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우리는 시신을 태울 곳으로 향했어. 아빠의 영정사진을 들고 장례식장을 서서히 빠져나왔어. 큰 장례차를 타고 출발하는데 누가 뒤에서 경적소리를 빵빵 울리지 뭐야. 장례차가 서자 뒤따라 오던 이모가 장례차 뒷 트렁크가 열린 걸 발견한 거야. 하마터면 시신이 달리는 차에서 떨어질 뻔했지 뭐야.
다시 차 트렁크를 잘 닫은 뒤 이모가 말했어.
“아직 형부가 떠나기 싫은가 보다.”
아빠는 죽기 전 숨도 잘 못 쉬고, 말도 잘 못 하면서 목소리를 쥐어짜서 이모에게 이렇게 말했었거든.
“내 좀 어떻게 해도.”
죽고 싶다는 뜻이 아니었어. 너무 살고 싶어서. 어떻게 좀 안 아프고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이었어. 자신의 목숨을 남에게 부탁하기까지 그 심정은 어떨까. 이모는 그 말이 자꾸 생각이 났나 봐. 그래서 이모가 문이 열린 걸 발견한 걸 수도.
시신을 잘 고정시킨 뒤 차를 타고 시신을 태울 장소에 다다랐어. 안내 데스크에서 말없이 주민등록증을 꺼냈어. 그 사람도 별말 없이 종이를 한 장 주더라고. 등록을 끝내고 대기실로 올라가려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뭐야. 산이 운다고 표현을 해야 할까.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니 한 쪽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어. 그들은 시신이 불구덩이 속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관을 어루만지고 있었지.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적막한 메아리처럼 울렸어. 그렇게 모두 다 같이 목 놓아 울 때 사람들의 소리는 낮은 음의 장송곡처럼 들렸고, 기이함 그 이상이야. 좀 있다 내가 겪을 상황이겠지.
대기실 안은 오늘 시신을 태울 고인들의 영정사진이 세 줄로 나란히 세워져 있어. 그 중에 눈에 띄었던 건 10살 남짓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의 영정사진이었어. 나이가 지긋한 노인 분들이 점잖게 앉아 있는 모습을 뒤로 하고, 어딘가에 놀러 갔다가 찍은 듯한 사진에 가슴이 먹먹했지.
‘무슨 일을 당한 걸까.’
‘병에 걸린 걸까.’
‘지금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그러다 이런 생각으로 빠졌지. 그래도 우리 아빠는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모든 과정을 겪고 세상을 떠났기에 어느정도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저 아이의 죽음 앞에서는 어떻게 부모가 스스로 아이의 죽음을 납득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로 아빠의 죽음을 잠시 잊었어. 배는 고팠지만 뭘 먹을 입맛은 없었어. 그리고 우리 차례가 되었지. 모두가 아빠의 관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어. 엄마가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아빠의 관을 보며 울면서 외쳤어.
“교백아! 잘 가래이!”
진짜 마지막이니까. 다시 대기실에 앉은 나는 내 살이 타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했지. 며칠 잠을 못 자 멍하기도 했어. 대기실 화면으로 타고 남은 뼈가 분쇄되는 장면을 보여줬고, 직원은 하얀색 가루를 쓸어 담아 종이로 쌌어.
그렇게 내 손 위에 뼛가루가 들렸지. 아빠가 이제껏 사느라 애쓰고 남은 무게라고 치기에는 너무 가벼웠어. 그리고 아빠의 죽음을 다르게 생각했어. 아빠는 지금 마음이 가벼운 거라고.
쇼펜하우어의 <딱 좋은 고독>이라는 책에는 이렇게 나와있어.
‘인생은 고통 아니면 무료함이다‘
내가 염세주의자는 아니지만 고통의 연속이라는 말은 동의해. 오랜 고통 끝 잠시의 행복 그리고 다시 고통과 행복의 반복이지. 행복이 더 긴 사람은 거의 못 봤어. 행복이 더 길면 행복이 아니라고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네.
아빠는 고통에서 모두 벗어나서 가벼워진거야. 아버지로써의 고통, 자식으로써의 고통, 사회생활에서의 고통, 육체적 고통 모두에서 벗어난거지. 죽음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겠어? 영원히 산다면 그것도 무료함과 고통의 연속인 거겠지.
오늘은 영정사진에 보이던 남자아이의 환한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이렇게 누워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따듯한 차 한 잔 마시고 오늘을 시작해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