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하이트 프로젝트 #1~3

by 작가C

#1

“여러분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과 모든 생명, 지구 그리고 우주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연결이라는 표현보다 더욱 깊이 있게 관여되어 있는 공유라는 표현을 써야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제한적인 근거를 보여주기는 하였지만, 오늘의 강의에서 제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우리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 그리고 우주의 존재가 우리의 존재에 어떠한 의미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었습니다. 그럼, 오늘의 수업은 이 정도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수업이 끝났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수업을 마친 후 깊숙한 생각의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 든다. 요즘의 나는 화학공학을 전공한 공학자라기보다 망상을 쫒는 철학자에 더욱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나의 명함에는 ‘Ph.D.’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라틴어로 철학 분야의 박사라는 의미를 가지는 Philosophiae Doctor의 약어이다. 나의 박사학위증명서에는 분명히 Doctor of Engineering이라고 명기되어 있음에도 말이다. 그 옛날에는 모든 학문들이 인간의 존재와 우주의 섭리를 찾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학문의 정점에 도달한 사람들을 철학자라 칭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나도 철학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주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을 해본다.

최근 2~3년 동안 나는 사실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몰두하고 있다. 나의 존재 그리고 우주의 존재. 더불어 죽음은 우리, 즉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어떠한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철학서, 사상서, 자연과학서, 종교서 들을 끊임없이 찾아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찰리 우드 교수님”

수업을 마치고 내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은 신재원 이었다. 그는 내 밑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또 내 강의를 수강하고 있는 제자이다. 그러면서도 나의 연구와 생각을 지지하는 극히 드문 지지자이기도 하다.

“교수님, 오늘도 수업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물리화학적 측면에서 우주와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대한 강의를 이어서 해주실 거죠?”

“그럼.”

“아시겠지만, 저는 대학원에 진학을 하게 된 이유가 교수님의 이론 그리고 우주와 존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도 흥미로워서였기 때문이거든요.”

“내 알고 있지.”

“참, 봐하이트(Wahrheit) 프로젝트는 조만간 시작하시는 거죠?”

“그래야지. 비용이나 사람이 크게 필요한 프로젝트는 아니니까.”

“저는 요즘 그 프로젝트에 대한 기다림으로 다른 일들에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물론 제가 평상시 모든 일에 집중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요. 하하”

재원이는 봐하이트 프로젝트에 대해서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그는 평상시 데자뷰와 예지몽을 자주 겪는다고 한다.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들리는 이야기로 그의 집안은 대대로 무속인이 배출되는 집안이라고 한다. 무속인이 배출되는 집안에는 후대에서도 어떠한 정신적 유전처럼 무속인이 계속 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재원이는 무병이 발생했다든가 신내림을 받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도 무속인으로서 어떠한 정신적 유전인자를 받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 유전이 그의 빈번한 데자뷰 경험과 예지몽의 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혹시 예전에 제주도에서 학회 만났었던 대니얼 킴 박사를 기억하지?”

“네, 당연히 기억하죠.”

“오늘 대니얼 킴 박사가 오랜만에 업무 차 서울에 올라왔다가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해서 나는 그곳으로 갈 건데. 혹시 저녁식사 약속이 없다면 같이 가보겠나?”

“저야 좋죠. 교수님이 맛있는 것도 사주실테고. 하하”

“그러면 내 사무실에 들렀다가 저녁식사를 하러 같이 나가도록 하지.”


#2

스시K. 이곳은 내가 꽤나 좋아하는 참치횟집이다. 그러나 그동안 안 온지 1년이 조금 더 넘은 듯하다.

“교수님,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세요?”

여주인은 오랜만에 가게를 찾은 나를 반기면서도, 왜 한동안 찾지 않았냐며 교태 섞인 목소리로 투정을 부리고 있다. 출중한 외모를 가진 이 여주인의 투정이 나는 싫지가 않다.

“미안해요. 최근 1년 동안은 너무 정신없이 지내왔던 터라. 참, 내가 미리 예약한 방에 손님이 혹시 와있나요?”

“네, 안 그래도 한 15분 쯤 전에 손님 한 분이 오셔서 예약된 방을 찾으시기에 안내를 해드렸어요.”

“아, 그래요. 그럼 바로 들어가 봐야겠네.”

“교수님, 음식은 이전에 항상 찾으시던 스페셜A로 준비해드리면 될까요? 술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네, 그걸로 준비해주면 좋겠네요. 히레사케 3잔도 같이 주고요.”

“그럼, 바로 준비해서 가져다 드릴게요.”

“그래요. 재원아, 우리는 어서 들어가자.”

나와 재원이는 예약된 방으로 바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태블릿PC를 이용하여 무엇인가를 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대니얼 킴 박사가 있었다.

“대니얼 킴 박사, 오랜만이네.”

“교수님. 잘 지내셨죠? 재원이도 같이 왔구나. 잘 지내지?”

“네. 박사님도 잘 지내셨죠?”

“그럼. 잘 지냈지.”

“대니얼 킴 박사, 식사와 술은 들어오면서 내가 주문해 놨네. 괜찮지?”

“당연하죠.”

대니얼 킴 박사는 언제나 호방한 모습이다. 아마도 나는 그의 크고 시원시원한 목소리와 보통의 한국 남자들보다 큰 체구를 가진 흡사 예전의 장수와 같은 외형 그리고 목소리를 가졌기 때문에 그러한 인상을 더욱 가지게 되는지도 모른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7시다. 많은 손님들이 식사를 하면서 반주도 곁들이고 있어서인지,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은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가게 안을 공기처럼 채우고 있다.

잠시 후 참치회와 술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술잔을 집어 들고 대니얼 킴 박사와 재원이에게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상투적인 인사를 건배사로 대신한다. 따끈한 히레사케는 역시 지금처럼 날이 다소 쌀쌀한 가을 저녁에 마셔야 제 맛이다. 술잔에 비치는 밝은 오렌지 빛이 온기를 더욱 북돋는 듯하다.

“그나저나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서 온 거야? 아직 제주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거지?”

“네, 아직 제주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죠. 그런데 그 프로젝트가 올해 12월이면 끝나게 되어서 내년에는 새로운 프로젝트도 만들고 또 거처도 옮겨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서울에 올라온 이유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서고요.”

“아, 벌써 그 프로젝트도 마무리 되어가나 보네. 대학원 선배였던 하시모토 교수와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며 제주대로 내려갔던 일이 엊그제 같은 데 말이야.

“그게 벌써 2년 전이네요. 하하.”

대니얼 킴 박사와 나는 그렇게 서로의 그 간 밀려있었던 인사를 한참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했다. 재원이는 나와 대니얼 킴 박사의 대화에 쉬이 끼지를 못하여 홀로 묵묵히 식사를 했다.

“교수님, 예전에 한 2년 전쯤 술자리에서 제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는 데. 혹시 기억하세요? 존재에 대한 과학적 입증,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기억하고 있지. 그 당시 자네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내가 이야기를 했었을 거야. 그렇지?”

“맞아요. 그랬었죠. 교수님과 그 이야기를 나누고서 저는 깊은 생각에 빠졌었답니다. 워낙 흥미로운 주제였잖아요.”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고, 또 밝혀내야 할 가설이기도 하지.”

“네, 맞아요. 존재하는 것들의 본질, 그리고 우주와 존재의 연결성. 이 주제는 우리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니까요.”

“그래서 말이지, 내 여기 재원이와 함께 그 동안 그 주제를 어떻게 실제 연구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해왔다네.”

“정말인가요? 얼마나 준비를 해놓으신 거예요?”

“조만간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같네만, 아직 연구비 펀딩이라든지 실험계획의 구체화 등이 일부 필요하다네.”

대니얼 킴 박사는 나와 같은 부류의 연구자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다소 엉뚱한 면이 있다. 또 어찌 보면 그는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의 창의적인 연구자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족적들을 살펴보면 그렇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있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 즉 ETH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TH는 전 세계의 수재들이 찾는 세계 최고의 대학들 중 한 곳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폰 노이만,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 등 지구상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을 배출한 대학이기도 하다. 대니얼 킴 박사는 ETH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명석한 사람인지, 또 얼마나 촉망받는 연구자로 성장해 나갈 과학자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게다가 박사학위 과정을 진행하는 동안 그는 정말 놀라운 성과들을 냄으로써 스위스 언론에 그의 이름이 여러 번 언급되었음은 물론 과학자나 공학자라면 한 번쯤은 논문을 게재하고 싶은 세계적인 학술저널인 ‘SCIENCE’에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었다.

박사학위를 받고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가 관리하는 연구기관에 연구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3년 만에 퇴사를 결정하고 만다. 아마도 그의 자유로운 삶의 방식과 다방면으로의 관심사는 관료화된 조직에서 연구를 담당하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단적이다. 아마도 이 표현이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데니얼 킴 박사는 꽤나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이고, 개인 사진전을 열 정도로 사진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사진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술 활동을 교류하고 친분을 쌓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꽤나 많다.

한국 학계에서는 이렇게 다재다능한 그의 모습이 전통적인 학자로서의 모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는지 모른다. 이 바닥에서 잠시만이라도 생활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즉 대학의 교수들이나 정출연의 연구자들이 얼마나 심각한 꼰대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러고 보면, 대학의 교수들이나 정출연의 연구자들이 국내에서 갑질로 사회에 물의를 일이키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그를 이단적으로 바라볼지 모르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매우 창의적이고 영감을 주는 연구자이다. 지금 수행하고 있는 그의 연구 프로젝트만 보아도 그러하다. 그가 가진 재능과 창의성, 새로운 시각이 가장 잘 적용된 융합형 연구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환경기술에 적용되는 미생물들을 특정 주파수의 음향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 배양하는 기술개발에 관한 연구. 국내 어느 연구자가 이러한 연구를 계획하고 수행할 수 있을까? 대니얼 킴 박사가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대니얼 킴 박사가 나의 다소 엉뚱해 보일 수 있는 연구주제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그에게 지금까지의 준비사항, 그리고 앞으로의 연구방향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 했다. 그의 호응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내가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했다.


#3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고 있다. 간만에 평화롭고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오늘은 강의는 물론 별다른 일정이 없는 흔치 않은 날이다. 실험실에는 가봐야 하겠지만, 지금 이 시간을 만끽하고서 가고자 한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내 휴대폰으로 누군가의 전화가 걸려온다. 누구일까? 전화를 받기가 싫다. 분명 누군가 어떠한 일이 있어서 전화를 한 것이라면 이 시간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 망설여진다. 휴! 그래도 전화를 받아야겠지? 오늘의 이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여보세요. 찰리 우드 입니다.”

“교수님, 저예요. 제가 바쁘신데 전화를 한 것은 아니죠?”

“어, 대니얼 킴 박사. 지금 통화 가능하다네.”

“어제는 어떻게 잘 들어 가셨나 해서 전화 드렸어요.”

“술을 오랜 만에 많이 마셔서 취하기는 했었지만, 집에 못 찾아갈 정도로 인사불성은 아니었지. 하하하. 어떻게 자네는 잘 들어갔고?”

“네. 저는 어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잠들어 버렸어요. 다행히 오늘 별다른 일정이 없어서 좀 늦게까지 자다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번호는 무엇인가? 자네 전화번호가 아닌 것 같은데.”

“맞아요. 휴대폰을 잠시 빌렸습니다. 어제 숙소로 가는 길에 휴대폰을 잃어 버렸거든요.”

“어이쿠. 다른 것들은 잃어버리지 않았고?”

“네. 다행히요.”

“정말 그나마 다행이구만.”

“교수님, 제가 전화를 드린 이유가 있는 데요.”

“뭔가?”

“어제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야기 해주신 봐하이트 프로젝트에 저도 참여를 할까 하고요. 이번에 제가 신진과학자 기초연구 과제를 수행하게 되는데, 자율 연구주제라서 교수님 프로젝트에 참여를 해볼까 합니다.”

“오. 잘 되었네. 요즘은 정부 과제를 따는 게 워낙 어려운 데, 용케도 과제를 받았네 그려.”

“네, 운이 좀 따라 준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떤 식으로 참여를 해야 할까? 참, 내가 인건비를 어떻게든 좀 챙겨줘야 할 텐데.”

“에이. 교수님 지금 연구실 재정상황을 제가 알고 있는데요. 제 인건비는 제 과제에서 충당할 수 있어서 신경 안 쓰셔도 되요. 그리고 소소하게 소요되는 재료비 등도 어느 정도는 제 과제에서 처리를 할 수 있고요.”

“내가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네.”

“교수님은 그러셔도 됩니다. 하하하. 그리고 제가 흥미를 가지고 참여를 부탁드리는 입장인데요,”

“대니얼 킴 박사, 고맙네.”

“별 말씀을요.”

“그럼 시간이 될 때, 내 사무실로 찾아오겠나? 봐하이트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의논을 좀 하면 좋겠는 데.”

“당연히 찾아 봬야죠.”

“그럼 언제가 시간이 괜찮겠나? 참, 프로젝트 의논을 할 때 재원이도 같이 부르겠네.”

“그러시죠. 오늘 시간이 괜찮으시면 찾아뵐까요?”

“좋네. 다행히 오늘 별다른 일정이 없다네. 강의도 없고.”

“그러면 1시간 정도 후에 교수님 사무실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지금 출발하면 그 정도 시간이 걸리거든요.”

“오케이. 그러면 기다리고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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