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에 대해서

by 철용

1. 아낀다

요즈음 작은 습관이 생겼다. 북한산 몇몇 코스를 오르는 것이다. 기나긴 코로나19 시대에 살면서 비대해진 살을 빼기 위해 선택한 것이 등산이다. 자전거로 약 20여분을 이동하고, 또 산에 오르기를 2시간 코스, 4시간 코스로 나누어 오른다. 이렇게 험한 바위를 오르내리다 보니 나의 등산화가 탈이 났다. 밑창과 뒷굽 부분이 벌어지고, 작은 부속들이 떨어졌다. 그때마다 뭐 히말라야를 갈 것도 아니고... 하면서 접착제로 땜질을 한다. 떨어지면 땜질하고 다시 등산하고 또다시 접착제로 고쳐 신는다. 이러한 반복이 몇 번 되풀이되다 보니 어느새 등산화 주변이 접착제 자국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점점 흉해가는 이 녀석을 바라보며 참 나와 오래된 인연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30대 중반에 산 신발이니, 어느새 10여 년을 나와 함께 한 사이이다. 아내가 새로 장만을 해준다 하며 그만 버리라 하는데 왠지 그러고 싶지가 않다. 모르겠다 이 느낌을 뭐라 설명을 해야 할지 많은걸 아무렇지 않게 버려왔지만 이 녀석만큼은 쉽게 놓아줄 수가 없다. 나의 물건들 중에는 구입해 놓고, 아깝다는 이유만으로 제기능을 써보지도 못하고 구석에 박혀 있는 것들이 꽤 있다. 장식처럼 들고 다니다가 잃어버려 제 능력도 발휘 못하고 사라진 불쌍한 만년필이 있고, 이제야 글을 쓰면서 손에 안 맞아 고생하고 있는 만년필도 있다. ‘아낀다’하는 의미를 너무나도 잘못 사용하였다. 북산한 백운대를 오르는 길에 있는 바위에 앉아 투박해진 등산화를 보며 ‘아낀다’라는 의미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본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아끼기 위해서 속에 있는 좋은 것을 질식시켜가게 했던 나의 삶에 함께 한 물건들과 모든 이들에게 사과한다.


2. 제천의 찻집에서

어느 오후 제천에 있는 아내의 친구 춘기를 만났다.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 그녀가 안내한 찻집을 갔다. 세련되어 보이는 외관과 다르게 각종 전통차를 파는 곳이다. 큰 커피잔에 티백으로 우려내는 차가 아닌, 꽤 독특한 스타일의 다기와 찻잔, 거름망이 함께 나오는 차다. 우리 세명은 각각의 차를 시키고 주변을 둘러보며 어떻게 마셔야 할까 이야기를 나눈다.

이윽고 준비된 각자의 차. 주인장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차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뜨거운 물을 찻잎이 들어있는 다기에 대나무 거름망을 통하여 부어준다. 그 따뜻한 물을 조금 식혀 주기 위한 아니면 보관하기 위한 다기에 부어주고, 다시 조그만 찻잔에 부어 잔을 덥혀준 후 마셔 보라고 권한다. 다기의 전문적인 사용 방법과 이름은 아직 공부가 덜되어 앎이 부족하다. 하지만 차를 마시기 위해 준비하는 그 시간 동안 마음이 차분해져 가고 있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주로 달고 쓴 커피만을 마시다가 이 알 수 없는 부드러움의 차를 마시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차를 준비하는 -다도라고 해야 하나-행위가 좋아서 인지, 마음속까지 따뜻해지고 편안해지는 차 맛이 좋아서 인지, 이런저런 잡생각으로 미세먼지 마냥 뿌연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 같아서 인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마냥 설레어하고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 강아지 마냥 흥분하여 부인을 바라본다. 부인은 이미 나의 반응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다기들을 조회하고 가격을 알아보고 있다.

이 좋은 곳을 경험하게 해 준 춘기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무렵 조용히 가격을 안내해 준다. 아직은 커피 머신과 캡슐을 조금 더 사랑해 줘야 할 때인 것 같다. 머리가 복잡하고 뿌옇다고 생각이 든다면 나는 차를 마셔야겠다.


3. 메타버스

나는 만년필, 종이가 더 좋다. 버스를 타고 가면 나는 종종 눈을 감고 라디오를 듣는다. 거의 이현우 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듣는 편이다 그의 중저음 목소리와 편안한 진행을 좋아한다. 그렇게 프로그램에 빠져들어 갈 때즘 메타버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시사프로그램, 뉴스 등에서 자주 들어본 단어이다. 초월한다는 뜻의 메타와 우주라는 뜻의 유니버스가 합쳐져 생긴 말이란다. 우주를 초월한다? 가상의 세계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그것을 또 초월하는 다른 우주라니? 게다가 그것이 새로운 세계를 이끌 것이라며, 주식 또한 관련주가 상승하고 있단다. 참 난감하다. 나는 아직 스마트폰의 현실세계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데 자꾸 초! 초! 초!라는 접두사가 붙는 단어가 생겨난다. 나름 삐삐부터 시작해 PCS, 핸드폰, 스마트폰까지 잘 적응하며, 사용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X세대였던 나는 더 이상 이 META가 난무하는 시대에서 멈추는 것일까? 열심히 공부하여 META의 단어들과 함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나는 이제 스마트폰 정도에서 자발적으로 멈추고자 한다.

나는 잉크를 채워야 사용할 수 있는 이 만년필과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종이가 더 좋다. 글씨가 멋진 것도 아니지만, 오래 쓰다 보면 손가락도 아프지만, 쓰다가 틀리면 지울 수도 없지만 쓱쓱 써지는 이 종이의 질감과 진검 은색과 옅은 검은색이 함께 그려지는 이 만년필의 색감과 필기감이 내게는 META의 그것보다, 가상의 그것보다 훨씬 친근하다.


4. 책 읽는 기쁨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까지 약 1시간 동안 버스를 탄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곳까지는 비싼 광역버스만이 운행한다. 비싼 만큼 편안하다. 가끔 과속과 난폭운전을 하시기도 하지만 1시간 동안 편안히 갈 수 있음은 불편함 보단 긍정의 효과가 더 크다. 어느 날부터 그 1시간 동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집에서 편안하게 읽을 때는 그렇게 눈에 안 들어오더니, 이리저리 움직이는 차 안에서는 이상하리 만큼 잘 읽힌다. 1줄 읽으면 2줄 까먹고, 무슨 글을 읽었는지 무얼 읽었는지도 헷갈렸는데 버스 안에서 읽으니 제법 내용도 기억나고 마음에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 한 번쯤 부산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왕복을 해보면 얼마 큼의 책을 읽고 얼마만큼 내용을 마음에 담아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랜만에 책이 눈에 잘 들어오고 좋은 내용들이 마음에도 머리에도 오래 남았다는 기쁨에 이 글을 적어본다.


5. 향과 기도

아내와 함께 집 근처 쇼핑몰을 갔다. 갈 때마다 거의 같은 매장들만 가는 것 같다. 마트와 잡화점이다. 한참 동안 이것저것 훑어보며, 물건들을 고르고 구매한다. 이것저것 아이쇼핑 겸해서 둘러보다 ‘나그참파‘라는 향을 산다. 흠... 많이 낯이 익은 향이다. 인도가 생각나고, 요가가 생각나는 그 향이다.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향을 맡으며, 마음을 다스려 보라 한다. 내 마음이 그렇게 막... 나쁜 마음은 아닌듯한데 아내가 보기에는 참 안 좋게 보이나 보다.

그래. 아내가 그렇다면 그렇다는 거겠지. 햇볕과 주변의 소음에 눈이 일찍 떠지는 요즘이다. 평상시 보다 일찍 일어난 지금 바로 내방으로 가서 향을 피워본다. 마음속 가득 향내음으로 가득 채우기라도 하듯이 깊은 호흡을 해본다. 수행하는 듯하다. 그동안 안 좋은 마음을 이 향내가 치료라도 해주는 듯 편안해진다. 이 편안한 마음을 느끼며 하늘에 작은 기도를 해본다. 모두에게 감사하는 기도를...


6. 글쓰기 책을 읽고

이것저것 많은 책을 읽어보며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은 대체 어떤 배움을 얻었기에 잘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그리고 브런치에 작가로서 글을 올릴 수 있게 되었을 때 글쓰기 관련 책을 샀다. 게으름의 이유로 책장에 파묻혀 있다가 얼마 전에야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3개의 글을 올린 후다. 글쓰기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쓴 글을 읽어보니 너무너무 부끄러워졌다. 이런 글을 써도 되는가 할 정도이다.

지금 이 순간도 이글이 좋은 글인지, 올바른 글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 나쁜 글, 수준 낮은 글에 가깝겠지... 조금씩 고쳐나가야지 결심해 본다. 좋은 글, 올바른 글을 못쓸 것 같아 글쓰기가 두려워졌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다른 훌륭한 작가분들이 비웃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이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많은걸 못해본 것 같다. 이제 많다면 많은 나이인 40대 후반이다. 간신히 붙잡은 나의 위시리스트인 이 글쓰기를 그깟 두려움과 걱정으로 인해 망설이고 싶지 않아 다시 만년필을 잡는다. 글쓰기는 많이 써봐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작가님의 말과 악플과 혹평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안에서 부족한 것을 배우라는 작가님의 응원을 가슴에 담으며 부족한 글쓰기를 계속해 나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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