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다. 찬바람이 조금씩 물러가고 조금 이르다고 생각한 벚꽃이 한창 피워 오를 때 쯤 새로운 보금자리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아내의 오랜 벗인 춘기다. 워낙에 붙임성이 좋은 [나에게 꼭 오빠라고 불러서는 아니다] 친구이기에 마치 나와도 오랜 벗 같은 느낌을 주는 친구이다. 반가운 마음에 그녀를 마중하고 짐을 풀고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지났다. 다음날 임진각 여행을 계획하며 잠을 이루었다. 오랜 벗을 만난다는 기쁨에 무리했을까? 아내의 허리가 말썽을 일으키고 말았다. 나와 아내와 춘기와 계획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아내는 어떻게 해서든 낫코자 이른 아침부터 한의원을 찾고 침을 맞고 물리치료까지 받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춘기에게 미안해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춘기의 병간호가 계속되었다. 놀러와서 이게 무슨짓일까. 다음날 도저히 안되겠는지 전에 허리 시술 받았던 정형외과로 갔다. 역시 시술 받았던 허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부주의가 문제였다. 허리에 주사 요법과 물리치료를 받고 나서야 아내는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 다행스러운 마음과 춘기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녀 혼자 기다리고 있는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당일 돌아간다는 춘기의 말. 보낼 수 없었다. 아내도 그냥은 못보내겠던지 간신히 움직이는 허리를 부여잡으며 이것저것 음식을 한다.
당일 내려가려는 춘기를 붙들고 다음날 함께 내려가자 설득하였다. 춘기가 놀러온다고 하였을 때 부터 데려다준다는 계획을 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미안한 마음이 더 커서였을터다. 아내는 친정에 온 딸 챙기듯이 춘기를 살뜰이 챙기고 하룻밤이 지나갔다.
꽉 막히는 외곽순환도로를 서울의 자랑거리 마냥 수다의 재료를 삼아 중부고속도로와 광주원주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지나 제천에 도착했다. 초보 운전 시절 아내와 둘이 진땀을 빼며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가서 먹었던 두부 요리집이 있다. 그곳 두부 요리를 다시 먹으러 갔다. 변한 것은 뒤에 춘기가 있다는 것과 운전하면서 거칠어진 나의 말투뿐인듯하다. 산초기름으로 두부를 굽는 구이요리와 두부찌개를 주문했다. 다이어트로 저염음식과 샐러드를 주식으로 하던 나에게 주황빛 빨간 두부찌개는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알싸하듯 고소한 산초기름 두부구이와 과하지 않은 양념의 두부찌개를 정신없이 먹고 나서야 제천 외곽의 맑은 공기가 느껴졌다. 춘기와 점심을 먹고 그녀의 차가 있는 제천 시내 모처로 갔다. 그녀에게 다음에 다시 한번 놀러 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아내와 나는 분홍빛과 하얀빛을 함께 흩뿌려데는 한적한 길을 지나가고 있다.
남제천I.C를 통과하여 다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방향은 서울이 아닌 경상북도 방향. 아내의 허리를 위하여 가는곳 이지만 실상은 내가 더 좋아하는 그곳. 풍기온천을 향해 가고 있다. 지나가는 차가 별로 없어서일까. 마음이 급해서일까. 오른쪽 발에 힘이 점점 들어가고 주변 풍광은 점점 더 빨리 지나간다. 얼마를 달렸을까. 목적한 풍기온천이 눈앞에 나타났다. 때마침 대중 온천 시설이 내부공사로 한창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약한 리조트동은 욕실에 두사람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욕조가 있으며 그 욕실에도 온천수가 나오고 있다. 프라이빗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아내는 방 이곳저곳을 사진으로 찍어 기록하고, 나는 그 기록이 끝나자마자 욕조에 물을 받고 있다. 온천수를 받으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언제부터 온천을 좋아했지? 군대에 있을 때 처음 휴가를 나와 아버지와 함께한 일동유황온천일까? [이곳은 신병이였던 내게 첫 유황온천의 효능을 알게 해 준 곳이다] 아니면 아내와 함께한 일본 여행 중 히타의 온천일까? 유후인의 멋진 풍경 속에 있는 료칸의 온천일까? 오타루의 온천일까? 그러고 보니 아내를 만나 참 많은 경험을 해 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잠시밖에 느끼지 못한 채 이내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있다. 미끌미끌한 온천수가 나의 피부를 따뜻하게 덮여주고 있을 때 [참 이곳은 아내의 허리를 위해…] 머리속이 하얘졌다. 대충 몸을 닦고 아내를 부른다.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침대에 누워 점심때 헤어진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얼른 새 온천수로 받아주고, 아내에게 얼른 들어가서 몸을 담그라고 재촉한다. 아내가 온천수에 담그고 있는 동안 점심때 아내의 친구가 사준 옥수수 막걸리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다. 몇 개월 전 막걸리를 마시고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 혼절한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막걸리는 나의 금기가 되었다. [꼭 막걸리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그때부터 아내에게는 내가 화장실이나 욕조에 오래 있다 싶으면 꼭 내가 대답 할 때까지 불러 나의 생존 여부를 확인한다. 뚱띠? 뚱띠?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귀찮음보다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다. 40대 중후반의 나이에 느끼는 아내에 대한 사랑은 고마움인 것 같다. 그래도 옥수수 막걸리에서 눈을 못떼고 있는 나는 참 막걸리를 좋아하는 애주가인가보다.
아내가 다 씻고 나온 후 맛만 본다는 핑계로 4~5잔을 마셨다. 입속에서 퍼지는 옥수수의 향과 고소한맛. 살짝 오르는 취기에 참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막걸리를 만들어낸 조상님들의 지혜에 또 한번 감탄합니다]
맑은 공기와 조용한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되었다. 11시에 체크아웃이라 얼른 온천수를 받아 한번이라도 더 온천을 즐기려 한다. 따뜻한 온천수를 온몸에 끼얹으며 망중한의 아침을 즐긴다. 아~ 이곳이 환란과 질병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10곳 중의 한 장소라는 풍기구나.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둘러본다. 산. 산. 산. 빙 둘러볼 때마다 벽처럼 나를 보호해 주는듯한 산이 내려다 보고 있다. 어찌보면 엄마의 품처럼 아내의 사랑처럼 나를 봐주고 있는듯하다. 또 다른 십승지들은 어디일까? 궁금해하며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리조트내 조식당으로 간다. 문 앞에 있다. 아니 문 옆에 있다. 간단한 반찬에 황태해장국이 식사로 나왔다. 간결한 반찬이지만 입안에서는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아내가 기록으로 남기는 동안 사장님께서 뜨거운 물 한컵을 내어 주신다. 뭐지? 식사하기 전 따뜻한 물로 속을 데우기 위함인가? 그런데 한컵 만? 머릿속으로 한 컵의 물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는 가운데 툭… 아내의 수저와 나의 수저를 그 안에 넣어 주신다. 아… 소독이었구나… 한양에서 이곳으로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찾아온 선비가 된 듯한 느낌이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고 떠나기전 따뜻하고 간결한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한끼의 아침에 깊은 감동을 받고 차에 오른다. 아내의 허리는 아직은 완전치 않은 듯 하지만 기분은 좋은 듯 하니 다행이다 라는 마음으로 풍기I.C를 지나 서울을 향하여 달리고 있다. 참 이곳에는 또 다른 맛집이있다. 소갈비살구이와 청국장을 파는 풍기역앞 작은 식당이 있다. 예전에 왔을 때는 기본코스였지만 비만해진 나의 몸을 보며 이번 기행에서는 눈물을 머금으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