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평짜리 우주

by 수안

이번 주에는 집을 두고 내내 카페로 피신했다. 새롭게 이사 온 아랫집이 내는 소음을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거운 가구를 끌어대는 소음, 에어컨을 설치하는 소리, 점입가경으로 아파트 외벽 도색 공사가 시작되면서 나는 도르래 소리, 에어 스프레이 소리, 롤러 소리 등등이 나를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끌고갔다. 나의 예민함은 갈고 닦여 이윽고 스스로를 찌르는 흉기가 됐다. 흔히들 탑층은 층간소음이 없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이 오래된 아파트는 옥상에서 시작된 누수로 인해 베란다 천장이 곰팡이로 빼곡하다. 그리하여 지난 여름에는 장마가 오기 전 방수공사를 한다며 우레탄 페인트칠을 했다. 문제는 소리였다. 페인트 통과 각종 장비들은 탑층인 우리집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옥상까지 날라졌다. 인부들이 쿵쿵거리며 옥상 페인트칠을 한다. 그 작업이 끝났음에도 옆집의 누수는 잡히지 않아 이번 겨울 내내 공사를 했다. 이제는 봄이 되자 아파트 전체 외벽 페인트칠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옥상에 장비들을 잔뜩 준비해 놓은 작업자들은 옥상에서부터 끌어내린 밧줄에 매달려 창문 밖을 오갔다. 항복이다.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짐을 챙겨 카페로 뛰쳐나갔다. 작업실로 완벽하게 세팅해둔 나의 집, 나의 근무환경이 외부 요인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구축이라도 꽤나 번듯하고 입지 좋은 이 아파트는 10년의 유랑 끝에 얻어낸 삶의 성취였다. 부모에게서 독립해 원룸을 전전하다가 아파트에 처음 내 몸을 뉘이던 날, 나는 아파트에 거처를 마련한 것 단 하나만으로 내 앞날이 창창한 장미빛일줄로만 알았다. 모든 게 다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확신까지 했다. 꿈과 성취로 견고하게 쌓아올렸던 성벽이 겨우 소리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문득 내가 처음 독립을 시작했던 그 작고 초라한 방을 떠올렸다. 밑바닥에서 만난 나의 첫 번째 우주, 4평짜리 원룸. 그린빌.

아파트를 향해 10년을 달리던 그 첫 시작점, 나의 첫 집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관리비 5만원 짜리, 고작 4평 남짓한 원룸에서 시작되었다.


4평. 숫자로 들으면 그 크기가 쉽게 가늠되지 않지만, 몸을 뉘어보면 그 공간의 질량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현관문을 열면 다섯 걸음 안에 침대에 누울 수 있었고, 침대 발치에는 작은 책상이, 그 옆에는 밤마다 웅웅거리는 낡은 미니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욕실 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주방 싱크대였다, 미니 후라이 팬을 놓으면 꽉 차는 정사각형 모양의. 그것이 사회초년생인 나에게 허락된 공간이었다.


처음 그 방에 짐을 풀던 날의 공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은은하게 감돌던 싸구려 벽지 냄새. 기쁨과 막막함은 양면처럼 붙어있어 손쉽게 뒤집혔다. 본가에서 가져 온 짐이라곤 작은 캐리어 하나 달랑이었다. 그 캐리어를 푸는 동안에는 기뻤다. 평생 내 방 하나 없이 살던 그 당시 나에게 네 평은 충분했다. 화장대를 비록 겸하긴 하지만 책상도 나만의 것, 거실이자 침실도 나만의 것, 화장실도 냉장고도 서랍장도 옷장도 모두 나만의 것. 이 곳을 나만의 공간으로 꾸려나갈 생각에 설렜다. 그러나 낯선 이곳에서 처음으로 혼자 불을 끄고 누울 땐 곧 막막함이 들이닥쳤다.


어린 시절 나는 투병을 길게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해 처음 중학교 교복을 입고, 수능 시험장에 도착하고, 대학교 입학식을 마쳤을 때 그 이벤트들에 대해 마땅히 기뻐하기 보다는 내가 여태까지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 더 컸다. 그런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까지 되었다. 첫 월급 120만원을 모아 6개월 만에 독립했다. 살아남은 것은 나에게 엄청난 성취였지만 지도 없이 걷는 길 같았다. 그리고 그 길은 모두 돈과 연결됐다. 물 한 병 치약 한 통도 내 돈과 바꿔야 했다. 집에 당연하게 있어야 할 건 그런 게 아니라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머리카락과 먼지 덩어리 같은 것들이었다. 어쩌면 나는 여태까지 생존만 배웠을 뿐 생활은 이제야 비로소 터득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사회라는 거대한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좁은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한 줌의 햇살을 바라보았다.


그 비좁음은 역설적이게도 나에게 기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4평짜리 방에서는 침대에 앉아 손을 뻗으면 책상의 스탠드를 켤 수 있었고, 발을 뻗으면 냉장고 문을 열 수 있었다. 이 비좁음은 다섯 식구가 살던 18평 방 두 칸짜리 집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사춘기를 거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내가 온전히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은 화장실 뿐이었다. 우리 세 자매의 주 활동 공간은 거실이었다. 안방은 부모님의 공간, 작은 방은 책상 세 개가 이미 공간을 잔뜩 차지했다. 개인의 침대를 가질 수 없으니 매일 밤 거실에 요를 깔았다. 배운 적이 없으니 지킬 수도 없었던 사생활, 선택지가 없어 깨닫지 못했던 취향 탓에 매일매일 잠자리가 불편해도 이유를 모른 채 그저 나의 예민으로만 치부해버렸다. 그 집의 주인은 엄마였고 모든 건 엄마의 통제 하에 돌아갔다. 나는 그 집에 사는 내내 엄마가 자신의 취향대로 산 딱딱한 토퍼에 누워 영문도 모른 채 뒤척였다. 내가 원하는 매트리스 감도를 내가 직접 골라서 내 돈으로 샀을 때, 나에겐 딱딱한 매트가 아니라 푹신한 매트가 맞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25년 만에 생긴 나만의 공간에, 나는 매트리스의 경도를 비롯해 모든 사소한 것들에 나만의 취향을 온전히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이 없어 먹고 싶은 걸 참았어도 바디워시는 용량보다 향을 먼저 고를 수 있게 됐다. 튜브 형태가 아니라 펌프형의 치약, 벽에는 붙일 수 없어도 벽장 문에는 붙일 수 있었던 최애 가수의 콘서트 포스터와 가고 싶은 나라의 엽서 등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 그곳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4평짜리 요새였다. 집은 나를 세상의 피로로부터 완벽하게 격리해 주었다. 밖에서 아무리 치이고 깨져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도어록이 '띡' 하고 잠기는 순간 나는 안전했다. 가난했지만 나의 내면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온전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비록 옆방에서 드라이기 소리가 넘어올 만큼 벽은 얇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처지의 청춘들이라는 묘한 동질감이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삶을 침범할 만큼 무례하지 않았고 새벽의 샤워 소리 같은 건 거슬리는 일조차 아니었다. 나는 그 좁은 방에서 밤새워 글을 쓰고, 출퇴근을 하고, 일을 했다. 가끔 부지런 떨고 싶은 날은 출근해서 먹을 도시락도 쌌다. 좁은 바닥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미래를 상상했다. 어쩌다 동생이 서울에 올라온 날이면 바닥에 재워줄만큼의 너그러움도 있었다.






독립 후 10년 동안 다섯 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의 집으로 왔다. 4평짜리 첫 집에서 이사를 거듭할 때마다 내 삶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다. 투룸으로 가면, 쓰리룸으로 가면, 그리고 마침내 번듯한 아파트에 입성하면 완벽한 평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맞았다. 두 번째 집은 8평 원룸이 되었고 베란다가 있었다. 세 번째 집은 9평짜리 원룸이었고 화장실과 싱크대가 컸다. 네 번째 집부터는 드디어 투룸이 되었고 다섯 번째 집은 쓰리룸에 화장실이 두 개였다. 그리고 드디어 여섯 번째, 아파트에 입성했다.


하지만 10년 만에 입성한 아파트는 여전히 내가 꿈꾸던 낙원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타인의 삶이 소음이 되어 내 영역을 침범한다. 수백 세대의 얽히고설킨 이기심이 내 공간을 무단으로 침입하는 폭력처럼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넓은 거실과 분리된 방을 가졌지만, 층간소음에 귀를 기울이며 언제 들려올지 모를 쿵쿵거림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어디서 올라오는지 모를 담배 냄새, 복도에 방치된 이웃의 짐들, 아이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잦은 엘리베이터 고장, '저녁에 소음 발생을 자제하라, 월말에 계량기 수치를 기재하라, 자전거를 정해진 자리에 두어라, 소독에 협조하라' 등등 공동체 질서를 위해 모든 것을 통제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울리는 안내 방송, 이웃의 리모델링 공사소리, 소수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엘리베이터 점유까지. 방심한 틈에 들어온다. 집이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감각. 그것은 4평짜리 월세방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지독한 불안이다. 수백 세대가 모여 사는 아파트는 거대한 '닭장'이자 끊임없는 갈등의 진원지였다.



카페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다. 다시 그 소음 가득한 아파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짐을 챙기는 손이 억지스럽다. 집순이가 집에 가기 싫어하다니 비상이다. 10년 전, 4평짜리 우주에 앉아 있던 나를 떠올린다. 요즘따라 그린빌이 그립다.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찾아 헤맨 것은 넓은 평수나 아파트라는 번듯한 껍데기가 아니라, 그 좁은 방에서 느꼈던 '불안하지 아니함'이라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나의 온전함은 어디에 있을까.

4평짜리 우주에서는 분명히 쥐고 있었던 그 감각을, 어느 순간 잃어버렸다. 환경이 나아질수록 내 삶도 나아지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사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기분이다.

솔직히 이제는, 이 번듯한 아파트가 4평짜리 그 좁은 방보다 더 나은 공간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