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한다는 것. 마음의 굳은 결심이 없이는 쉬이 할 수 없던 운동이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에 부모님 손에 이끌려 몇 번 가본 것, 군대 가기 전에 친구와 심신수련 목적으로 지리산 가본 것, 그리고 운동한다는 목적으로 직장 생활 중에 몇 번 가본 것. 그 외에는 딱히 자주 오른다거나 취미로 갖는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결혼을 한 후에 신혼집이 우연히도 북한산 근처였지만 바쁜 직장생활과 잦은 음주로 인하여 등산이라는 것을 별로 생각하지 못했다.
요즈음 나는 북한산을 자주 오른다. 처음엔 그저 살을 빼기 위한 단순한 다이어트 목적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직장을 잃고 바깥 생활을 거의 하지 않다시피 하다 보니 어느새 무척 게으른 몸뚱이가 되어버렸다. 나조차도 내가 보기 싫은 그런 비대한 몸뚱이. 그런 나를 보고 있자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느 날 베란다 창을 통하여 멍하니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선을 옮기다가 북한산의 한 산봉우리가 보였다(지금 생각해보면 의상봉인 듯하다.)
작은 성취감이라도 자주 느껴야 한다 (마음을 달래고자 자주 보던 유튜브 방송에서 들었던)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무엇에 홀렸는지 주섬주섬 등산 장비를 꺼내어 본다. 몸에 맞지 않는 등산복을 끼어 입고, 등산 스틱, 배낭, 물 등을 챙기어 바로 북한산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타고 20여분을 가면 북한산 탐방로가 보이고 이 탐방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새로운 시작점이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여러 산봉우리로 갈 수 있는 등산로가 나누어진다. 유독 작은 바위들이 많아 걷기에 힘이 든다. 바위들의 면을 잘못 밟으면 이리저리 발목이 비틀려 상당히 피곤하다.
처음 목표로 한 곳은 원효봉이다. 백운대를 목표로 하였으나, 지금 내 몸상태를 가지고 오기로 올랐다가는 두 번 다시 등산을 안 할 것 같은 생각에 조금 낮은 봉우리로 향한다. 등산을 오르내리는 재미로 한다면 아마 이곳은 상당히 재미없는 봉우리일 것이다. 그냥 주욱 올라가기만 한다. 작은 바위들을 계단 삼아 그냥 오르기만 한다. 거친 숨을 헉헉대며 눈앞에 보이는 바위들을 올라가다 보면 원효봉이 나온다. 재미없는 산봉우리이긴 하지만 원효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치는 산행으로 지친 몸을 시원하게 해 준다. 올려다보면 다음으로 정복할 산봉우리들이 보인다.
다시 올라왔던 그 길대로 내려오고 또 그 길대로 자전거를 타고 온다. 무척 오래간만에 등산을 해서인지 다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하다. 그런데 왠지 다시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탐방센터에서 시작하는 탐방로를 오르다 보면 아니 이곳뿐만 아니라 등산로 전체에 절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 절 주변에는 작은 돌탑들이 많이 있다. 절에서 세운 탑이 아닌 등산로를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이 조그만 돌을 하나둘씩 쌓은 작은 탑이다. 바닥만 보며 걷던 산길을 자주 오르내렸다고 이제야 주변이 보인다. 작은 돌들을 주워 돌탑들이 뜸한 곳에 작은 소망을 담아 쌓아 올려본다.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있는 돌탑들을 바라보니 신기하다. 어제 분명히 많은 비가 내렸는데 무너진 돌탑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간절한 소망이 하나하나 담긴 돌들이 서로서로를 붙잡고 있어서였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니 약간의 소름도 끼치지만, 나의 소망이 담긴 이 돌탑도 이 자리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오래오래 버텨주기를 바래본다.
남자라면 정상이지. 그것도 가장 높은 곳의 정상. 북한산에서 가장 높은 백운대를 향하여 오르다 보면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함께 생각나는 것은 이것이 인생인가... 하는 것이다. 오르고 오르다 보면 이쯤인가... 하면 또 오른다. 너무 힘들어 고개를 들 수도 없고 무릎, 발목이 아파 앉으면 다시 못 일어날 것처럼 힘이 든다. 이곳을 다 올라가면 이번엔 계단 지옥이 나온다. 편히 올라가라 만들어 놓은 것인가.. 오르는 길이 없어서 만들어 놓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생각나는 것은 계단을 오르는 것이 의외로 힘들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냥 산길을 오르는 게 편한 것 같다. 마지막은 무섭기까지 하다. 깎아지른 듯 한 절벽을 로프와 철제 난간에 의지하여 오른다. 이 좁은 틈을 오르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이 서로서로 양보하며 길을 향한다.
확실히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와 맞이하는 감격은 오르는 고통과 비례하는 것 같다. 나의 폐와 심장을 뒤집어 놓은 듯한 고통과 바꾼 경치와 감격은 내가 알고 있는 형용사로는 표현하기가 힘들다. 함께 산행을 한 사람이 있었으면 조금 더 있고 싶었지만 이 감격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맛보게 하기 위해 우뚝 선 태극기를 배경 삼아 셀카 한번 찍고 쿨하게 하산을 결정한다. 마음으로는 아쉽지만... 이 힘든 길을 내려가다 보면 나의 의지로 내려가는 것인지, 그저 중력에 의해 아래로 끌려 내려가는 것인지 구분하기도 힘들게 털털털 내려온다. 그리 내려오다 보면 널따란 바위가 보인다. 이곳에도 여지없이 여러 사람들의 소망들이 빼곡히 쌓여 있다. 이 바위 위에도 나의 작은 소망을 담아 돌탑을 쌓고 주변 돌탑들의 소망도 함께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백운대를 다녀오는 날이면 안 아픈 곳이 없다. 좋은 경치를 바라본 눈과 벅차오르는 감격을 맛본 마음만 빼고..
대남문, 이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등산로이다. 험하지가 않다. 딱딱하지가 않다. 자주 오르는 원효봉과 어쩌다 오르는 백운대는 모두 바위가 많고 뾰족뾰족하다. 발을 잘못 디뎌 삐끗하면 발목이 매우 불편하다. 하지만 대남문을 향하는 등산로는 바위보다 흙이 많다. 뾰족한 곳보다 평평한 곳이 많다. 딱딱한 곳보다 푹신한 느낌의 흙이 많다. 높은 곳을 향하여 직선으로 오르지 않는다. 평평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물론 이곳도 깔딱 고개가 있긴 하다) 나오는 곳이 대남문이다. 바닥만 바라보고 걷지 않는다. 주변의 경치와 흐르는 계곡물들이 나를 반겨준다. 다른 사람들은 이 등산로가 지루하다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곳을 걷다 보면 깊은 숲 속의 어느 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큰 나뭇가지들이 보인다. 숲 속을 걷는 것 같아 한결 기분이 좋다. 올라갈 때는 목표한 곳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별로 안 쉬고 올라가지만, 이 탐방로는 내려올 때가 더 좋은 곳 같다. 흐르는 물과 바위가 어우러진 계곡이 예술이다. 이곳에 앉아 차 한잔과 수담을 나누며 산 밖의 시간들을 계곡물에 흘려보내고 싶어 진다. 또 술을 한잔 나누면 모두가 벗이 될 것 같은 그런 장소이다.
산을 자주 오르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바닥을 잘 밟는다. 바위의 옆면을 밟아 발을 삐끗하는 것도 줄어들었고 눈으로 보지 않아도 다리가 알아서 길을 찾는다. 앞만 보며 오르다 보면 다리가 힘들었고, 바닥만 보며 오르다 보면 주변의 경관이 아쉬웠다. 내가 북한산을 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들도 보게 되었고, 울퉁불퉁한 바위들을 잘 밟을 수 있게 되었고, 마음이 편안해지게 되었다.
산에 다녀오면 배가 고파서 다이어트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