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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민지 Oct 15. 2024

서른 살 난임, 신경쓰이는 남자가 생겼다

30대 여자 연애 고백사 4

추석 명절을 앞두고 회식이 예정되었다. 오랜만에 고기를 먹을 생각에 신나 있었다. 장소에 도착하니 혼자여서 자리에 먼저 앉아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 때, 문이 열리고 K가 걸어왔다. 유일하게 그 회식 무리에서는 나와 같이 솔로인 분이었다. 상사가 종종 그와 나 사이를 어떻게든 엮어보려고 애썼지만 아직 우리 사이에는 아무 기류도 없었다. 가끔 그가 나에게 키 작다고 놀리는 것 외엔. 나는 그냥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마음에 인사했다.


“일찍 오셨네요.”

“아 네. 아직 아무도 없나 보네요.”

그 분은 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무한리필 집이라 다들 편하게 고기를 가져왔고, 나도 다른 분들이 구워주는 고기를 열심히 집어먹었다. 이런 외식이 너무 오랜만이라 자칭 고기 전문가들이 구워주는 여러 부위를 감탄하며 먹었다.

그러다 다들 배가 부르기 시작할 때쯤, K는 자기쪽의 불판에 남은 고기를 갑자기 내 접시 위에 올려줬다. 그러니 상사는 호들갑을 떨며 우리를 다시 엮을 시동을 걸었다.


“뭐야뭐야. 챙겨주는 거야?”

“고기 다 타요.”

그러면서 이 분은 맞은편의 다른 분의 접시에도 고기를 얹었다.

살짝 기분이 좋을 뻔하다가 내 마음도 같이 식어버렸다.


“자 2차 갑시다!”

술 마시는 자리를 유독 좋아하는 상사는 2차를 가자고 성화다.

“바로 옆 노가리 집 갈까요?”

대략 6명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았다. 하필 내 옆 의자가 남아 마지막에 들어온 그 분과 또 바로 옆에 앉게 되었다. 일 이야기가 한창 오가다가 잠깐 뜸이 돌자 상사는 바로 나와 그분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둘은 지금 무슨 사이야?”

그러자 K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썸 타는 중이예요.”

너무 의외의 대답에 당황한 나는 구색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에 말했다.

“아 알아가는 중이예요...”

“썸도 아닌 것 같은데?”


다른 분이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상사는 술이 약간 챘는지 혼자 들떠서 계속 우리 둘 사이를 이으려고 노력했다.

“만약에 우리 K교수님이랑 추교수님이 잘 만나서 결혼하면 1000만원 준다!”

“어? 녹음! 녹음 할게요! 다시 한 번!”

K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나는 서둘러 휴대폰 녹음앱을 켜고 상사의 입 앞으로 갔다댔다. 일단 녹취는 성공했다. 써먹을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화제를 바꾸고자 요즘 유행하는 MBTI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술이 반쯤 취한 듯한 상사에게 MBTI가 뭐냐고 물었다.

“MBTI? 그게 뭔데? 난 몰라! 난 혈액형만 알지.”

그러자 이야기는 혈액형으로 이어졌다. K는 나를 보며 “혈액형이 뭐예요?” 라고 말했다.

“저 B형이요.”

그러자 그는 또 놀릴 거리를 하나 잡았다는 듯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B형이요? 성격 이상하다는...”

“에이. 요즘 누가 B형 이상하다고 해요! 그럼 쌤은요?”

“저는 A형.”

“A형 아... 소심하다는 A형.”

“나도 A형인데!” 라며 상사가 끼어들었다.


그러더니 그 분은 내 맥주잔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맥주 제가 마셔도 괜찮아요?”

“아 제가 입 댔던 건데... 괜찮으세요?”

“저는 괜찮은데?”

나는 굳이 컵에서 내 입이 닿지 않은 쪽을 가리키며 “이쪽으로 드시면 될 거예요” 하며 싱긋 웃었다.


“둘이 결혼하면 내가 1000만원 준다!”

그렇게 술 취한 상사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자리를 파했다. 서로 집에 어떻게 갈거냐며 길에서 소소한 대화를 하던 중 술 취한 상사는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멀뚱히 서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K가 내 앞으로 와 상사를 가로막으며 옆으로 밀치고 나를 반대쪽으로 옮겼다.


그 순간 나는 멍했고, 그 순간이 굉장히 천천히 가는 걸 느꼈다. 뭔가가 두근거렸다. 난 K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집에 가서 그 날 밤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다음 날, 고등학생 수업이 있었던 나는 수업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딴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는 열심히 스토리보드를 그리고 있는 학생들에게 내 얼굴의 옆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얘들아 내 눈이 튀어나왔니?”

“네? 전혀? 갑자기 왜요?”

“아니... 누가 나한테 눈이 튀어나왔대. 그리고 자꾸 키 작다고 놀려.”

“그건 좋으니까 일부러 장난치는 거 아니예요?”

“어제 다 같이 회식하는데 내 맥주잔 가져가서 그냥 마시고, 할튼 이상해.”

“쌤... 근데... 이렇게 사소한 행동들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이미 그 사람을 좋아하는데 부정하는 단계 아닌가요?”

어린 것들이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버렸다.


“얘들아... 어떡하지?”

“쌤! 근데 쌤이 너무 아까워요. 쌤은 진짜 너무 예쁘고 완벽하단 말이예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래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해도 될까? 그 사람이 아이를 원한다면...? 내가 다가가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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