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에 이상함을 느끼고 들어오신 분들, 다행입니다.
2017년, 가을 나는 대학교 공과대학 건물의 5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때마침 점심이라 뭘 먹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류 가방을 들고 갈색 코트를 빼입은 학과 교수님께서 어디 가시는지 내 옆에 섰다. 인사를 하고 어색한 정적이 흐르는 채로 내버려 둬도 됐겠지만, 내 성격이 이를 용납 못 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한국인이라면 역시 ‘밥’, 먹는 이야기가 최고다 싶었다. 그래서 머리를 굴렸다.
밥? 밥은 친구들 사이에서 <밥 먹었어?>라고 하는 건데... 밥의 존칭은 뭐지? 진지? <진지 드셨어요?> 이건 너무 나이 든 사람한테 하는 말이잖아.... 생각해 내. 뭔가 있었는데.!!
그리고 내 머리보다 반 박자 빠른 내 입은 그냥 뱉어버렸다.
“교수님, 밥 드셨어요?”
망. 했. 다.
교수님은 약간의 이상함을 느꼈는지 나에게 되물으셨다.
“식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니?”
아. 차. 식사라는 단어가 있었다!!
나름 공부 열심히 했고, 교수님들이 인정하는 나였는데... 그런 기본적인 단어를 말하지 못했던 스스로가 멍청하게 느껴졌다. 헛똑똑이가 된 느낌. 노력은 하는데 말을 하면 내 이미지를 깎아먹는 느낌. 교수님 앞에서 얼굴이 붉어졌다. 교수님은 웃으시면서 말했다.
“이제 먹으러 가려고. 민지도 점심 맛있게 먹거라.”
나는 부끄러움에 뭔가를 잊은 물건이 있는 듯 행동하며 교수님 먼저 엘리베이터를 태워 보냈다. 복도에 멍하게 서서 생각했다. ‘나는 그 단어가 왜 생각이 안 났을까?’
그 이야기를 집에 가서 엄마에게 했더니 엄마는 명쾌한 답을 내려줬다.
“그 단어를 평소에 쓸 일이 없어서 그렇지 뭐. 네 친구들이랑만 이야기 하면 ‘식사’라는 단어를 쓸 일이 잘 없지 않아? 그리고 어른이라고는 부모님이랑 이야기하는 게 전부인데 요즘에 워낙 다들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니 더더욱 쓸 일이 없지.”
그렇게 우리는 적절한 단어를 쓰는 방법을 못 배운 채, 아니 쓸 일이 없이 친구들과 격식 없이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덜컥 사회에 내던져진다. 상황이 바뀐다고 우리의 말투나 매일 쓰던 어휘가 갑자기 바뀌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서른이 되어 주위를 둘러보면 더 심한 일들이 20대들 사이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몸은 자라고, 나이는 먹는데 언어는 배우고 연습하지 않아서 초등학교 저학년이 쓸 만한 말들을 계속 쓰고 있었다.
그 이후로 ‘식사’ 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에 뿌리 깊이 박혔고, 그 단어를 잊을 수가 없었다. 단어 하나가 나의 품격을 결정짓고, 내 이미지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적절한 때에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 일, 그런 단어를 내뱉어서 입에 익숙하게 하는 것 또한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