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by 철용

가장 먼 곳을 다녀오다. 일본도 다녀왔고, 태국, 베트남, 라오스 등도 다녀왔다. 물론 제주도도 다녀왔다. 내 생애 가장 먼 곳을 운전하여 다녀왔다. 별로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너무도 먼 곳이고, 살짝 두려웠던 곳이다. [사실은 운전한 지 얼마 안 되는 어마어마한 초보] 무엇을 보았는지, 갑자기 시작된 아내의 성화에 운전대를 잡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운전에 대한 두려움보다 아내의 성화가 더 무서웠던 것이리라. 이른 아침을 피해 그나마 차가 덜 다니는 10시 정도에 출발을 한다. 아내의 고향 제천까지는 자주 왕복을 하였던지라 자연스럽게 동서울을 통과하여 고속도로를 달린다. 어느 정도 달렸을까 내비게이션이 이끄는 데로 가다 보니 이내 처음 보는 고속도로를 지나고 있다. 덕유산? 해남? 어랏 어느 순간 나의 지식을 의심해 본다. 나는 분명히 경상남도 통영을 목적으로 가고 있지 않았던가? 지금 내게 보이는 이정표들은 전라도 쪽인 것 같은데... 초보운전인 특히 내비게이션 보기도 살짝 버거웠던 내게 이 상황은 너무도 암담했다. 불안감이 심해지면 자연스레 원망할 누군가를 찾는 다 했던가. 내비게이션 안내를 함께 봐줬던 아내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괜히 했다. 어마어마한 반격을 당하고 이내 정신 차려보니 해남과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남해, 고성 등을 지나 통영이라고 쓰여있는 이정표를 반가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잘했다며 나 스스로 칭찬을 한다. 너무 목적한 곳만 바라보며 직진하려는 생각이 참 어리석게 느껴진다. 이렇게 조금 돌아가는듯한 길이 오히려 가장 가까운 경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보는 게 어떨까? 그럼 조금이라도 마음에 여유로운 공간이 생기지 않을까? 그럼 조금이라도 더 주변을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능숙하지 않은 운전으로 이곳 통영까지 오며 생각해 본 초보 철학이었다. [철학이라는 표현은 좀 과한 걸까?] I.C를 통과하여 점점 시내가 다가오고 있다. 신호등도 많아지고, 길은 좁아지고, 차는 늘어만 간다. 아내가 사전에 계획했던 곳이라며, 동피랑이라는 곳을 가자고 한다. 식은땀이 흐른다. 차가 너무 많다. 주차... 주차... 바다와 맞닿은 곳이 주차장이라고? 안돼... 난 안될 거야. 제발. 다행인지 만차이다. 뒤에서는 어서 가라는 듯 바짝 붙어온다. [아마 이분도 나와 같이 주차할 곳을 찾는 중일 텐데] 주차할 곳을 찾아야 하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개똥철학을 생각할 정도로 여유 있던 고속도로와는 너무 틀리다.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가기 시작했고, 나는 또 원망하듯이 아내를 바라본다. 아내는 너무 평온하다.

“저쪽으로 가”

“왼쪽으로 가보자”

“아 저기 저쪽으로 들어가 봐”

아니 이럴 수가

‘여기와 봤니?’

‘저기에 왜 주차장이 있는데?’

그것도 여유 있는 주차장이 아내의 능력에 또 새삼 감탄한다. 이때부터였을까? 나는 아내의 운전 아바타가 되었다. 아내의 덕으로 여유롭게 주차를 하고, 동피랑 쪽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전복과 해산물이 나오는 식사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유명하다는 망고주스를 쪽쪽 빨며 동피랑 언덕을 오른다. 벽마다 특이하고, 기능적이며, 이쁜 그림들이 가득하다. 기능적이라는 표현을 한 이유는 가본 신분들은 알겠지만 사진으로 남기기 위한 다양한 기능적인 장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날개를 달고 천사가 되어본다. 뒤로 돌아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왼팔을 쭉 뻗어 해적의 동료가 되어 보기도 한다. 이런저런 자세로 사진을 찍고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어릴 적 할머니 동네를 뛰어다니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금호동이라고 지금은 연예인들도 많이 사는 아주 핫한 동네라고 한다. 동피랑 이곳저곳을 기웃 데며 돌아보고 어시장을 둘러본다. 참으로 활기차다 삶에 조금씩 지쳐갈 때 치료제는 못되더라도 건강 기능 식품 같은 역할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신기한 아내 덕에 편하게 주차한 곳을 찾아간다. 주차요금을 계산하고, 우리의 숙소인 호텔을 찾아 운전대를 돌린다.

바닷가 길을 달린다. 오른편에는 언덕 위의 집들 왼편에는 바다가 보인다. 아직은 좀 덜 차가운 겨울바람일까? 아니면 남쪽이라는 지리적 특성일까? 겨울 같지 않은 느낌에 차창을 열어보고 싶다. 식당들이 보이며, 저 멀리 언덕에 우뚝 서 있는 호텔이 보인다. 언덕을 올라 다시 지하로 주차장을 찾아 들어간다. 최대한 입구와 가까운 곳이 아닌 최대한 차가 없는 곳에 주차를 한다.

아내의 불만을 뒤로한 채 캐리어를 끌며 체크인 프런트를 찾아간다. 멀찍이 서서 아내가 체크인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나이가 들어서 일까... 앞에 나서는 것보다 뒤에 있는 것이 좋다. 그게 더 편하다. 아내가 참 고맙다.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대신하는 것 같아 아내에게 참 미안하다. 체크인을 마치고 배정받은 방으로 간다. 바다가 보이는 방이다. 참 시원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바다... 바다는 어릴 때 봐도 나이가 든 지금에 봐도 한결같다. 넓어지는 것 같다. 나는 항상 마음이 넓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결혼한 지금 나는 부정당하고 있다.

이 바다는 막힌 곳을 뻥 뚫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답답한 일들이 있을 때 이 바다를 찾나 보다. 바다가 주는 다양한 감정들에 빠져 있을 때 아내는 기록을 남긴다. 침대, 화장실, 어매니티 등 다양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물론 바다에 빠져있는 나의 모습도 늦은 점심에 이어 늦은 저녁식사를 한다. 근처 식당에서 해산물 요리를 먹는다. [점심때 보다 가벼운...] 아내와 식사를 할 때마다 [여행지에서] 생각하지만, 간혹 말로 표현도 하지만 아내가 운전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멋진 술안주들을 두고, 탄산음료나 마셔야 한다니 40년 나의 음주 인생이 뭔가 좀 억울하다.

아내는 면허가 있다. 이 억울한 마음을 읽었는지 호텔로 돌아와서 BAR를 가자고 하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나 보던 호텔 BAR! 그 BAR를 가는 거다. 비싸겠지? 당연히 비싸겠지? 이렇게 마음속으로 예방주사를 맞듯이 되뇌며 BAR를 향해간다.

나오고 싶다. 뒤돌아서고 싶다. 다른 곳을 찾다가 잘못 들어왔네 하며 나오고 싶다. 아내의 표정이 웃기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내에게 나가자고 말해 본다. 말없이 웃으며 메뉴판을 건넨다. 이것은 한 번만 더 나가자고 했다가는 큰일 날줄 알라는 아내의 깊고 무서운 뜻이다. 제일 싼(?) 칭다오 한 병을 시킨다. 아내가 시킨 음료와 건배를 하며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자축한다.

포근한 침대에 누워 있다. 공기 좋은 곳이어서였을까? 낯선 곳이어서였을까? 일찍 눈이 떠진다. 어랏. 아직 해가... 조식 시간인데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내와 일찍이 조식을 먹으러 왔다. 직원분이 안내해준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역시나 아내를 뒤따르며 여러 음식을 담는다. 나는 와플을 좋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멀리 하늘이 점점 붉어져오고 있다. 진한 오렌지 빛이라고 해야 할까? 조식을 먹으며 뿌연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느낀다라고 표현한다.

아내와 조식을 먹은 후 누구나 그렇듯이 침대에 누워 빈둥거린다. 뭔가를 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아니다 우리의 여행 스타일이다. 많지 않은 우리 부부의 공통점이다.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는 여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호텔을 즐긴다. 해가 뜨고 아내와 함께 루지를 타러 간다. 산 꼭대기에서 카트를 타고 신나게 내려오는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레저다 라고 생각했다. 미쳤다. 너무 재밌다. 세번 타게 해 준 아내가 너무 고맙다. 나는 아이들보다 더 신나게 재밌게 루지를 즐겼다. 고속도로를 120~130km로 밟고 내려왔어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속도감으로 다가온다. 드리프트라는 걸 해볼까? 내 옆으로 누군가 쌩~하며 지나간다. 아내다. 반드시 아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보아야겠다. 스릴 넘치는 속도감을 즐긴 후 근처에 있는 전망대를 간다. 케이블카와 계단을 이용하며 전망대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은 날엔 뭐 여러 섬이 보인다고 한다. 액티비티 한 하루를 보내고 호텔로 돌아온다.

루프탑 수영장이 있다. 손님들이 많지 않아 아내와 둘이 오후에 이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활동적인 하루를 보내고 드라이브 삼아 조금 떨어진 곳의 카페를 찾아간다. 바다가 바로 옆에 있는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카페가 있다. 나는 당근케이크를 좋아한다. 이 역시 40여 년 만에 알았다. 맛있는 당근케이크와 음료를 마시며, 마주 보이는 바다를 본다. 섬과 섬들 사이를 운항하는 여객선과 어선들이 바삐 물 위를 떠다닌다. 한가롭게 느껴진다. 물론 그분들은 바쁘겠지... 호텔로 돌아와 다음날 돌아갈 준비를 한다. 참 이곳엔 해수 사우나가 있다. 냉탕, 온탕, 건식 사우나 3개뿐이다. 혼자서 즐겨보는 호텔 사우나. 온탕에 앉아 창틈 사이로 얼핏 보이는 바다를 본다. 마치 내가 이 호텔의 주인이라도 된듯한 느낌이다. 여행의 여독이 풀리는 느낌이다. 이때부터였나. 아내가 호텔을 고르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던 게. 나는 호텔 사우나를 엄청 좋아한다. 아내와 함께한 통영의 마지막 날이다. 양가에 보낼 선물을 고른다. 이곳 어시장에서 나의 주먹보다 큼직한 굴들을 한 상자씩 보내기로 한다. 점심은 충무김밥으로 먹는다. 통영에 와서 충무김밥은 꼭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통영과 충무... 다들 아시리라 생각한다. 또 하나의 통영 특산품 꿀빵을 한 상자 사며, 통영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다.

통영 내 생애 가장 먼 곳을 운전하며 온곳. 충분히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구석구석 꼼꼼히 둘러보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아내와 함께여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이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있으면서 좋아하는지 모르고 있던 것들을 찾은 곳이기도 하다. 여행이란 이런 것일까? 좋아하면서 좋은지 몰랐던 것을 찾는 거! 모르던 것을 찾는 것.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통영 I.C를 나와 서울을 향해 액셀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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