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퍼의 逍遙(소요)

13. 세한도(歲寒圖)를 아시나요?

by 풀산 캘리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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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역경 속에서도 변치 않는 의리와 지조를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서예를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편의 이야기처럼 풀어보겠습니다.


1844년,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예술가 추사 김정희는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를 갑니다.

[추사 김정희가 1844년에 제주도로 유배된 사건은 ‘윤상도 옥사(尹尙度 獄事)’와 관련된 정치적 사건으로,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안동 김씨 세력과의 갈등 속에서 발생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외롭고 고된 나날이 이어지던 그곳에서 그는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립니다. 그것이 바로 세한도(歲寒圖)입니다.

세한(歲寒)이란 “겨울이 깊어져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끝내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는 공자의 말에서 나온 표현으로, 역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굳은 절개를 뜻합니다.


김정희가 유배지에 있을 때,

[추사 김정희는 1840년 9월부터 1848년 12월까지 약 8년 3개월 동안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은 먼 북경까지 가서 귀한 책을 구해 스승에게 보내줍니다. 세상 사람들이 등을 돌리던 시기에 변함없이 스승을 도운 제자의 마음은, 겨울에도 푸른 소나무처럼 굳건했습니다.


이에 감동한 김정희는 소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작은 집 한 채를 그려 이상적에게 선물합니다. 그림 속 황량한 겨울 풍경은 스승의 외로운 처지를 보여주지만, 푸른 소나무는 제자의 변치 않는 마음을 상징합니다.


세한도의 왼쪽에는 김정희가 직접 쓴 글이 있습니다. 그는 제자의 의리를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며, “세상이 추워져야 진정한 절개를 알 수 있다”는 뜻을 적었습니다. 그림을 받은 이상적은 크게 감동하여 중국 학자들에게 보여주었고, 그들은 차례로 감상문을 덧붙였습니다.

[세한도의 감상문을 남긴 중국 학자는 청나라의 문사들로, 대표적으로 장악진(張岳鎭)을 비롯해 총 16명의 학자가 참여했습니다. 이상적이 세한도를 중국에 가져가 보여주자, 그들은 추사 김정희의 절개와 제자의 의리에 감동해 발문을 덧붙였습니다.]


그 결과 세한도는 10미터가 넘는 긴 두루마리가 되었고, 조선과 중국 학자들의 교류와 의리를 증명하는 기록이 되었습니다.


세한도는 일본에 머물렀다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 근대 서예가이자 수집가였던,

소전( 素荃) 손재형(孫在馨, 1903–1981)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일본에 있던 세한도를 구입해 한국으로 가져와 보존했고,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어 오늘날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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