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얼마 전부터 엄마가 한쪽 골반이 아프다고 해. 아빠 병간호할 때만 해도 그런 말 안 했거든. 엄마는 이제껏 아픈 데가 한 군데도 없었는데 말이야. 아빠가 돌아가신 지 2개월쯤 지나고 나서 그러니까 덜컥 겁이 나는 거 있지.
걸을 때마다 쑤시고, 앉았다가 갑자기 일어나면 다리가 굳은 것처럼 골반이 아파서 절뚝거리게 된다더라고. 처음엔 나도 그러려니 했어. 잠깐 아픈 거겠지 생각했어. 그런데 엄마는 그 고통이 계속 지속된 채 한 달을 더 살았나 봐. 말을 안 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지 뭐야. 그러더니 어느 날 이렇게 말했어.
"병원을 가 봐야겠어."
병원. 그 지겹도록 CT, 피검사를 반복하던 그곳을 또 가야 한다는 사실에 한 숨이 나왔지. 마치 그런 느낌이었어. 저 멀리서 큰 파도가 오고 있는 게 보이는데 몸이 안 움직여서 못 피하는 순간처럼. 엄마는 회사 근처에 병원이 있다며 짬 날 때 갔다 오겠다고 했어.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병명이 뭐냐고 물으니까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 한 용어들인 거 있지. 영어로 적혀 있는 소견서를 가지고 왔더라고.
"의사 말로는 쉽게 말하면 골반 쪽 인대가 끊어진 거래. 근데 수술한 사람들 중에 더 안 좋아지는 경우도 있어서 그냥 조금 아픈 채로 살라고 하더라. 아프면 진통제 먹고."
큰 병이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방법도 없다는 말에 마음이 너무 짠했어. 저렇게 아픈 상태로 그냥 살아야 된다고 했다니.
"엄마, 돈 벌어서 자식 공부시켰으면 이런 데 써먹어야지!" 말하면서 엄마를 위로했지. 이렇게 넘어가면 안 되겠다 싶어서 엄마의 병에 대해 찾아봤어.
원인은 운동을 너무 열심히 했거나, 사고로 그 부분이 다쳤거나, 노화이거나 등등. 그걸 어떻게 알겠어. 원인 불명이라는 소리밖에 더 되겠어. 그런데 어떤 글을 보니 조금이나마 완화시켜줄 수 있는 게 운동이라더라고. 그 주위의 근육을 강화시켜주는 거지. 그렇게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전했어. 그랬더니 내가 신경 써줘서 그런 건지 운동하면 된다는 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것 같더라고.
사실 나는 29살까지도 내가 엄마의 어린 자식 같은 느낌이었어. 내가 보호받아야 할 대상처럼 느껴졌지. 부모님들 다 멀쩡하시고, 나는 아직 내 꿈을 펼치지 못 한 자라는 새싹이었어.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마저 몸이 한 군데씩 아파가면서 이제는 내가 부모님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제는 내 차례구나. 그렇게 철없던 내가 빨리 자리를 잡고,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둥지를 틀었어.
영국에 이런 속담이 있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게 자식에게 물려주는 최고의 경영수업이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가정을 책임져 주는 큰 산 같은 존재가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생존에 있어서 위기의식을 느끼는 자식이 일찍 철든다는 것 아닐까.
마리 퀴리 또한 결핵 치료에 필요한 방사선 원소 라듐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폐결핵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해. 나도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비로소 운전을 시작했어. 운전 면허를 이제서야 땄거든.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엄마가 운전을 못 해서 식료품을 사거나 아빠를 만나러 산소를 갈 때 내가 필요해. 그렇게 나는 운전을 통해 내가 다니던 동네를 벗어나 더 멀리 갈 수 있게 됐어.
스텔라.
나는 사람은 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우리는 인간관계를 맺으며 유기적으로 엮여있잖아.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싶어 하지. 처음에는 아빠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인 줄 몰랐어. 단역 혹은 가끔 악역인 줄 알았어.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야 알았어. 아빠는 기계 같은 나에게 사랑을 알려주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란 걸. 그리고 나는 아빠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란 걸. 아빠를 사랑하고 나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아.
아빠가 아프고부터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나는 철이 많이 들었어. 그래서 아빠한테 고마워. 나한테 큰 선물을 주고 떠나서. 때로는 엄마가 나를 여전히 보살피고 있긴 하지만 나도 엄마를 잘 보살피고 있어. 그렇게 또 나는 매년 조금씩 자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