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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C Oct 16. 2017

당신은 얼마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

소비가치가 시장 구조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2018년 1월 3일  '우리의 일자리는 어디에 있는가?(내하출판사)'에서 그 도서의 전반적인 성격과 다소 이질감이 있어 배제한 원고이다. 대기업 중심의 시장 구조를 소비자들이 바꿀 수 있다는 주제로 쓰인 원고이고, 글을 이어가다 보니 4차 산업혁명의 큰 파도를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었다. 한 권의 책의 한 Chapter로 대중들에게 찾아갈 수 없다는 아쉬운 마음에 내 개인 블로그를 통해 원고를 공유하오니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이 생각이 공유되기를 바란다.

                                                                                            -2017년 10월 16일(월), 김포시 유현마을에서 -



당신은 얼마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


#1. 고객이 느끼는 가치?

소비와 관련된 책을 보다가 글귀(보다 정확하게는 공식)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원가 < 판매 가격 < 고객이 느끼는 가치(구매의사)     

‘고객이 느끼는 가치, 고객이 느끼는 가치라…….’

요즘 경제와 창업 분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탓이었을까? 저자는 이 공식으로 인해 한참 동안 깊은 고민과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머릿속이 어수선하다. 아니! 어수선하다 못해 어지럽고 현기증까지 나는 것 같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이야기로 끄집어내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도 어떤 이야기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머릿속이 정리될 것 같다. 그래! 그렇다면, ‘일본의 한 청년’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2. 일본의 한 청년

몇 년 전 저자는 한 방송사에서 일본의 젊은 세대를 취재한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다. 취재 장소는 일본의 한 섬 마을이었다. 그곳은 한국의 홈플러스나 롯데마트와 같은 대형 마트가 있었다. 그리고 그 마트 한 귀퉁이에서 한 젊은 청년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판매하기 위해서 늘어놓은 제품들은 나무를 소재로 만든 수공예품들이었다. 그 제품들은 그냥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숟가락과 젓가락, 국자, 식기와 같은 것들이었고, 서투른 조각가가 만든 듯 엉성해 보였다.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진행자(취재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진행자는 PD 같아 보였다)는 제품을 판매하는 일본 청년에게 다가가 나무 숟가락을 하나 집어 들고 그것의 가격을 물었다. 원래 미소가 입가에 배어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랬던지, 그 일본 청년은 진행자를 보면서 씨익~ 하고 웃었고, 진행자가 들고 있던 나무 숟가락을 가리키며 한국 돈으로 약 2만 원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저 나무 숟가락 하나가 2만 원이라고?’

저자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저자뿐만이 아니었다.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진행자도 몹시 당황했던지 재차 그 나무 숟가락의 가격을 일본 청년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일본 청년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정말 2만 원(한국 돈)이다.”라고 말했고, 그 나무 숟가락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해변가에 있던 나무 조각을 사용하여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품이라고도 말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무 숟가락…….’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저자도 방송의 진행자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일본 청년은 너무도 진지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무제품을 만들었던 그 일본 청년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일본 청년은 표정이 상당히 밝았다. 하지만 저자는 그를 행복해 보인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저자의 눈에는 그의 표정이 밝아 보이긴 했어도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본의 경제상황과 사회적 문제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캥거루족, 패러사이트 싱글, 초식남 등은 이제 한국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단어(신조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문제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단어들의 기원은 일본이다. 결국, 저자는 이러한 현재 일본의 경제적·사회적 상황을 그 일본 청년을 바라볼 때 투영시킨 것이다.

여하튼, 저자는 나무 숟가락의 가격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그렇지! 그 제품이 아무리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2만 원이나 하다니…….’ 저자는 아직까지 그 제품의 가격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저런 물건을 2만 원이나 주고 살까?’

‘과연 그 일본 청년은 생계유지는 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일본 청년을 떠올리면, 저자는 이러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는 적지 않은 일본 젊은이들이 나무 숟가락과 같은 수공예품들을 직접 만들어 마트나 장터에 판매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관광객들은 물론 일본 사람들도 그러한 제품들을 구입하고 있다고 진행자는 말했다.     

 

#3.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제품을 구입할 때, ‘명품’ 또는 ‘가성비(cost-effectiveness, 價性比) 좋은 제품’을 선택한다. 특히, 명품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은 정말 많다. 제품군에 따라서 명품에 대한 선호도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명품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이 많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의류와 패션 액세서리, 자동차 등을 구입할 때, 한국인들의 명품 선호도는 확연하게 높다. 반면에 ‘가성비 좋은 제품’을 선택하는 한국인들도 적지가 않다. 일반 소비재와 사무용품, 가구류 등을 구입할 때, 특히 그러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명품샵(Luxury Shop)들과 최저가 온라인 쇼핑몰들은 한국의 시장 내에서 거의 포화상태이다. 그리고 그 시장규모는 이미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예전에 읽었던 한 신문기사의 내용이 생각난다. 어렴풋하지만, 그 내용은 한국인들의 명품 소비(보다 자세하게는 사치성 소비)와 관련된 것이었다.

“한국은 명품 브랜드 기업들 사이에서 VIP(Very Important Person, 중요한 고객 또는 주요 고객이라는 의미)로 통한다. 한국인들 대부분은 명품 제품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모든 한국인들이 명품 브랜드 기업들의 주요 고객인 셈이다.”

당장 저자의 주변인들을 보아도 대다수가 명품 제품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저자 역시도 생일선물로 받은 것이기는 하지만 명품 가방을 하나 가지고 있다. 인터넷에 접속해 포털사이트(potal site)에 ‘명품’과 ‘한국 명품’, ‘사치’, ‘샤넬’, ‘루이뷔통’ 등의 단어들을 입력해서 신문기사들을 검색해 보라. 아마도 독자들은 한국인들이 명품 제품의 소비를 얼마나 선호하는지, 그리고 한국의 명품 시장이 얼마나 크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1,2,3,4].

뉴스에서 명품 브랜드 기업 ‘ChaCha社(가칭)’를 취재하던 기자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었다.

“북미 지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한국에서 판매되는 ChaCha社의 제품들은 더욱 비싼 것으로 파악됩니다. 사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ChaCha社의 최대 시장이고 주요 고객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더욱 비싸게 받는 것인데요. ChaCha社의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살 수 없는 비싼 가격의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한국에서는 더욱 비싼 가격을 책정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솔직히 자존심도 상했고 다소 충격도 받았다. 얼마 전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사용되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인들은 명품 브랜드 기업들에게 완전히 호갱(stupid customer)인 셈이다.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호갱님이 된 것일까?”

저자는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생각해 본다.

‘싼 것이 비지떡!’

독자들은 이 속담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속담은 본래 ‘제품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싸다면 그 이유가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 속담의 의미는 다소 왜곡되고 변질되기 시작했다.

“싼 제품은 나쁘다.”

“동일해 보여도 비싼 제품은 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명품은 괜히 명품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들로 말이다. 현재의 한국인들은 맹목적으로 값이 비싸거나 명품인 제품들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현재의 대한민국과 같은 소비 형태를 경험한 바 있다. 그리고 다수의 사회·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소비 형태를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로 설명하고 있다.

베블런 효과[5]는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사회평론가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이 그의 저서 「유한계급론(有閑階級論, 1899년)」을 통해 언급한 “상층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자각 없이 행해진다.”라는 말에서부터 기인한다. 즉, 베블런 효과는 ‘물질만능주의와 과시욕, 허영심이 반영된 사치성 소비’ 현상을 의미한다.

다소 어색할 수 있겠지만, 갑자기 저자는 로버트 기오사키가 저술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글 일부가 생각난다.

“진짜 부자들은 자신이 땀 흘려 일한 돈으로 결코 명품을 사지 않는다. 부자들은 원금을 건드리지 않고 돈이 벌은 돈(즉, 투자를 해서 벌은 돈)으로 사치하고 명품을 산다. 자신의 월급으로 또는 월부로 사치하거나 명품을 사는 사람은 결코 부자가 되지 못한다.[6]”

일부 고소득 계층에서만이 아닌 대다수 한국인들이 값이 비싼 명품 제품들을 선호하고 사치성 소비를 하고 있다. 이 현상은 저자로 하여금 ‘대다수 한국인들이 올바르지 못한 소비가치(혹은 소비습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4. 가치의 부재, ‘문장

‘가치의 부재’

저자는 한국인들의 사치성 소비, 특히 명품 제품들을 거의 맹목적으로 선호하는 소비 형태를 ‘가치의 부재’와 연관하여 설명(혹은 분석)할 것이다.

본 이야기를 시작하기 이전에 먼저 ‘문장(紋章, coat of arms)’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문장은 세계 각국에 다양하게 존재한다. 현존하고 있는 문장들도 있지만, 지금은 사라진 문장들도 상당수이다. 문장은 일종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문장은 권력과 경제적 부를 가진 자들의 정체성과 정통성, 현재의 지위를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상징인 것이다. 따라서 문장은 단순히 어떤 사물이나 장소에 대한 상징이 아니라, 특정 가문과 정치 세력, 국가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과거 유럽 국가들에서는 왕을 포함한 왕족과 귀족, 그 외의 지배층들, 그리고 그들에게 재화를 공납(혹은 납품)하던 가문(상인, 제조업자, 무역상 등)들이 문장을 즐겨 사용했다.

문장은 그 문장을 사용하는 특정 가문과 정치 세력, 국가 등의 뿌리(정체성)와 사회적 지위를 담고 있어야 하고, 대중들에게 쉽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특징은 문장을 사용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즉,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중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와 ‘자신이 어떤 신분인지’를 쉽게 나타낼 수 있도록 사용하던 것이 바로 문장이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대중매체의 발달과 유전공학 기술의 발전으로 문장이 큰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지만, 현대 이전에는 문장이 개인의 신분과 뿌리를 손쉽게 증명해주는 역할을 수행했었다.

현대에 와서 자신들의 과거 가업을 잇는 기업들은 과거 자신들의 문장을 로고(logo)나 브랜드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 기업으로 유명한 캐딜락(Cadillac)과 패션 및 잡화 기업으로 유명한 에르메스(Hermes)가 사용하는 로고들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 기업들의 로고(문장)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정통성은 물론 자신들이 생산하는 제품들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한다. 혹자들은 이러한 기업들의 제품들에 새겨진 로고들이 장인정신과 신뢰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오랜 전통을 가진 문장, 즉 로고를 가진 제품들은 현대에 와서 사람들에게 명품이라 불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명품 제품들은 그 무형의 가치가 반영되어 높은 가격으로 거래가 되고 있다.

따라서 명품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그 가치를 볼 수 있는 안목과 높은 수준의 경제적 지위를 가졌을 것이라 다수의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대량화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의 다수 명품 기성품들은 일종의 단순 사치재로서 의미만을 가진다. 그리고 이 제품들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다수의 소비자들은 자신의 높은 경제적 지위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려는 욕구만이 있을 뿐으로 보인다. 즉, 소비에서 가치의 부재는 일종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적절할지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당신은 서민층(庶民層)의 평범한 30대 중반 직장인 여성이다. 최근 1년간 짬짬이 모아놓았던 적금을 해약하고 200년 전통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의 명품가방을 구입했다고 가정하자. 참고로 그 명품가방을 당신은 너무도 갖고 싶었었다고도 가정하도록 하자.

지금 당신의 기분은 어떠하겠는가? 잘 모르겠는가?

그렇다면 그 명품가방을 어깨에 메고 지금 집 밖을 나서보자. 그리고 당신과 같은 젊은 여성들이 많은 거리로 가보자.

지금 당신의 기분은 어떠한가?

무언가 조금 의기양양해진 느낌이 들지는 않는가?

아마도 기존에 당신이 사용하던 중저가의 가방을 메고 거리로 나섰을 때보다는 그러한 느낌이 강하게 들 것이다.

이와 대조되는 예도 들어보도록 하자.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30대 중반의 새내기 여성 정치인이다. 당신도 앞의 여성과 동일한 명품가방을 최근 구입했다. 그 명품가방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두 달 치의 급여만을 모으면 될 정도로 당신은 비교적 경제적 수준이 높은 편이다.

당신은 명품가방을 구입했다고 하여 의기양양한 느낌이 들겠는가?

젊은 여성들이 많은 거리로도 나가보자.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겠는가?

아닐 것이다! 저자는 확신한다.

아마도 젊은 여성들이 많은 거리로 나서는 순간 당신의 명품가방보다 당신에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말을 건넬 것이다. 그 이유는 당신이 그 명품가방보다 높은 가치를 가졌기 때문이다.

저자가 두 번째 예에서 30대 중반의 주목받는 새내기 여성 정치인이라는 가정을 하였지만, 평범한 중산층의 회사원일지라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높고 자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여성이라면 비슷한 결과를 나타냈을 것이다.

어떠한 형태의 ‘가치’이든지, 그 가치가 부재한 소비자라면 명품 제품에 대한 소유욕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소유욕으로 인해 사치성 소비를 할 가능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즉, 가치의 부재는 간접적으로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기 위한, 또는 허영(虛榮)을 채우기 위한 사치성 소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5. 가치의 부재,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렇다면 한국인들에게는 어떠한 가치가 부재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에 앞서, 저자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에는 두 가지 역사적 큰 사건들이 있었다. - 참고로 저자는 ‘그 역사적 사건들로 인하여 한국인들에게 가치의 부재가 생긴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을 해본다. - 그 역사적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사건은 조선말 국권피탈(國權被奪, 1910년의 경술국치 전반을 이름)로 인해 시작된 ‘일제강점기’이다. 두 번째 사건은 바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발생시킨 ‘한국전쟁(6·25 전쟁)’이다. 이 두 가지 사건들은 한국인들에게 민족적 자존감의 상실과 왜곡된 민족 정체성 등을 가지게 했다. 상당수의 학자들은 이 두 사건들로 인하여  한국인들이 ‘민족혼(民族魂)을 상실’했고, 생존 이외의 ‘삶의 가치를 상실’했다고 말한다. 저자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선, 일제강점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일본 제국주의의 줄임말)가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기치 하에 조선인(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우민화 정책과 식민사관의 주입,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를 했다. 이것들은 한국인들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없애고, 조선(한국)이 일본의 충실한 식민지가 되도록 하기 위한 민족말살정책(民族抹殺政策)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들 때문에 한국인들은 유구한 역사와 민족 자존감을 잃게 되었다. 게다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상황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저자는 기록을 통해서 일제강점기를 접할 수밖에 없지만, 당시의 역사적 기록들을 접하면 분노와 침통함을 느끼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악행은 민족말살정책만이 아니었다. 조선에 존재하는 인적·물적 모든 자원들을 수탈하기까지 했다. 특히,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태평양 전쟁 기간 중에는 그 수탈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일본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한반도에 매장되어 있던 지하자원들의 수탈은 물론 각각의 집들에서 사용하던 숟가락과 젓가락, 놋그릇 등도 강탈했다. 이뿐이랴! 남자들은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하여 강제 징용되었고, 여자들은 일본군들의 성 욕구 해소를 위한 위안부(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로 끌려가야만 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권유린 행위였다. 현재 살아계시는 강제 징용되었던 할아버지들과 위안부로 끌려가야만 했었던 할머니들은 아직까지 일본으로부터 진심이 담긴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한 채 한(恨) 많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과거 조선은 실로 위대하고 찬란했다. 그러나 조선은 앞으로 100년은 그 영광을 되찾지 못할 것이다.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 칼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조선인들은 평생 그들끼리 이간질하면서 노예 같은 삶을 살 것이다.”

일제 조선총독부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항복문서에 서명을 하면서 했던 말이다. 저자는 이 말을 볼 때마다 소름이 돋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베 노부유키의 이 말! 이 말은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었는지 가늠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한국인들의 민족혼이 대표적일 것이다.

다음, 한국전쟁(6·25 전쟁)을 살펴보도록 하자. 아니! 보다 자세하게는 한국전쟁 발발과 직후의 우리 생황을 살펴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측의 기습적인 침공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한국인들은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직후 얼마 되지 않아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한국에는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그나마 기반(infrastructure, 基盤)들도 파괴되고 말았다. 특히, 남측(당시 38선 이남)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당시의 한국인들에게 남은 삶의 가치라는 것은 ‘생존 가치’ 밖에 없었다.

여기서 잠깐! 한국전쟁의 발발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고 가도록 하겠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된 이유는 좌·우 이념 간의 대립과 갈등 때문이었다. 그 이념을 대표하던 국가들은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현재의 러시아와 주변 국가들)이었다. 그 이념들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됨과 동시에 한국인들에게 자리 잡은 것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을 하던 세력(단체)들이 그것들을 먼저 받아들이기 시작했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자력으로 독립을 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의 독립운동은 좌·우 이념의 구분이 없이 소련과 중국, 미국 등의 지원과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1945년 미군은 원폭 투하(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 8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를 감행했고, 그 직후 바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국가들은 해방되게 되었다. 그 식민지 국가들 중에는 한국도 포함되었다. 해방된 직후 무정부 상태나 마찬가지였던 한국(한반도 지역)에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당시 한국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미국과 소련은 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를 채택)와 사회주의(공산 경제체제를 채택) 이념의 확장과 타 이념의 확장 억제를 위해서 남과 북으로 지역을 나누어 이념을 달리하는 정부를 수립한 것이었다. 당시 각 정부의 지도자는 이승만 前 대통령과 김일성 前 주석이었다. 이들은 한반도에 하나의 이념을 가진 정부가 수립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각 정부가 수립된 이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북측의 기습적인 무력침공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짧게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이 글의 목적상 이 정도로 마치도록 하겠다. -

다시 이 절의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하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한국은 폐허가 되었다. 그 정도는 한국전쟁에 참여했었던 맥아더 장군(당시 UN군 사령관, 계급: 원수)의 말을 통해서 가늠해 볼 수 있다.

“이 나라를 복구하려면 최소한 100년은 걸릴 것이다.”

당시 한국은 국토와 기반시설들만 파괴된 것이 아니었다. 한국인들은 혈육들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죽거나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마음과 정신마저 황폐화되었다.

생존 가치, 당시 한국은 생존 이외에는 어떠한 가치도 남아있지 않았다.     


#6. 가치의 부재, ‘숭고한 희생이 가득했던 시기

한국인들은 노력했다. 절박했고 절실했기에, 또한 살아남아야 했기에 끊임없이 노력했다.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국가과학기술 5개년 계획’, ‘새마을 운동’ 등은 그러한 노력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 결과, 반세기 만에 한국은 전 세계 유례없는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세계인들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評)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이것은 ‘잘 살아 보세(한운사 작사, 김희조 작곡)’라는 노래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살아온 한국인들이라면 이 노래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저자는 이 노래가 당시 한국인들의 마음을 얼마나 잘 대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인들이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한 한국의 경제성장은 한국인들의 이러한 마음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맺어진 결실인 것이다.

여기서 잠깐! 한국이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들이 분분하다. 물론, 한국인들이 ‘잘 살아 보자’는 절실함으로 끊임없이 노력한 것은 어느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지도자에 대한 평가, 특히 한국의 경제성장에 어떠한 기여를 지도자가 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 의견들로 극명히 갈리고 있다.

그 의견들 중 하나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없는 경제성장을 하게 된 원인은 “위대하고 훌륭한 지도자가 탁월한 리더십과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반면에 이와 상반되는 의견도 있다. “그 당시까지 청산되지 않았던 매국 친일세력들이 한국의 기득권층으로 편입되면서 국민들을 속이고 민주주의를 억압한 결과다.”라는 의견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 의견에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다면 당시 한국의 경제성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그 지도자가 당시 한국의 경제·사회 전반을 통치하던 국정책임자가 아니었던가?”라고 강력하게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극도로 심화된 미·소 냉전체제의 세계 구도 하에서 한국(남한)이 북한을 체제경쟁에서 이기도록 하기 위하여 미국이 한국에게 전폭적인 원조와 후원을 해주는 상황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지, 단순히 한 명의 통치자가 그 역량이 탁월하고 우수하여 일구어낸 성과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당시 미국의 케네디 前 대통령이 구사한 대(對) 한반도 정책들을 확인해보면 알 수가 있다.”라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다수이다.

당시에 한국인들은 ‘정말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았다. 자신이 잘 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자신이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자식이라도 잘 살게 해주고 싶음 마음이 있었다. 아니! 그 마음이 더욱 컸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노력하며 살았다.

잘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의 돈보다 많은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래야 지금의 가난과 어려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해야만 했다. 일을 하고 또 일을 해야만 했다. 자식들을 입히고 먹이고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돈을 벌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고단함과 피로감, 아픔, 고통 등, 이러한 것들은 사치라고 생각하며 치열하고 각박하게 살았다. 이 표현이 적절한 것인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저자는 당시를 ‘숭고한 희생이 가득한 시기’라고 말한다. 나보다는 나의 가족, 그리고 우리들이 함께 살아갈 터전을 위해서 살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의 기득권층들과 정치 엘리트라 불리는 집단들은 이 한국인들의 숭고한 희생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만 했지만…….

당시의 대한민국 사회는, 아니 한국인들은 이러한 희생이 전제된 노력(보다 자세히는 노동)하는 삶을 미덕(美德)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계속한다면 나와 나의 가족에게 ‘보다 나은 삶’이라는 보장이 주어지리라고 믿었다. 저자는 이것이 잘못된 믿음이고 생각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믿음을 너무나 맹종한 나머지 한국인들은 ‘삶의 가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개천에서 용(龍) 났다.” 이 말이 당시 한국인들의 믿음을 대변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용이 되기 이전까지 삶의 과정에서 찾아야 하는 가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개천에서 용(龍) 났다.”라는 이 말은 그 과정에서의 삶의 가치는 담고 있지 못한 듯하다.

국가 역시도 국민들에게 희생이 전제된 노력(노동)하는 삶을 권했다. 때로는 강권(強勸)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성실한 삶과  근면한 삶’이라고 포장하고 미화했었다. 또한 “국가와 사회를 위해 노동하는 삶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찾고 자아를 찾아가”라고 국가는 국민들에게 말했다. 이것은 의도·의미적인 측면에서 서구 사회의 소명(calling)과 전혀 다르다. 국가가 국민 개인의 ‘삶의 가치’, 즉 행복과 삶의 의미라는 가치를 전제하지 않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국민들의 희생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마치, 전체주의(Totalitarianism, 全體主義) 국가들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한국인들은 국가의 기대에 적극 부응했다. 그것이 자의적이었는지, 타의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광부와 간호사들의 파독(派獨)[7,8],  월남전 파병[9], 1970년대 중동 (건설) 붐[10] 등은 그 부응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거듭 말하게 되지만, 이러한 한국인들의 국가 기대의 부응으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일구어 낸 것이다.

“한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반세기 만에 이제는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된 전 세계 유일의 국가다.”

이 말은 한국이 어떠한 경제적 성과를 이루어 냈는지, 그리고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삶을 살아왔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다음은 한 방송사의 뉴스를 시청하다가 접한 내용이다.

회사원 K 씨는 여느 날과 같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던 중 지방에 계신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날은 늦은 오후에 K 씨가 담당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K 씨는 늦은 오후까지 회사의 중요 업무를 모두 마치고, 서둘러 고인이 된 어머님 곁으로 갔다. 회사 관계자들은 K 씨를 책임감이 강한 회사원으로 평가했고, 옛 위인들의 일화에 빗대어 칭송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K 씨는 한없이 울음을 터트리며, 고인이 된 어머니께 “어머니,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뇌고 있었다.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이었을까?”

저자는 ‘그 당시 회사원 K 씨는 삶의 가치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분명히 회사원 K 씨는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접했던 그 당시, 자신의 내면에 상충하는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원 K 씨는 당시 ‘자신을 위한 삶의 가치’보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역할 가치’가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었던 것 같다.

약 20여 년이 지난 시점인 지금, ‘회사원 K 씨는 당시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서 저자와 독자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그때와 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7. 가치의 부재, ‘정신적 허기짐

사람이 삶의 가치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지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의 추구, 즉 행복 추구는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행복이 무엇인지?’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등을 잊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의 한국은 분명히 과거보다 평균적으로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높아졌다. 저자는 이 주장에 반박을 하고 싶은 독자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자. 저자는 앞에서 ‘평균적으로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과거의 한국보다는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것은 한국인 모두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평균’은 무엇을 말하는가?” 말 그대로 평균이다. 하위권의 소득계층이 다수이어도 상위권의 소득계층이 매우 높은 소득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면, 전체 평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바람직한 평균이 필요하다!”

그것은 상위층의 소득과 하위층의 소득이 중간값에서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평균을 의미한다. 즉, 바람직한 평균은 ‘균등’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부의 재분배를 통해 비교적 균등한 부를 가지는 사회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렇지 못하다. 평균적으로 물질적 풍요로움은 높아졌지만, 중산층은 무너졌고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부의 양극화, 즉 소수의 계층으로 부가 편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사회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국가의 생동성(生動性)을 점점 잃게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한국은 과거보다 평균적인 물질적 풍요로움이 높아졌지만,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이 많아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여하튼 급격한 물질적 풍요로움을 가지게 된 한국인들은 뒤늦게 ‘정신적 허기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신적 허기짐은 여러 형태의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김포시에 거주하고 있는 문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별다른 직업이 없이 지내다가 현재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건물을 관리하고 있다. 즉, 건물주이다. 그 건물에서 발생되는 임대수익은 문부자가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비용들을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이다. 문부자의 부모님은 김포시에서 오랜 기간 농사를 짓던 농사꾼이었다. 문부자의 부모님들이 농사를 짓던 농지들은 몇 해 전 김포시 도시발전계획으로 인해 개발지역으로 지정되었고, 상당한 금액으로 토지보상을 받고 국가로 수용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문부자의 부모님은 졸지에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재산 일부를 증여받은 문부자도 부자가 되었다.

문부자는 종종 지역의 지도층 인사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데 그들을 만날 때면 종종 위축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문부자는 그것이 어떠한 것이라고 단정하여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에게 재산이 없다면 정작 내세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자신의 재력에 걸맞은 사회적 대우를 사람들로부터 받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도 말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일까? 그는 자신의 품격(?)을 높여주는 느낌이 주는 넓고 좋은 집과 비싼 차, 명품 옷, 명품 시계 등을 주로 구입하고 있다. 그의 소비는 일종의 ‘사치성 소비’인 것이다.

“사치품 소비(즉, 사치성 소비)는 오늘날 자기에 대한 엘리트적인 이미지 구축 면에서 한몫을 한다. 자기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 말이다. 사람들은 차이의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 그들은 자기도취에 빠지고 싶어 하고, 자기를 향유하고 싶어 하며, 스스로 유일한 존재임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이 말은 졸랑타바크가 그의 저서 ‘미래사회코드(2008년, 김모세 옮김, 디플Biz)’에서 인용한 질 리포베츠키(Gilles Lipovetsky)의 말이다. 저자는 이 말이 문부자의 사치성 소비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8. 당신은 얼마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

지금부터는 독자들에게 고민이 필요한 질문을 건네 보도록 하겠다.

당신은 가정용 공기청정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가정용 공기청정기를 구입하기 위하여 당신은 지금 X마트의 전자제품 코너에 와 있다. 그 코너의 진열대에는 총 4종류의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당신은 이제부터 각 제품들의 소개를 잘 듣고 어떠한 제품을 구입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첫째, 대기업 S社의 최신 제품인 「잘 나가 공기청정기」이다. 판매 가격은 55만 원이다. 둘째, 대기업 S社의 국내 최대 경쟁기업인 L社의 최신 제품인 「멋진 공기청정기」이다. 판매 가격은 S社와 동일한 55만 원이다. 이 두 제품들은 공기청정기 본연의 기능은 물론 여러 편의 기능까지 유사하다. 그리고 국내에서 브랜드 이미지와 인지도 역시 비슷한 수준이다. 단, 두 제품들은 디자인의 차이만 있다. 만일, 두 제품들 중 하나를 선택했다면 당신의 그 선택은 브랜드 선호도와 디자인이 고려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국내 중소기업 C社의 「저렴하고 좋은 공기청정기」이다. 이 제품은 성능과 기능, 디자인이 앞의 두 제품들과 차이가 거의 없지만,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45만 원이다. 넷째, 국내 중소기업 G社의 제품인 「함께하는 공기청정기」이다. 이 제품은 주요 기능과 성능이 앞의 세 제품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부수적인 편의 기능 1~2가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디자인은 실용적이며 단순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세 제품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하지만 가격은 그다지 저렴하지 않은 50만 원이다. 이 G社의 제품은 다른 제품들과 다른 특별한 무엇을 가지고 있다. 그 무엇은 G社가 사회적 기업으로서, 제품을 판매하고 얻게 되는 기업의 순이익 대부분을 소외된 계층의 어린이 후원과 아프리카 지역에 물 공급 사업을 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G社는 「함께하는 공기청정기」를 구입한 고객들에게 이메일(e-mail)을 통해 기업이 수행하는 사회적 활동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고 있으며, 그 사회적 활동에 고객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온라인 소통/참여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자! 이제 당신은 얼마를 지불하고 어떠한 제품을 구입할 것인가?”

단, 당신이 제품을 구입하는데 제한사항을 두고자 한다. 그것은 구입하려는 제품이 ‘당신에게 좋은 제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당신에게 좋은 제품이란 당신이 그것을 구입함으로써 행복함과 만족감, 즐거움, 유용함 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당신은 아마도 ‘당신에게 좋은 제품’을 선택하기 위해서 지금 수중(手中)에 있는 돈과 제품의 성능 및 기능, 디자인, 기업의 브랜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표준 정규분포 곡선의 평균에 속하는 한국인 소비자라면 S社의 「잘 나가 공기청정기」와 L社의 「멋진 공기청정기」, C社의 「저렴하고 좋은 공기청정기」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만일 당신이 제품의 가성비를 우선적 가치로 삼고 있는 소비자가 아니라면, 당신은 S社의 「잘 나가 공기청정기」와 L社의 「멋진 공기청정기」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반면에 당신이 제품의 가성비를 우선적 가치로 삼고 있는 소비자라면, 당신은 C社의 「저렴하고 좋은 공기청정기」를 선택할 것이다.

다수의 한국인들이 S社의 「잘 나가 공기청정기」와 L社의 「멋진 공기청정기」 같은 제품들을 주로 선택하고 구입하는 이유는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 대상인 재화(제품 또는 서비스)의 종류와 소비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다수의 한국인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자신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드러낼 수 있는 형태의 소비를 하고 있다.

박윤지·김기옥[11]은 그들의 연구를 통해서 위의 내용과 비슷한 결과를 확인한 바 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 소비자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품을 통해 실현한다. 하지만 현대 소비자들은 이를 막상 인지하지 못하고, 제품의 의미를 획일적이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제품이란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이다. 따라서 소비자는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셋째, 기성세대 소비자들은 타인을 의식하고 대접받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넷째, 소득이 높은 집단은 지위의 가치 추구, 소득이 낮은 집단은 제품의 효율성과 우수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9. 선우의 사례, ‘착한 소비

독자들은 “G社의 「함께하는 공기청정기」를 선택한 한국인 소비자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이 질문에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답변할 것이다. 그 이유는 G社의 「함께하는 공기청정기」가 소위 명품도 아닐뿐더러, 가성비가 좋은 값싼 제품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G社의 「함께하는 공기청정기」’를 구입한 소비자는 상당수의 한국인들에게 합리적인 소비를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제품을 구입할 소비자는 정녕 없을 것인가?”

“만일 이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가 있다면, 그는 어떠한 소비자이겠는가?”

지금부터 이 질문들에 답변을 하기 위해서 선우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선우는 최근 G社의 「함께하는 공기청정기」를 구입했다. 선우는 왜 이 제품을 구입한 것일까? 저자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은 선택이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저자와 독자들은 선우의 성장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우는 20대 후반의 남성이고,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유년 및 학창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서 매월 복지원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봉사활동을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선우의 부모님들은 안정적으로 지방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중상층(the upper-middle classes, 中上層)에 해당하는 경제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선우가 기억하는 선우의 어린 시절 부모님은 항상 넉넉하고 인자한 성품으로 이웃들과 관계가 좋았고, 기부 및 봉사활동 등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이어서 지역사회로부터 존경받았고 신망(信望)도 두터웠다. 이러한 성장환경 탓에 선우는 ‘자신의 목표 성취와 즐거움 추구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공동체)에 기여를 하면서 자신을 찾아가고 삶의 의미(혹은 행복)를 느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선우는 현재 서울시에 소재한 유수대학원에서 대학원생으로 재학 중이다. 선우는 비교적 넉넉한 경제력이 있는 부모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에게 경제적 의존을 거의 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현재 시간제 일자리(part-time job)를 얻었고, 야간(대부분의 근무시간은 새벽임)에 일을 하여 대학원 생활에 필요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다행히 대학원 등록금은 선우가 연구실에서 오전과 오후에 전일제 연구원 생활을 함으로써 받는 장학금으로 납부하고 있다. 따라서 부모님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선우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선우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불만이나 후회는 전혀 없다. 더구나 선우는 이러한 상황과 경험이 자신에게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믿고 있다.

선우는 빠듯한 경제적 상황으로 인하여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소비를 함에 있어서도 정말 필요한 제품만을 구입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제품을 구입할 때에는 가성비를 중요한 가치(기준)로 삼고 있다.

선우는 여행과 자전거 하이킹을 취미로 삼고 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마다, 그리고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마다 이 취미들을 가급적 많이 즐기려고 한다. 또한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마다 선우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사회복지시설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선우는 봉사활동이 누군가를 돕는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원봉사는 자신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이며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선우는 봉사활동을 하는 사회복지기관에 많은 돈은 아니지만 매달 1~2만 원씩 기부를 하고 있으며, 그 기간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간다.

선우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과 행동들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자신을 보다 성숙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간혹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선우는 ‘이 순간만 지나면 좋아질 거야.’, ‘이 또한 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겠지.’, ‘나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야.’ 등의 생각들을 하며 그 상황을 잘 극복해 낸다.

물질적 풍요로움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선우는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필수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우는 매일 잠을 청하기 이전에 “오늘 하루도 충분히 행복했니?”라며 스스로 자문을 한다. 여기서 선우가 생각하는 ‘행복’은 순간의 즐거움과 같은 ‘쾌락적 행복’이 아니다. 그것은 선우의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선우의 성장과정과 생활환경, 가치관, 행동들은 소비 형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에 선우는 사회공헌활동(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을 수행하는 기업들이 만든 제품들과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 또는 Corporate Shared Value, CSV)을 하는 기업들이 판매하는 재화들을 주로 구입하고 있다. 최근 선우의 소비 형태와 소비에 대한 생각 등을 종합해 볼 때, 저자와 독자들은 선우를 스마트슈머(Smartsumer)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선우는 제품의 가격과 성능, 디자인 등은 물론 자신의 삶에 그 제품이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를 판단한 후 능동적인 소비를 하기 때문이다.

선우가 G社의 「함께하는 공기청정기」를 구입한 이유 역시 선우만이 가지고 있는 ‘소비에 대한 가치가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채은의 연구결과[13]에 따르면, 소비자는 그 순간의 즐거움과 안락함, 행복감이라는 정서적 가치가 소비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행복하고 즐거운 소비감정을 가진 고객은 비용에 대한 관대하다고 했다. 오종철의 연구결과[14]에서는 인간의 윤리적 의식과 행동은 윤리적 소비와 일정 상관성을 가진다고 했다. 이 연구결과들은 선우의 사례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10. 기본적인 소비의 전제

“당신은 얼마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

저자에게도 이 질문을 건넨다면 아마도 답변을 하기에 앞서 다음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구입할 가치가 있는 제품(또는 서비스)인가?”

“내가 지금 그것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적 상황인가?”

위의 질문들은 기본적으로 제품의 성능과 기능에 대한 신뢰가 전제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전제가 없다면 어느 소비자도 제품을 구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가 존재하기도 한다. 골동품과 유물 등에 대한 소비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외 사례이다. 골동품이나 유물 등은 제품으로서 성능과 기능을 기대할 수가 없다. 또한 제조사(혹은 제작자)로부터 고객 서비스(After Service, 이하 ‘A/S’)를 받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그것들을 구입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그것들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가치, 희소성 때문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골동품과 유물 등과 같이 예외에 해당하는 사례를 다루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 글의 목적과 다른 이야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1. 소비자가 대한민국을 바꾼다, ‘소비자 주권

“소비자가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다!”

2016년 8월 31일 헤럴드경제에서 보도한 신문기사[15]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미래가치(미래 가능성)가 평가된 세계 100대 혁신기업이 발표되었다. 세계 순위 100위권 이내에는 미국 기업들이 대다수 존재하고 있었고, 그 나머지를 일본과 중국이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은 네이버(NAVER)와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이 100대 기업에 속했다. 그러나 상위 10대 기업 안에 어느 기업도 포함되지 못했다. 또한 한국의 기업들은 업종별 세계 1위 기업들과 상당한 (평가점수) 격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1] 참고). 미래가치가 아닌 현재가치로 평가를 하여 순위를 매긴 결과에서도 미국과 일본의 많은 기업들이 상위권 순위에 올라 있었지만, 한국은 LG전자와 LS산전, 삼성전자만이 순위권 내에 있었다.


[그림 1] 한국 3대 기업의 산업별 세계 1위와의 격차[15]


<표 1>을 보자.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은 물론 한국과 유사한 경제규모를 가지는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의 평균적인 기업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확인된다. 한 국가의 평균적인 기업 가치를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알 수가 있다. 한 국가의 자본시장 시가총액은 상장된 모든 기업들의 시가총액 총합을 말하며, 한 기업의 시가총액은 기업의 가치를 반영하는 주가와 발행주식수의 곱으로 나타낸다. 이 내용을 토대로 생각해 볼 때, 한 국가의 자본시장 시가총액을 상장된 모든 기업들의 수로 나누면 그 국가에 상장된 기업들의 평균적인 가치를 가늠해 볼 수가 있다.


<표 1> 주요국들의 상장(IPO)된 기업 수, 시가총액, 연중거래량 통계


[그림 1]과 <표 1>에 대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대한민국이 가지는 중요한 문제를 도출할 수가 있다. “한국의 기업들은 현재는 물론 미래의 기업 가치를 위한 혁신성이 낮고, 높은 수준의 부가가치 창출 능력도 세계적인 기업들에 비해 상당히 뒤처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왜 이런 것일까?”

그 원인들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현재의 대한민국 기업환경(business environment, 企業環境)으로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시장구조와 산업 육성과 관련된 법/제도, 창업 생태계, 자본 및 금융시장 등에 대한 정밀진단을 한 후 실질적인 해결책 제시가 필요하다.

저자는 왜 [그림 1]과 <표 1>을 제시하면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꺼내었는가? 바로 이 절의 제목인 “소비자가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소비자는 어떻게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독자들은 ‘소비자 주권(consumer sovereignty, 消費者主權)’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혹시 들어본 적이 없다면, 저자가 쉽게 설명해 주겠다.

독자들은 언론매체들을 통해서 ‘소비자 불매운동’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이 용어는 소비자들이 특정 기업이나 특정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 행동(운동)을 의미한다. 즉, 소비자 불매운동이란 소비자들이 특정 기업의 제품을 구입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함에 따라서 재화 공급자인 기업에게 소비자들의 의견을 표출 및 전달하고 궁극적으로 기업경영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행위를 말한다. 옥시 제품 불매운동(가습기 피해와 관련, 2016년)과 자라 및 천호식품 제품 불매운동(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이슈와 관련, 2016년), LG그룹 제품 불매운동(환경오염 관련, 1995년), 남양유업 제품 불매운동(대기업 ‘갑질’이라는 사회적 문제와 관련, 2013년) 등이 한국에서 이루어졌던 대표적인 소비자 불매운동이다. 소비자 주권은 소비자가 자신들이 비용을 지불하는 만큼 재화 공급자인 기업에게 소비자로서 권리를 주장하고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자 불매운동은 소비자 주권을 위한 대표적인 행동들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소비자의 가치(소비를 위한, 이하 ‘소비가치’)가 특정한 소비 형태로 이어지는 중요한 요인이라면, 소비가치는 기업들을 변화시킬 수 있고, 더 나아가 한국의 산업구조 역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행복이라는 소비가치는 현재 대한민국의 대기업 중심 시장 환경과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도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이라는 소비가치는 제품이 가지는 가치에도 변화를 줄 것이다. 소비자 개인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행복감’이 다르기 때문에, 기업들은 소품종 대량생산이 아닌 다품종 중·소량 생산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혁신형 기술기업들과 벤처기업들, 즉 중소기업들이 소비자들의 소비가치에 부합하는 제품을 생산하는데 가장 적합할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기업 환경과 산업구조는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의 시작은 우리들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변화의 물결로 요동칠 것이다. 그리고 그 요동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행복감이라는 내음이 진동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소비자들과 공급자(기업)들은 모두 행복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머지않은 미래에 행복이라는 가치 추구로 인하여 이러한 변화가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12. 변화의 조짐

지금까지 대다수 한국인들의 소비가치는 물질에 기반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상당수 한국인들은 소비를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뽐내고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물질적 수단으로 보았다. 이러한 소비의 이유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에서 기인한 ‘가치의 부재’때문이다. 즉, 생존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은 삶의 의미와 행복을 ‘중심 된 가치’로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생존’이라는 가치만이 남게 되었다. 이후 단기간 내에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해야 한다는 이유로 국가와 사회는 한국인들의 ‘삶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경시했었다. 현대에 와서 한국인들은 이전보다는 비교적 높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물질적 풍요 속에서 한국인들은 정신적 허기짐을 느끼게 되었다. 삶의 가치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고,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 사치성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베블런 효과로 불리는 현상이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에 사치성 소비를 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는 한국인들은 제품의 가성비를 우선하는 소비가치로 삼았다. 왜곡되기 시작했다. 자신을 위한 소비가 아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 그리고 행복감을 느끼기 위한 소비가 아닌 단순히 쓰임을 위한 소비를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한국인 소비자들이 ‘행복’이라는 가치를 소비에서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평범할 수도 있는 질문이 소비자인 나를 의미 있게 만들기 시작했고, 이 질문의 의미가 담긴 소비는 결국 사회적 현상으로서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승일의 연구결과[17]를 보면, 감정이 수반된 소비는 기능적 상각이나 마모를 가지지 않는다고 했고, 이후 이 감정 경험이 소비하는 상품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했다. 아직까지는 일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움직임이지만, CSR 기업이 생산한 제품의 선호, 더 나아가서는 CSR 기업으로부터 CSV 기업의 선호로까지 소비자들의 선호 가치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즉,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가 소비에 반영되면서 윤리적 소비(또는 착한 소비)라는 소비 형태가 생겨났다. 그리고 다양한 소비자들의 가치가 반영된 소비 형태는 지금보다 더욱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13. 위대한 변화, ‘시장 질서를 바꾸다!’

기업은 이제 행복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제품을 소비하도록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할 것이다. 그 소비자들은 단순히 가성비가 좋다고 하여 제품을 구입하지 않을 것이고, 명품이라고 하더라도 소비자 자신에게 의미를 주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도 구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떠한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앞으로 기업에게 중요한 고민이 될 것이다.

제품의 가치(즉, 제품 가격)는 그 제품이 가지는 성능과 기능뿐 아니라 기업의 윤리성과 공익성, 디자인, 제품이 가지는 스토리, 브랜드 이미지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목표하는 소비자층에 따라서 제품의 가치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달라진다. 즉, 소비자들 각 개인이 느낄 수 있는 가치들을 다르게 하여 각 제품들에게 담을 수 있어야 하고, 이 제품들을 구입한 소비자는 만족감, 더 나아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결국에는 지금까지의 소품종 대량 생산된 제품들이 미래의 소비자들에게 많은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선호에 맞추어진 다품종 중·소량 제품들을 생산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급자들의 주축은 중소기업들이 될 것이다. 물론, 더욱 특화되고 가치 있는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맞춤형(혹은 주문형) 제품’만을 제작하는 기업도 많아질 것이다. 이전에도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고가의 맞춤형 제품을 제작하는 기업(혹은 장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경제성이 낮아져 그 사업을 접거나 다품종 중·대량생산을 하는 사업으로 바꾼 경우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상당수 독자들은 저자의 “‘맞춤형 제품’만을 제작하는 기업들이 많아질 것이다.”라는 예측을 헛소리(?)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상업용으로 현실화될 다음의 두 가지 기술들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4차 혁명의 주축이 될 기술들 중 ‘3D 프린터’와 ‘스마트 팩토리’를 말이다. 이 기술들은 예전의 장인들이 제품을 제작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쉽게, 또한 정밀하게 제품을 제작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소비자들의 선호에 맞춘 다양한 제품들을 중·소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이 직접 제품들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것이 적합하다. 그리고 자신들의 브랜드로 제품을 직접 소비자들에게 판매해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기업의 하부 수직계열 구조에 놓인 것이 아닌, 독자적인 사업을 영위하는 중소 규모의 혁신형 기술기업들과 벤처기업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에 맺어지는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원·하청관계는 급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쌍방 수평적인 전략적 계약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그 사용이 많이 뜸해진 용어이다. 그것은 바로 블루오션(Blue ocean)이다. 블루오션이란 경쟁이 없거나 미약하여 비용절감은 물론 부가가치를 크게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의미한다. 소비자들의 가치 추구는 기업들이 레드오션(Red ocean)이 아닌 블루오션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할 것이다.

“당신은 얼마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

이 질문은 위대한 변화의 시발점(始發點)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임혜선(2016), [가격인상의 배신] ‘불황의 단편’ 명품, 베블렌 효과는 없었다, 아시아경제: 8월 22일.

[2] 강현석(2014), 한국서 유독 비싼 샤넬·루이비통 왜?, 일요시사: 11월 6일.

[3] 임혜선(2015), [高價의 역설] 명품의 또 다른 이름, 거품, 아시아경제: 12월 24일.

[4] 장병창(2016), 한국 명품 시장 세계 8위, 어패럴뉴스: 1월 18일.

[5] NAVER 지식백과 ‘베블런효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32670&cid=40942&categoryId=31819>.

[6] 로버트 기오사키(2000),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황금가지.

[7] 권홍우(2008), [오늘의 경제소사/10월2일] <1205> 간호사 서독 파견, 서울경제: 10월 1일.

[8] 조희연(2014), 1966년 독일 교육탄광에서 실습하는 파독 광부들, NEWS1: 12월 26일.

[9] 김수경(2014), [뉴스쇼 판] 50주년 맞은 베트남전 파병의 명과 암, TV조선: 9월 25일.

[10] 장정현(2015), [경향으로 보는 ‘그때’] 1970~80년대 중동 건설 붐, 경향포럼: 4월 2일.

[11] 박윤지·김기옥(2012), 소비자가 제품에서 추구하는 소비자가치: 제품속성과 가시성에 따른 4가지 제품유형을 중심으로, 대한가정학회지, 제50권 제7호, pp. 81-96.

[12] 안유정(2014), 공유 경제(Sharing Economy) 시대의 기업의 공유 가치(Shared Value), 토픽분석(기업지배구조원), 제72권, pp. 34-45.

[13] 이채은(2014), 호텔 레스토랑 고객의 소비감정, 소비가치, 브랜드 이미지, 고객행동의도 간의 구조관계 분석: 소셜커머스 사용 여부에 대한 비교를 중심으로, 호텔경영학연구, 제23권 제1호(통권 제77호), pp. 125-144.

[14] 오종철(2014), 윤리적 제품 소비에 미치는 소비자 가치요인에 관한 연구: 제품신뢰의 조절효과를 중심으로, 기업경영연구, 제21권 제2호, pp. 1-26.

[15] 이해나(2016), [슈퍼리치] 한국은 한없이 밀리는 ‘이노베이터’의 세계, 헤럴드경제: 8월 31일.

[16] 차우준(2016), 스타트업의 크라우드펀딩 성공 전략: 자본시장에서 각 참여주체들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파이낸셜뉴스 제14회 Term-paper 현상공모 입선작: 11월 10일.

[17] 이승일(2014), 소비 수요 창조의 일곱 가지 패턴, LGERI 리포트( LG Business Insight):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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