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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안 Sep 29. 2021

복희에게

저 멀리 어디엔가 있을, 그게 기왕이면 천국이었으면 하는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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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논쟁이나 불편한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여정을 마친 프로도는 일기장에 이런 글을 남긴다.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
놀라운 경험을 한 뒤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조차 치유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떤 상처는 너무 깊어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엄마의 죽음이 나에게 그래. 벌써 22년이나 지났지. 엄마는 내가 10살 때, 당신이 42살 때 떠났어. 아빠의 말처럼 '하나님이 엄마를 너무 사랑하셔서 엄마를 조금 일찍 천국으로 데려가셨다'라고 말이야. 너무 어려서 시간 개념이 없었어. 엄마가 얼마 동안 중환자실에 있었는지, 얼마나 사선에서 외줄 타기를 하며 버티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어. 엄마의 외가인 심 씨 가문이 나를 정신적으로 학대하기 전까지 말이야.


20년 동안 먼저 연락도 없이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단지 피상적인 글 하나 가지고 나를 전부 파악했다는 듯

이때다 싶어 걱정을 빙자한 악담을 퍼붓는 당신들이

나를 진짜 가족으로 생각하는 게 맞을까.


꼭 애매한 관계들이 그저 누구 하나 힘들다니까 이때다 싶어서 우르르 몰려들어 다단계를 권하거나 전도 영업하는 꼴이 우스워 한동안 인스타를 비활성화했다. 공감능력 = 지능이라는데, 그렇게 아프다는 사람에게 네가 아픈 이유가 고작 하나님을 안 믿어서라니. 모태신앙이었던 내가 냉담자가 된 게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대들 목사 가족. 단체로 지독하게 미쳐버린 사이비들. 내 최측근인 크리스천에게 물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단다. 그제야 깨달았다. 당신들을 더 이상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길 그만두는 게 내 정신건강에 더 이롭겠다는 걸.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 말을 듣고 나서 몇 날 몇 주를 폐인처럼 살았다.

엄마가 하늘나라 갈 때 아빠가 말했어.

하나님이 엄마를 너무 사랑하셔서 엄마를 조금 일찍 데려가셨다고.

내가 10년 전 병상에 누워있을 때 매일 잠들기 전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했어.

존재한다면 나 좀 제발 엄마한테 데려다 달라고.

근데?

여태 살아있지.

그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왜? 하나님이 나는 사랑하지 않으셨나 봐?

그걸 계기로 22년 만에, 우리에겐 마치 불문율처럼 금기시되었던 엄마 얘길 아빠에게 꺼냈어. 전화 너머로, 울부짖으면서 말이야.

도대체 내가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게 뭐냐고. 그들이 나에 대해 아는 게 뭐냐고.

저들이 뭔데 감히 나의 아픔을 고작 종교의 문제로 들먹거리며 이 와중에 전도 영업을 할 생각을 하냐고.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뇌사 상태로 3일을 연명했다고 했어. 아빠는 그때가 너무 추운 겨울이라, 아직 어린 나와 동생을 빈소로 데려가지 못했다고 했어. 아홉 살에서 열 살로 넘어가던 겨울, 1999년 1월, 그 계절이 얼마나 추웠는지는 지금도 생생해. 엄마가 사라지고, 친구들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으며 생소한 지역으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나에게는 온통 살얼음판이었어.

엄마의 유골함은 외할아버지 산소 옆에 묻혔어. 하지만 재개발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외할아버지 산소를 이장했지. 엄마는 두고 말이야. 소식을 뒤늦게 안 아빠가 온 산을 다 뒤졌대. 2박 3일을 근방 3km씩 파면서 말이야. 근데 결국 엄마의 유골함은 찾지 못했어.


어느 지역의 재개발된 고속도로 어디에선가 흩날리며 사라졌겠지.


엄마의 빈자리는 친할머니가 채워주셨고, 1년 만에 나는 새롭게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생겼어. 그래서 다행히 ‘엄마 없는 애’라는 사회적 편견과 교내에서의 은근한 따돌림에서 무사히 벗어나 살 수 있었어. 하지만 어딘가 늘 공허했고 텅 비어있었지. 결핍 투성이었어.


스무 살 때까지는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그냥 내가 볼 수 없는 지구 반대편 어디에선가 잘 살아있을 거라 나 자신을 속이며 살았지.

몸의 병은 이윽고 마음의 병으로 번졌어.

딱 한번, 인스타에 푸념하듯 쓴 글이 그들의 귀에 들어갔어. 난리가 났지. 한동안 연락도 없던 사람들이 우르르 전화를 해서 내가 아픈 건 하나님을 안 믿어서래.

엄마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믿었으니까 분명 천국에 갔을 거래.

그러니까 너만 믿으면 꼭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래.


내가 오열하면서 물었지.

나는 힘들 때 어딜 가서 엄말 보냐고

강물에 뿌렸으면 강이라도 가고,

납골당에 안치라도 했으면 납골당에라도 갈 텐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엄마의 유골은

재개발된 고속도로 어딘가에서 흩날리고 있을 텐데,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냐고.

근데 사촌오빠라는, 우리 엄마 동생 아들이란 네 첫마디가 뭐였니.

울부짖는 내게 감정이란 1도 없는 목소리로 네가 그랬지.


‘혜지야 어차피 이 세상에서 고모는 못 만나.'


맛탱이 간 사람들은 이상하게 동태눈인 것처럼

문맥 하나조차 파악 못한 네가 내게.

아 - 무 ….. 감정도 없는 이상한 목소리로.

'근데 만날 수 있어. 분명히 만날 수 있어. 고모는 하나님 믿다가 천국 가셨으니까 너만 믿으면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 우리 다 같이 만날 수 있어.'

사람이 울면서 20년 동안 가슴에 한 맺힌 말을 피 토하면서 말하는데

공감능력이라곤 1도 없이 그저, 전도하기에만 혈안이 되어있었지.

엄마 돌아가신 후 20년 동안 연락도 없다가, 자기들 경조사에만 꼬박꼬박 불러서 돈 챙겨가고 이제 와서 내가 아프단 사실 알고 나니까 연락 와서 고작 하는 얘기가 이건 모두 하나님의 뜻이고 네가 아픈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다?

목사 사모인 숙모가 내 동생한테 이런 말을 했다는 것도, 동생이 나중에서야 말해 알았어.

'나는 네 엄마가 부럽다. 하나님 일찍 만나러 가서'

그때 내 동생이 몇 살이었니.


얼마 전 낱장으로 달랑 묶여있는 내 어릴 적 필름 사진을 대형 앨범을 세 권이나 사서 한 장 한 장 정리하는데 300장은 너희랑 같이 찍은 사진이더라. 어릴 적 같이 살고, 같이 놀고, 같이 웃고 했던 시절이 워낙 길어서. 내 역사의 한 켠을 함께했던 너희들이 미래의 나를 이토록 아프게 할 줄, 그땐 알았을까. 정리하면서 얼마나 피가 끓던지.

네가 무심코 한 말에 내 가슴은 이미 찢기고 찢겨서 너덜너덜해졌다. 네가 한 말은 말이 아니라 뾰족한 대못이 되어 내 심장을 찌르고 그 말은 아마 내 무덤까지 함께하게 되겠지.


너야 목회자 가족에서 30년 넘게 살았으니 그분이 있다고 믿겠지만

난 아니란다.

나는 당신들 때문에 영원히 하나님과는 작별하기로 했어.

그러니 나는 지옥에 갈 거야.

죽어서도 엄마를 다시는 못 만나겠지.

엄마의 유골을 강에 뿌렸으면 강에라도 찾아가고

납골당에 안치했다면 납골당에라도 가고

산소라도 있었으면 가서 소주 한잔이라도 올리고 싶은데

사는 동안 이 세상 어디에서도 엄마를 볼 수가 없어

어쩜 여기가 지옥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죽어서 지옥에 간다 해도 상관없어.

내 인생은 이미 평생 지옥이었고 정말로 죽어서 지옥에 간다면 말 그대로

난 루시퍼랑 싸워서 지옥 짱 먹을 준비도 돼있으니까.


엄마의 핏줄이라 못 보고 산 20년 동안 그래도 가족이라며 애틋해한 내가 바보였어.

난 그저 20년 동안 5년에 한 번씩은 심 씨 가문 경조사에서나 불려 다니며 돈이나 내면서도

아플 때 걱정은커녕 위안조차 받지 못하고 하나님 안 믿어서 그렇다는 악담이나 받는 신세였던 거야.


그래도 덕분에 고마운 건 하나 있어.

어차피 지옥 갈 거니까 하고 싶은 거 맘껏 하고 살아야지라고 맘먹으니까 무서운 게 없어지더라.

눈이 돌아버렸어. 열심히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고 있어.

덕분에 처음으로 타투도 해보고 담배도 피우고 "소위 당신들이 말하는" 못된 짓 많이 하고 다녀.

당신들 말대로라면

나는 어차피 지옥 갈 거니까,

무서울 게 없으니까.


그러니까 처음으로 사는 게 재밌어지더라. 그 끝이 지옥이더라도, 엄마를 영영 못 본대도 상관없어. 내 마음속에서 엄마는 영원히 살아있으니까.

20년 동안 혼자서만 애틋해했던 당신들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해.

당신들이 만든 천국에서 행복하거나 말거나. 난 관심 없어.


이런 끝장은 생각도 못했어요
끝장?
죽음이 마지막 여정은 아니야
죽음은 우리가 걸어가야 되는 또 하나의 여정일 뿐이야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가 피핀에게.



나는 죽음이 무섭지 않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마침내 뜻을 이루고 나면 3천만 원을 들고 스위스로 갈 거야.

태어났기에 살아야 하는 게 의무라면

내 죽음은 내가 결정할 권리도 있어야 하니까. 어차피 지병도 있고, 오래는 못 살 거야. 영화 <미 비포 유>와, 다양한 기사들을 보고 결심했지. 내 죽음은 내가 결정할 거라고.


엄마,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땐 내 딸로 태어나줘.

아니, 좀 더 솔직하자면 다음 생은 없었으면 좋겠어.

그냥 각자 행복한 사후세계를 살자. 난 비록 지옥에 갈지라도. 내 사주에 워낙 화가 많아서 지옥불은 무섭지 않아.

사랑해 엄마. 목구멍 안으로 단어만 읊조려도 눈물이 날 정도로. 어떤 상처는 너무 깊어서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정도로. 내 평생 깊은 흉터로 남은 엄마를 사랑해.


그러니 엄마,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환생하지도 말고,

그저 지금 세상의 흙과 흙으로 섞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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