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아주 작고 사소한) 15화

꼬리 자르기

by 철용

경찰서


형사반장은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마치 모든 사건이 끝난 듯 흥분에 겨워 있었다.

“성형사~ 대단하다! 이제 나도 윗선에 보고할 수 있겠구먼. 오늘은 회식이다, 회식!”

붉어진 얼굴, 들뜬 목소리. 그는 이미 사건을 종결선에 올려놓은 듯했다.

그러나 성형사와 다른 형사들의 표정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야, 어찌 됐든 잡힌 거잖아. 족쳐서 다른 공범 있으면 더 잡으면 되고, 앞으로 똑같은 범죄만 안 일어나면 되는 거잖아? 우린 할 만큼 했다고!”

고참 형사 한 명이 괜히 분위기를 띄워보려 소리쳤지만,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성형사와 이형사는 서로 눈빛만 나눈 채, 무겁게 취조실로 향했다.



취조실 앞


“뭐야, 잡혔다며? 이렇게 쉽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자 김민주였다. 그녀는 후배기자를 이끌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성 형사님 어디 있어?”

“취조실에 계십니다.”

“이상하지 않아? 반항도 없었다며? 조폭 말단 애들이 이렇게 깔끔하게 움직였다고?”

“조사해 보면 알겠죠.”

“아냐. 이건 냄새가 나... 아주 구린내가.”

김 기자의 목소리는 예리한 칼날처럼 공기를 가르며 취조실 안으로 스며들었다.



취조실 안

“자백할 거지? 서로 귀찮으니 빨리 끝내자.”

“... 잘못했습니다.”

“우리 죄 다 인정합니다.”

“얼른 감방 보내주세요.”

범인들은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오히려 자백을 서두르는 듯했다.

성형사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 형사, 자백 다 받았으니 서류 정리해서 검찰로 넘겨.”

“네? 이대로요?”

“그럼 뭐 어쩔래?”

성형사는 답 대신 담배를 물었다.

어둠 속에서 담배 불이 깜박일 때, 김 기자가 다가와 라이터를 켜 주었다.

“아니지? 성 형사도 알잖아. 저놈들 아니라는 거.”

“자기들이 했다잖아! 자백한다잖아! 잡아가라잖아!”

성형사는 언성을 높였고, 담배를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인플루언서들한테 수억씩 뿌릴 돈이 저놈들한테 있다고? CCTV는? 해킹할 능력이 있어 보여?”

김 기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

“돈 있어! 나이트클럽, 룸싸롱으로 벌었다더라.”

“해커는? 계좌내역은?”

“코인으로 줬대. 추적 못 한대.”

성형사의 눈가가 떨렸다.

“돈이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파봐야지!”

“위에서 그만 하래! 클럽 돈이면 됐다고, 계좌추적 필요 없다고.”

잠시 정적. 성형사의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말로 다 표현되지 않았다.

“씨발... 꼬리 자르기잖아.”

김 기자는 한숨을 쉬며 그를 바라봤다.

“성 형사도 느끼잖아. 이건 아니라고.”

그녀의 말이 옳았다. 성형사는 그것을 알았기에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회식 자리, 고깃집


“다들 수고했다! 자, 오늘은 내가 쏜다! 건배~!”

반장이 들뜬 목소리로 술잔을 들어 올렸다.

“... 건배.”

“건배...”

형사들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뭐야, 목소리에 기운이 없잖아? 우리가 범인 잡았다니까! 뭐가 문제야?”

고참 형사가 불호령을 내리자,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찜찜해서 그렇습니다. 뭔가 더 있어야 하는데...”

“파서 뭐 해? 안 나오면 어쩔 건데. 위에서 그만하라잖아. 그냥 처넣고 끝내라잖아!”

“형님, 말이 너무 심하시네요.”

분위기는 금세 험악해졌지만, 이내 누군가 고기 판을 뒤집으며 말을 돌렸다.

“야, 싸우지 마라. 소고기다, 소고기. 먹자고.”

성형사와 이형사는 묵묵히 술잔만 기울였다.

기름 연기와 웃음소리가 뒤섞인 자리였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묵직한 먹구름이 걷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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