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캠핑을 가다

by 철용

이렇게 많은 짐을 싣고 고속도로를 달려도 되는 건가? 초보 운전인 내게 있어서 SUV 차량의 트렁크와 뒷좌석을 가득 메운 생존 물품들은 정말이지 삶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하게 느껴진다. 조심스럽게 오른발을 왼쪽, 오른쪽으로 옮겨가며 양양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내 안의 레이서 본능일까? 그새 삶의 무게(?)에 적응이 되어버린 걸까? 또 다른 내비게이션이 작동을 시작한다. 조심해요~ 조심해요~ 브레이크~ 브레~이끄!~ (특유의 리듬이 있다.) 아내의 성화에 다시금 속도를 낮추고, 2차선으로 안전운행을 한다. 긴 터널을 몇 번쯤 지나고, 양양고속도로에서 또 다른 고속도로를 갈아탄다. 나의 왼편으로는 파란 빛깔의 동해 바다가 나타난다. 역시 바다는 사람을, 나를 설레게 한다. 양쪽 옆으로 나를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존재들과 함께하며 어느새 우리의 목적지인 삼척의 한 캠핑장에 들어선다. 소나무들 사이로 텐트를 칠 수 있는 데크들이 군데군데 숨어있다.


차에서 꺼낸 생존 물품들을 원하는 데크에 옮겨놓고, 어떻게 텐트를 쳐야 할까 구상해 본다. 흠~ 역시 행동파 아내이다. 어느새 텐트와 텐트 겉에 치는 텐트(?), 폴대, 로프 등을 펼쳐 놓는다.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을 보며 눈치 채신 분들도 있으시겠지... 그렇다. 우리는 처음으로 캠핑을 온 것이다. 처제에게 빌려온 캠핑장비들과 급하게 사온 액세서리들... 막막하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내린천 휴게소에서 잠시 본 유튜브로 텐트 치는 법을 본 것뿐인데, 모자를 뒤로 돌려쓰고 장갑을 끼고, 달려들어본다. 역시 헤맨다. 이게 왜 안 펼쳐지지? 한국 남자는 힘! 이런 생각으로 텐트에게 달려들어 보지만, 느껴지는 건 아내의 풀파워 등짝 스매싱이다. 아내가 나선다. 여기 잡아봐. 여기 당겨봐. 여기 다 꽂아 넣어. 여기 묶어. 여기 망치질. 여기... 여기... 묶어... 묶어... 당겨... 당겨... 몇십 번의 묶어와 당겨와 망치질을 반복하니 그럴듯한 우리 집(?)이 생겼다. 식탁도 생겼고, 주방도 생겼다. 아내를 바라본다. 주방에서 저녁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역시 우리나라의 경제를 일으키고, 산업발전을 이루어 낸 장본인들은 아줌마가 맞다라며 감탄하고 있다.


소나무들로 둘러 쌓여 있고, 바다가 옆에 있는 4월 중순의 어느 날 40 몇 년 생의 첫 캠핑이 그렇게 시작되어 가고 있다. 철인지 스테인리스인지 모르는 컵에 맥주를 따라 붓고 한껏 꾸민 식탁 위에서 아내와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군데군데 보이는 또 다른 이웃들 역시 자신만의 독특한 캠핑장비를 자랑하듯이 문 앞에 내어놓고 식사를 하며 떠들고 있다. 참 신기한 장비들과 텐트가 많은 것 같다. 역시 장비 빨인가? 욕심이 새록새록 움트고 있다. 맛있게 구운 삼겹살과 욕심들을 꼭꼭 씹어 먹으며, 어느새 어두워진 주변을 둘러본다. 조용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 소나무 숲 안에서 느껴지는 피톤치드의 향, 아내와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이쁜 달을 생각했지만 춥다. 바람소리가 이 추위에 왜 왔냐며 비웃듯이 울려 퍼진다. 고양이들이 이곳저곳에 남겨져 있는 음식물들 노린다. 낭만을 꿈꿨으나 추위와 바람과 고양이들의 습격이 있을 줄은... 얼른 설거지와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한 후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해! 캠핑 초보 양반!이라고 외치듯이 바람이 우리 집을 두들긴다.


히말라야를 정복하기 위해 베이스캠프에 모인 산악인 들의 모습 같다. 다행히 챙겨 온 전기장판이 있어 따뜻한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밤 9시에....


하~ 이것이 외풍인가 바닥은 따뜻한데 위의 공기가 차갑다. 코가 시릴 정도로 차갑다. 투둑 투둑... 뭔가 떨어지는 소리다. 비인가? 추운데 비까지 떨어지고, 무언가가 우리 집으로 침범하려 하고 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뭐지?


추위와 우리 집을 날려 버릴 듯한 바람과 빗방울과 침입자 걱정에 거의 못 자고 일찍 일어난 아침 아니 새벽. 새벽이슬의 무게인지 우리 집은 조금씩 내려앉아 있다. 텐트와 텐트를 덮고 있는 또 다른 텐트 사이에 앉아 있는 고양이 한 마리, 어떻게 여기 있을 수 있는 거니? 오랜 킴핑장 생활에서 나온 짬인 거니? 간신이 안 나가려는 침입자를 쫓아내고 집을 재정비한다. 다시 묶고, 당기고, 망치질, 주변의 이웃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무너져가는 우리 집을 그냥 두고 볼순 없는 일이다. 해가 나고 주변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며 새벽이슬을 한껏 머금은 텐트를 말려 주고 있다. 우리의 텐트는 자연에게 맡기고, 아내와 아침을 준비한다. 즉석밥과 카레로 간단히 때우고, 커피를 마시며 어젯밤 참사에 대해 아내와 담소를 나눠본다.


주변의 산책도를 따라 아내와 함께 걸어본다. 살짝 있는 오르막과 내리막길, 기분 좋은 흙길이다. 주변의 소나무 숲이 어젯밤 악전고투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듯하다. 숲길과 해변길을 걸으며, 오기를 잘했다는 식으로 아내와 대화를 나눈다. 자연과의 싸움 2차전을 남겨두고, 캠핑의자에 앉아 한껏 한가로움과 여유와 오후의 햇빛을 느낀다. 새로 산 선글라스로 멋을 내며, 새로 산 책을 펼쳐 놓고 한껏 허세도 부려본다.


뚱띠 씨~ 아내의 부름에 즉각 응답하며 밥상을 차린다. 멋, 허세는 옆에 고양이에게나 줘버린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고양이에게 우쭈쭈~ 이리 와~ 하며 친해져가고 있다.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 했나...


끼 먹고 나면 다음 한 끼를 뭐 먹을까? 하며 걱정한다. 이곳의 삶은 단순하다. 끼니 걱정만 하면 된다. 한차 가득 실어온 생존 물품들을 보며 어떻게 먹을까? 하는 고민만 하면 된다. 때때로 나를 괴롭히는 다른 세계의 고민들이 떠올라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금세 새로운 적들이 나타나 잊게 해 준다. 이 단순함이 좋다. 먹고 마시고 정리하고 나면 이내 다음 먹거리 걱정을 하고 아내와 옆집을 보며 부러워하고, 장비들을 보며 새로운 꿈을 키워 본다. 세상 많은 고민들이 별거 아닌 듯하다. 여기서는 이렇게 단순한데...


해가 뉘엿 뉘엿 저물어 가고 있다.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고, 침입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텐트 주변을 돌로 막아놓는다. 로프들을 좀 더 짱짱하게 묶어놓는다. 텐트 안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휴대용 가스버너 2개를 틀어 공기를 덮여놓는다. 인류도 이런 식으로 발전했을까? 점점 자연환경에 적응해가며 발전하는 모습에 뿌듯해한다. 야옹~ 침입자들이 나타난다. 후훗 오늘은 침입하기에 만만치 않을 거다 이놈들아~ 윙~윙~ 바람소리가 점점 세지며 우리 집이 요동친다. 후훗 오늘은 그리 쉽게 당하지 않는다. 오늘 밤은 침입자와 바람과 추위에 대해 완벽히 준비해 뒀거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 놈은 대체 어떻게 들어왔을까? 주방의 아이스박스가 침대인 양 편히 누워있다. 나랑 눈이 마주쳤는데 그냥 보고 있다. 비웃는 것 같다. 우리 집 천정은 또 내려앉아 있다. 그리고 추위에 나는 잠을 또 못 잤다. 자연과 주변의 변화에 대응하고, 침입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발전을 이루어낸 인류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다음에는 지지 않을 테다. 더 강력한 장비들과 함께 돌아올 테다


아내가 정성껏 준비해준 햄과 소시지로 아침식사를 마친다. 2박 3일간의 타지 생활을 돌아본다. 적들이 없었으면 조금 무료했을 수도 있었을까?


엄청 바쁘게 시작했고, 단순함으로 생활했고, 다시 엄청 바쁘게 마무리를 한다. 텐트를 접는 법 또한 만만치 않다. 비워낸 생존 물품들이 많아서 일까? 한껏 가볍게 짐을 싣는다. 잠을 잘 못 잔 탓인지 피로함은 가득하지만 마음은 정말 좋았던 캠핑 생활이다. 아내가 근처의 해수 온천탕을 찾아준다. 나를 가장 잘 알아주는 아내의 배려가 너무너무 고맙다. 한참을 달려 따뜻한 해수탕에 몸을 담그니 그간의 전투로 지쳤던 몸이 회복되는 것 같다. 너무 많은 고민들이 있을 때 캠핑을 가보면 어떨까? 사라지지 않고, 다시 돌아가면 또 나를 괴롭힐 테지만, 그곳의 생활은 단순함으로 나를 지켜준다. 혹시 아나? 고민을 해결할 단순한 방법이 떠 오를지... 한가득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고민이 가득한 곳을 향해 힘차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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