)이라고 부르기도 좀 민망한 창릉천이 흐르고, 그 옆으로 반듯하게 길이 나있다.
이곳에서 시작해서 북한산 탐방로를 올라갔다 내려오는 왕복 경로를 나는 '순례자의 길'이라 부른다. 물론 순례자는 나 자신 하나이다.
순례자라고 해서 뭔가 그럴듯해보지만 스페인의 그 길처럼 아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을 때 이 길을 따라 걷곤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는다는 것이 쉽진 않다. 그냥 앞만 보며 걸어도 머릿속에서는 많은 세계들이 펼쳐진다. 과거의 나에서 시작해서 현재의 나를 지나 미래의 나 자신이 순서 없이 마구 떠오른다. 나 자신의 모습이 마음속인지 머릿속인지 모르는 곳에서 생각이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정말 싫다. 하루 종일 떠오르는 나라는 존재를 몇 시간이라도 잊을 수 있는 걷기를 해보려 한다.
러닝이라고는 언제 해본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되었는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전날 약 2KM 가까이를 뛰었다. 예전처럼 보폭이 큰 러닝이 아니라, 빠른 걸음 쪽에 더 가까운 그런 러닝이다. 괜한 오기였다. 시큰거리는 무릎에 파스를 잔뜩 뿌리고 길을 나서본다. 쨍쨍 내려쬐는 가을 햇볕이 얼굴과 목에 닿는 게 느껴진다. 한 여름의 습한 기운이 없어서인지 이 햇볕이 싫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뿌연 먼지를 내뿜으며 다양한 공사차량들이 지나가고, 잠시 내렸던 마스크를 재빠르게 올려 쓰며 운전자들을 살짝 노려본다. 이런 길을 이렇게 빨리 지나갈 필요가 있을까. 비슷한 모습으로 올라가는 아파트와는 달리 이 5층 남짓한 작은 빌라들은 각기 자신의 모습을 경쟁이라도 하듯이 개성 있는 모습으로 지어지고 있다. 물론 뼈대만 있어서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가늠할 수 없는 녀석들도 있다. 이곳에는 어떤 상점이 들어설까? 개성 있는 외관을 보니 카페가 어울릴 것 같은데?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술집들도 몇 군데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유심히 건물들을 살펴본다. 이러다가 이곳도 경리단길, 황리단길 하는 그런 길이 형성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쯤 창릉천이 나온다. 이 수풀들 정리 좀 해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일부러 이렇게 우거진 수풀채로 놔두는 것일까? 창릉천인데 수풀에 가려져 흐르는 물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걷기 전용 길이 주욱 뻗어져 있어 다행이다.
무궁화, 어릴 적에 살던 동네 근처 둑에는 옆으로 길게 심어져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요즘에는 장미 같은 이쁜 꽃들로 대체돼버리고 한동안 못 본 것 같았는데 이렇게 보게 되니 참 반가운 생각이 든다. 어제의 나처럼 러닝을 하는 사람, 이어폰을 꼽고 멋지게 차려입고 운동하는 사람, 걷기 전용길인데도 자전거를 타고 휙 지나가는 사람,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 다양한 사람과 마주치고, 지나쳐간다. 주욱 펼쳐진 우레탄 길을 걷다 보니 창릉천 건너편으로 아파트와 빌라들이 지어지고 있다. 지루하다, 일자로 걷는 우레탄 길이 편할지는 모르지만 지루한 감이 있다. 옆에 있는 자동차 길로 눈을 돌려본다. 한대 두대 세대, 버스도 한대 두대, 줄지어 가는 자전거들도 보인다.
잔뜩 뿌린 파스 덕분인지 아직은 무릎의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선택을 해야 한다. 계속 우레탄 위를 걸을 것인지, 조금 돌아가더라도 가벼운 흙길을 걸을 것인지. 두 길의 이점을 생각하며 머릿속에서 주판알을 튕겨본다. 오케이! 조금 돌아가더라도 흙길로 가보자. 신호등을 건너서 옆길로 들어가면, 개성 있는 모습을 자랑하는 전원주택 마을이 나온다. 예전에 와이프와 함께 운동하며 서로 자신의 취향으로 점찍어둔 곳들이 있는데 다시 보게 되니 새삼 반가움이 느껴진다.
저곳은 쓰레기 더미가 가득하고 사람이 안 사는 곳 같았는데 작은 포클레인이 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깔끔한 곳이었는데 거의 1년여 동안 쓰레기 더미 속에 가려져 있었던 거였나. 개조심, 반가운 녀석이다. 지나갈 때마다 우렁차게 짖는 놈이다. 오늘은 조용하다. 낮잠 자는 거겠지 하며 그 녀석의 안위를 살짝 걱정해본다.
흙길이다. 내시묘길 이라는 북한산 둘레길중 한 경로이다. 작은 언덕도 있고 울창한 나무숲으로 햇볕을 피할 수도 있다. 밝은 곳으로 만 걷다가 해가 덜 드는 숲길을 걸으니 살짝 어두운 느낌이고, 왠지 으스스하다. 빨리 사람들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우레탄 길을 걸을 때보다 왠지 속도가 더 나는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으스스함에 빨라진 걸음 때문일까 오랜만에 걷는 폭신한 흙길이라 발걸음이 가벼워져서일까. 꽤 긴 코스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북한산 탐방로가 나온다. 평일임에도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그 틈에 섞여 탐방길을 올라간다. 여기도 서울에 포함되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만약 서울이라면 이 큰 대도시에서 이렇게 멋진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은 몇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그만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옆으로 멋진 물소리가 들린다. 이 계곡을 보호하기 위해 옆에 놓인 철제로 만든 다리 같은 곳으로 걷게 되어있다. 저 계곡길을 걷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도처에 보이는 물병 같은 쓰레기를 보니 이 철제 길을 이해하기로 했다.(물론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물병 몇 개는 주워왔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따라 걷다 보면 귀를 시원하게 하는 작은 폭포 같은 곳이 나온다. 이곳 주변에는 어르신들이 각자의 스타일로 동영상을 찍고 계신다. 아줌마들(또래로 보이는)의 재잘거림, 무엇이 이렇게들 좋으실까 삼삼오오 모인 아주머니들(연세가 있으신)이 주변의 꽃과 계곡을 배경 삼아 사진들을 찍으며 즐거워하신다. 마치 여고시절 친구들과 함께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즐거워한다. 따스한 햇볕, 습하지 않고 시원한 바람, 멋진 풍광의 계곡 이것이 그녀들을 그렇게 즐겁게 하는 것일까?
탐방로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오르막길이고, 작은 바위들도 제법 있는 곳이라 약간 등산하는 맛을 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처음 온 커플인듯한데 여성분이 무척 지쳐 보인다. 안쓰러운 듯 그녀를 위로하고 이끌고 가는 모습의 남성분이 살짝 불쌍하다. 복장을 보아하니 제법 높은 곳을 목표로 하고 온 모양인데
‘이봐 아직 시작도 못했다고'
산길을 지나 반환점을 돈다. 다시 탐방로 시작점을 향해 내려가는 것이다. 오르던 길과 틀린 점은 콘크리트 바닥의 내리막길이라는 것. 감사합니다. 이 길을 내려갈 때는 왼발을 내딛을 때마다 감사함을 느껴보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감사합니다'를 속삭이듯 되뇐다. 왜? 모르겠다. 언젠가 등산을 하고 내려올 때 무심코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그때부터 이 길에서만은 항상 감사함을 속삭이며 걷는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인지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겨 약간 큰소리로 감사함을 속삭이며 내려온다. 왼발 왼발 왼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탐방로를 다 내려오고 또다시 선택의 기로다. 내시묘길로 돌아갈까? 아니면 반듯한 우레탄 길로 갈까? 아까 왔던 길과는 다른 경로를 따르기로 한다. 살짝 종아리 뒷부분이 당기는 듯하다. 아직 한참 남았는데, 어쩔 수 없이 비장의 무기를 꺼내어본다. 등산 스틱을 지팡이 삼아 걸어보기로 한다.
노르딕워킹이라고 들었다. 눈길을 걷는 것처럼 등산스틱 두 개를 번갈아가며 내딛는 걷기 방식이다. 등산스틱과 내 몸을 맞추며 걷다 보니, 제법 많은 길을 걸은 것 같다. 한껏 펼쳤다가 점점 줄이면서 맞추었는데, 내 몸에 맞추었다고 생각해보니 가장 짧은 길이가 돼버렸다. 스틱을 지렛대 삼아 다리를 한껏 멀리 펼쳐본다. 팔의 힘으로 걷는 것 같다. 그래도 두 개의 다리가 더 생긴 것 같고, 제법 속도도 난다. 다시 한 시간 전쯤 걸었던 그 길을 걷고 있다. 이젠 몇 걸음에 한 번씩 무릎이 시큰시큰하다.
살짝 후회도 된다.
너무 멀리 왔나?
버스를 탈까? 하는 유혹이 떠오른다.
망해가는 백제를 마지막까지 지키기 위해 가족까지 희생시킨 계백장군의 마음으로 나는 지갑을 두고 오지 않았던가. 유혹을 떨쳐내고 군 시절 행군의 기억으로 앞을 향해 내딛는다.
이젠 어깨까지 아파온다. 갈증도 심해졌다. 저 창릉천으로 뛰어내려 가 얼굴을 박고 개천 물을 마시고 싶지만 지금은 21C이니 건강을 생각해 그냥 걷기로 한다. 등으로 흘러내리는 땀줄기를 세어 보기로 한다. 두 줄기 인가, 세 줄기가 등의 근육들 사이로 파인 곳을 따라 흘러내린다. 젖어가는 운동복에서 약간의 시원함을 느낄 때 즘에 아파트가 보인다. 이제 가시권이다. 조금만 더 힘을 내어 보기로 한다.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발의 순서와 다리의 느낌에 집중해 본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오른발 왼발
집중력도 떨어진 듯하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 보이는 건 아파트와 자동차들이다. 출발했을 때 보이던 빌라들의 개성들이 이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다리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고, 신발을 끄는 횟수가 잦아진다. 비장의 무기인 등산스틱은 목적했던 바와는 다르게 그냥 지팡이가 되어 버렸다.
도착,
출발한 지 약 3시간여 만에 나만의 순례자의 길을 완주했다. 나에 대해 생각나는 것을 떠올리기 싫어 주변에 보이 것들, 내 몸의 반응들 위주 그대로 느끼며 걸어보았다. 뭐 별다른 목적도 없다. 이렇게 나를 생각하지 않고 걷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다. 운동이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우리 몸은 2만 보이상 걸으면 운동이 아닌 노동으로 받아들여 더 피곤하다는 글을 인터넷 어디선가 본 듯하다.
단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안 해보고 싶었고, 그냥 걷고 싶은 길을 걸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