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하이트 프로젝트 #4~5

by 작가C

#4

대니얼 킴 박사와 전화를 마치고 나서 나는 실험실에 있는 재원이를 호출했다. 잠시 후 재원이가 사무실로 왔다.

“교수님, 재원입니다.”

“어, 들어와.”

“혹시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재원아 혹시 오늘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나?”

“지난주 외부기관에 의뢰했던 XPS와 BET 분석결과가 도착해서 데이터를 정리해야 하는 데, 오늘 당장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은 아니에요.”

“그것 말고 오늘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은 없는 거지?”

“네. 그런데 왜 그러세요? 급하게 시키실 일이 있으세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1시간 정도 있다가 대니얼 킴 박사가 올 거야. 우리가 진행하려고 하는 봐하이트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연구진행 의논을 하자고 불렀어. 그런데 재원이도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불렀네.”

“아, 그럼 제가 지금 뭘 준비를 해야 할까요?”

“특별히 준비는 필요 없을 것 같은 데. 참, 혹시 예전에 이 프로젝트 계획을 하면서 나랑 같이 만들었던 PPT 자료를 가지고 있나? 그때 간단히 연구개념 정리를 해서 가볍게 만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요. 제가 다시 제 자리에 가서 찾아보겠습니다. 자료 찾으면 3부 출력해서 올게요.”

“그러면 그것 좀 부탁할게.”

“네, 알겠습니다.”

재원이가 실험실로 돌아가 자료를 출력해서 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잠시 후 도착할 대니얼 킴 박사와 의논할 내용들을 추가적으로 기록했다. 그렇게 시간이 약 30분 정도 지난 것 같다. 두 번의 노크소리가 들렸고, 곧 대니얼 킴 박사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 왔습니다, 교수님.”

“대니얼 킴 박사,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네. 여기 앉게나.”

대니얼 킴 박사는 상의 재킷을 벗으면서 재원이 옆 자리 소파에 앉았다.

“재원이 어제 잘 들어갔니?”

“네. 박사님도 잘 들어가셨나요?”

“응. 그런데 어제 좀 과음을 해서 그런지 두통이 살짝 남아 있네.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가봐.”

“그러고 보니 냉장고에 음료가 있으면서 꺼내줄 생각을 못했네. 둘 다 혹시 오렌지주스 괜찮지?”

“저는 좋습니다.”

“저도 좋습니다, 교수님.”

“오케이. 잠깐만.”

나는 바로 책상 옆 간이냉장고에서 오렌지주스 3병을 꺼내 재원이와 대니얼 킴 박사에게 주었고, 내 자리에도 하나 놓았다.

“음료들 마시면서 우리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좀 해볼까?”

“그러시죠.”

“대니얼 킴 박사는 내가 왜 이 프로젝트를 생각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가설을 세우고 있는지 자세하게 모를 테니까 그 이야기부터 해볼게. 물론 재원이는 아는 이야기라서 지루할지 모르지만 참고 들어주시고.”

“지루하다니요. 매번 들을 때 마다 저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요.”

“재원이가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참, 이야기가 좀 길 것이라네. 대니얼 킴 박사는 좀 이해해 주시고. 알았지? 그리고 내 이야기 중에 질문이 있으면 바로 질문하시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봐하이트 프로젝트는 우선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들이 어떠한 에너지의 연결로 이어져 있다는 가정에서 시작할 거라네. 이 가정은 내 개인적인 믿음이기도 하지. 내가 이러한 믿음을 가진지는 꽤 오래 되었다네. 예전 나노기술을 적용한 촉매소재를 개발하는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는 데, 그 당시 소재의 계면현상을 분석하면서부터 가지게 된 궁금증이 하나의 믿음으로 이어졌다고 할까? 여하튼 그때의 궁금증이 봐하이트 프로젝트의 시발점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야.”

“예전에 제게 이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어 대략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재원이에게는 내가 이야기를 몇 번 한 적이 있을 거야.”

“네.”

“그 당시 나는 이산화티타늄을 주로 실험에 사용했다네. 그리고 여러 전이금속들과 귀금속류, 비금속 물질들을 이산화티타늄에 합성하면서 물리/화학적 성질의 변화를 관찰했다네. 그때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지. 몇몇 물질들은 화학식의 변화는 없었지만 고유의 에너지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말이야. 게다가 전자의 경우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물질 사이를 이동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네. 나는 당시 그 내용들을 종합해서 영국왕립화학회에서 관리하는 한 학술지에 논문으로 투고를 했었는데, 별다른 심사의견이 없이 게재가 승인되었고 각국의 여러 연구자들이 그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다네. 나는 그때 확신했지. 우리가 접하는 우주의 구성물질들은 어떠한 호환성, 또는 공유가 있다는 것을 말이야.”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대니얼 킴 박사.”

“저도 그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연구경험들이 있거든요. 저는 교수님처럼 깊게 생각은 못하고 그냥 당시의 성과내기에 정신이 팔려서 지나쳤지만 말이죠.”

“내가 간단한 예를 들어보도록 하지. 탄소 위에 질소를 얹기 위해서 특정한 에너지를 가해주고 화학반응이 일어나도록 유도해주면 결국은 탄소 위에 질소가 얹어진다네. 그런데 탄소와 질소가 가지고 있던 전자나, 혹은 그보다 작은 단위의 무엇은 상호 간에 공유가 이루어지듯이 미세한 변화가 일어난다네. 전자의 이동, 각 원소들이 가지는 고유한 에너지의 변화, 표면반응성의 변화가 바로 그러한 것들이지. 물론 물리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다네. 적어도 지금 우리가 분석을 위해 사용하는 장비들로는 말이지. 무기물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에서도 동일하다네.”

“와!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의 현상도 확인해 보셨군요. 정말 흥미롭습니다. 교수님께서 일반화 시킬 수 있으리만큼 얼마나 많은 샘플들로 실험하시고 확인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충분히 보편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유기물도 원소로서 나누어지면 결국 무기성 물질이 되니까요. 충분히 상호 호환의 가능성, 공유의 가능성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킴 박사, 생각보다 자네와 이야기가 잘 되니 기분이 좋네.”

“별 말씀을요.”

“혹시 재원이는 할 말이 없나?”

“네, 교수님.”

“그럼 내가 이야기를 더 이어가도록 하겠네. 지구에서 유기물이라 정의되는 물질들도 결국은 탄소, 질소, 산소, 수소가 결합되어 있는 일종의 복합물질들이지. 그래서 자네의 말처럼 원소 단위로 분해가 도니다면 유기물도 결국은 무기물인거야. 서로 미시적 규모에서는 전자나 에너지를 공유하고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셈이지.”

“교수님.”

“그래, 재원아.”

“지금 교수님과 대니얼 킴 박사님이 이야기 하신 것처럼 미시적 규모에서 우주를 구성하는, 아니 우주에 존재하는 구성물질들은 모두 어떠한 형태로든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연결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서로 공유하고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에서 연결이라는 표현이 잘 못되었다고 생각이 되지는 않지만요.”

“그럴 수 있지.”

“네, 교수님. 그래서 저는 인간도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도 스스로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우주 모든 존재들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우주가 비어 있는 것 같아도 중력장으로 채워져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지. 그 사실은 이미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주장되어지고 과학적으로 밝혀졌으니까.”

“네, 맞아요. 대니얼 킴 박사님.”

“저는 이 프로젝트가 그러한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그동안 과학적이지 않다고 여겨졌던 환생이나, 앞선 세대 누군가의 기억을 기억하는 현상, 예지몽 등의 초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원에 진학을 하여 교수님의 연구실에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고요.”

“내가 잘 알지. 학부 수업을 하면서 내가 슬며시 꺼내었던 이야기에 재원이 네가 관심을 가지고 내 사무실로 찾아왔었지. 그리고 대학원 진학과 연구 참여에 대한 상담도 그 때문에 여러 차례 했었고.”

“네, 맞아요. 교수님.”

“내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입증하고 싶은 것은 바로 재원이가 말한 바와 같다네. 이 프로젝트의 목표이기도 하지. 우주 모든 존재들의 연결성 말이야.”

“엄청나네요. 쉽지 않은 프로젝트이리라 생각되지만 말이죠.”

“킴 박사, 정말로 쉽지 않을 거라네. 그러나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게. 우리의 사유실험을 통해서 불가능한 연구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하긴 그렇습니다. 저도 기대가 있기 때문에 이런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고요.”

“그렇지. 충분히 목적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연구가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네.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생장하는 과정만 잘 살펴보아도 생명을 가진 물질들의 복합체가 다른 물질들을 받아들이고 내어주는 과정의 반복이 아니던가. 그렇지?”

“그렇죠.”

“네, 맞습니다. 교수님.”

“식물은 자신의 뿌리를 통해서 유기성 물질들과 무기성 물질들, 물을 흡수하고, 잎의 엽록소를 통해서 태양으로부터 복사되어 오는 광자에너지를 받아들인다네. 그렇게 무기물을 유기성 복합물질로 전환시켜 자신의 생장에 활용하고, 또 유기성 복합물질은 무기물과 다른 유기물로 전환시켜 배출하지. 식물이 자신의 생장이 멈추어 부패하게 되거나 다른 동물들에게 먹히고 나면 다시 무기물과 유기물로 분해가되어 다른 존재의 일부로 존재하게 된다네. 지금 내가 식물에 한정해서 설명을 하고 있지만 지구적으로, 또 우주적으로 시각을 넓힌다면 모든 우주의 존재들은 서로가 일부가 되었다 아니기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네. 결국, 인간 역시 우주를 구성하는 하나의 구성체로서 다른 인간들 그리고 다른 존재들 그리고 다른 물질들과 서로 공유되고 아니기를 반복하는 과정 속에 있는 셈이지.”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1978년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가이아 이론’을 주장한 배경도 교수님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환경운동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어머니 지구’라는 표현도 교수님의 생각과 거의 동일하게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대니얼 킴 박사,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물론 그들은 대중들의 공감에 기반 한 주장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 한다는 것이 나와의 차이겠지.”

“맞습니다. 그것이 큰 차이겠죠.”

“그렇다네. 다들 TV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가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떠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지?”

“신기한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에서 본 적이 있지요.”

“저도 있습니다, 교수님.”

“그러한 내용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시청하게 만들지. 방송국 입장에서는 시청률 높이는 데도 좋고.”

“그렇죠. 저는 그러한 프로그램들을 자주 봅니다.”

“재원이 자네는 충분히 그러리라 생각해.”

“하긴 제가 교수님께는 그렇게 비춰질 수 있겠네요. 하하하.”

“재원아, 그건 이상한 것이 아니야. 지금은 그러한 관심과 호기심이 연구자로서 길을 선택하도록 하였으니 긍정적인 너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지.”

“교수님께서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뭐, 감사할 것까지야. 여하튼 그러한 프로그램들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을 잘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다네. 바로 꿈에서 보았다던가, 자신은 경험한 적도 없는 데 생각이 떠오른다는 것이지. 나는 그러한 공통된 현상들이 그들 자신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어떠한 물질들이 자체적으로 지니고 있던 기억이 발현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네.”

“저는 그러한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교수님처럼은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교수님 정말 사고의 수준이 다르시네요.”

“킴 박사, 그거 칭찬이지?”

“당연하죠. 설마 제가 교수님께 나쁜 평을 할까요?”

“이 사람, 화들짝 하기는. 장난삼아 한 말일세.”

“교수님은 정말 가끔 제게 짓궂으세요. 그런 장난하실 때 마다 저는 가슴이 철렁 한답니다.”

“미안하이. 미안해.”

“괜찮습니다. 워낙 교수님께 자주 당해서 이제는 면역이 생겼습니다. 하하하.”

“이사람 재원이 앞에서 참 무안하게 말하네 그려. 하하하.”

“교수님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의 대화는 못들은 걸로 할게요.”

“이 녀석도 참. 하하하.”

“교수님, 그러고 보니 그 생각이 납니다. 예전에 전자공학을 전공한 박사 한 분과 대화를 나눌 때 그분이 제게 했던 말인데요.”

“그게 뭔가?”

“우리가 현재 컴퓨터와 스마트폰, 각종 전자기기들에 사용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의 원리에 대해서였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네, 메모리 반도체요. 현재의 메모리 반도체는 Si가 포함된 소재를 주로 사용해서 제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다른 소재들에 비해서 메모리 반도체적 특성이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즉 전자의 컨트롤이 용이하고, 그로 인한 메모리 기능을 구현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에 Si가 포함된 소재를 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요. 달리 이야기 하면, 다른 물질들도 메모리 반도체로서 특성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물론 메모리 반도체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특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요.”

“당연히 그렇겠지.”

“그분의 말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기억에 대한 기억이 더욱 일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네. 이제는 그 이야기를 꺼내봐야 할 것 같네.”

“어떤 이야기를요?”

“대니얼 킴 박사, 일단 들어보시게나.”

“네.”

“현재 물리학자들, 특히 이론물리학과 입자물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초끈이론이 상당히 핫한 연구 분야라고 하네. 그들은 초끈이론이 거시적인 세계를 설명해주는 상대성이론과 미시적인 세계를 설명해주는 양자역학이론을 하나로 연결하여 우리 우주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론, 즉 통일장이론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

“초끈이론은 저도 TED 등에서 접한 적이 있습니다. 어려운 개념이지만 꽤나 흥미로운 이론이더라고요.”

“오! 재원이는 알고 있구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그냥 이름만 들어본 정도입니다.”

“그래도 대단하구만. 내가 이야기를 하기가 비교적 쉽겠어. 대니얼 킴 박사는 당연히 쉽게 이해하면서 들을테고.”

“교수님, 저를 너무 과대평가 하지 말아주세요. 하하하. 저도 이해를 잘 못하는 분야가 많답니다.”

“알겠네. 하하하. 여하튼 나는 초끈이론의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내 생각에 대해서 더욱 확신을 가졌지. 물리학자들은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물질은 입자가 아니라 사실 에너지를 가지고 진동하는 ‘1차원의 끈’이라고 주장한다네. 하지만 그 진동하는 끈은 너무 미세하기 때문에 우리가 점의 형태로 인식할 수밖에 없고, 현재 우리의 과학기술로는 볼 수가 없다고 한다네. 여기서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우주 만물의 기본물질은 에너지를 가지고 진동하는 1차원의 끈이라는 주장이야.”

“교수님, 왜요?”

“킴 박사, 잘 들어봐.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 달달달 외던 주기율표의 모든 원소들이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물질, 즉 진동하는 1차원의 끈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되. 그렇지?”

“그렇겠죠.”

“결국 1차원의 끈이 에너지를 달리함에 따라 진동의 형태가 달라지고, 그것이 거시적 세계에서 다양한 물질로 관찰된다는 것. 그렇다면 무기물과 유기물은, 우주 만물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네. 그렇지 않겠나?”

“그렇죠.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교수님.”

“그럼 둘 다 여기까지는 내 생각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이야기를 더 이어가겠네.”

“네, 그러시죠.”

“재원이도 그래도 되겠지?”

“네, 교수님.”

“음. 그렇지. 자. 지금의 나, 찰리 우드는 우주가 처음 생겨날 때 존재했었던 다수의 수소들과 백악기 시대에 풍화된 어떤 암석의 일부와 태평양에서 수십 년을 살다가 죽은 고래의 일부와 수백 년 전 죽은 어느 네덜란드인의 일부가 모여서 재구성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네. 그리고 나 역시 죽고 나면 부분들이 되어 다른 어떤 존재들의 일부가 되어가겠지. 그렇지 않겠나?”

“그렇죠. 학부시절 기상수문학이라는 과목을 배운 적 있습니다.”

“킴 박사, 자네는 학부부터 전공이 계속 환경미생물학 분야가 아니었던가?”

“맞습니다.”

“그런데 기상수문학은 어떻게?”

“당시 강의도 들어볼만하고 학점도 잘 준다고 해서 타과 과목을 전공교양으로 수강했었죠.”

“그렇구먼.”

“네, 당시 물이라는 자원이 어떻게 형성되고 지구적인 규모에서 어떻게 순환하는지를 배웠는데요. 당시 물의 형성과 순환 전체를 ‘물의 순환’이라고 칭했습니다. 교수님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오르네요. 물 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물질들은 순환하고 공유되고 다시 순환한다. 우주와 지구도 마찬가지로.”

“자네의 말을 들어보니 순환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더 와 닿네.”

“교수님, 이제 전반적인 프로젝트의 개념과 목적은 알았습니다. 실험은 어떻게 진행하실 건가요? 대략 제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것은 있는 데, 교수님께서 재원이와 그 부분도 어느 정도 구상을 하며 준비를 하셨을 것 같네요.”

“아마 자네가 지금 머릿속으로 그린 것과 비슷할 거야. 실험과 관련된 부분은 실험실로 이동해서 자세히 이야기 하도록 하지. 필요한 실험장치를 구성해 놓기도 했거든.”

“정말요? 그렇게 하시죠.”

“그러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실험실로 가도록 하지.”

나는 몇 가지 자료들을 책상에서 챙겨 대니얼 킴 박사와 재원이를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대니얼 킴 박사가 적지 않게 기대를 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런데 재원이의 표정이 사무실 밖을 나서면서 약간 좋지 않아 보인다. 이 녀석 뭔가 불편한 게 있나? 일단 실험실에서 대니얼 킴 박사에게 실험장치를 좀 보여주고 실험진행에 대한 설명을 해준 이후,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5

실험실에 도착했다. 재원이 녀석이 내 사무실을 나서면서 표정이 좋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사실 나도 요 며칠 동안 강의와 외부일정들이 빼곡하게 잡혀 있어서 실험실을 오지를 못했었다. 그래서 재원이에게 실험실 관리를 일임했었는데, 이 녀석 여간 지저분한 것이 아니다. 생긴 것은 말끔한데 정리정돈하고 청소를 하는 습관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 며칠 사이에 이렇게 혼자서 엉망진창을 만들어 놓을 수 있겠는가? 재원이 녀석, 내 당황스러운 표정을 읽었는지 금세 표정이 바뀌어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벅벅 긁고 있다. 대니얼 킴 박사를 두고 혼을 낼 수도 없고, 괜히 창피해진다.

“킴 박사, 미안하네.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실험실을 미처 정리하지 못했더니 너무 엉망진창이네.”

“교수님, 대니얼 킴 박사님에게 봐하이트 프로젝트에 사용할 실험장치를 보여주시고 관련 설명들을 해주시고 나가시면 바로 실험실 청소와 정리정돈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재원이 녀석 눈치가 제법 빨라 이렇게 내게 선수를 치고서는 자리를 뜬다. 대니얼 킴 박사와도 실험실에서 오래 있지는 말아야겠다. 대니얼 킴 박사도 사실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실험실에서 오랜 시간 있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대니얼 킴 박사, 이것일세. 이것이 나와 재원이가 봐하이트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 구성해 놓은 실험장치라네. 비교적 심플하지?”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하지는 않네요.”

“맞아. 그렇다네. 사실 실험장치보다 중요한 것이 샘플이라네.”

“샘플이요? 어떠한 샘플을 쓰실 거죠?”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서로 다른 물질 두 가지를 한 쌍으로 샘플을 쓸 것이라네. 예를 들면 이런 거지. 토끼 한 마리와 토끼가 주로 서식하면서 주로 먹었던 식물. 바로 이렇게.”

“그러면 토끼는 샘플로 어떻게 쓰실 건가요?”

“토끼는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닌 죽어서 각 부위가 헤쳐져 있는 상태의 것을 샘플로 사용할 거라네.”

“아, 네.”

“토끼의 각 부위 살점들 그리고 장기, 뇌 등을 매우 잘게 썰어서 전해액에 담을 거라네. 물론 한 쌍으로 짝지어진 식물도 잘게 썰고 빻고 하여 전해액에 담을 거고. 전해액에 담긴 샘플들은 초음파교반기를 이용해서 잘 풀리도록 할 거라네. 그래야 실험장치를 이용해서 원하는 신호를 잘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거든.”

“당연히 그래야 하겠죠. 일반적으로 전해액에 시료들을 넣고 측정용 샘플로 만들 때는 교반기에 넣어 전해액에 잘 분산되거나 이온화 되도록 하니까요.”

“맞아. 이 실험에 쓰이는 시료들도 샘플을 만들 때 그렇게 해야 할 거라네.”

“그러면 이 실험장치는 샘플을 대상으로 어떻게 측정하고, 결과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실험장치는 단순해 보이지만 초저주파부터 고주파까지 넓은 영역을 가지는 전파발생기기, 샘플의 미세한 신호를 잡아내는 디텍터, 디텍터로부터 수신하는 신호를 어떠한 영상 및 수치로 나타내주는 디스플레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네. 비교적 민감한 부품들이 제법 많이 갖추어져 있는 장치인 셈이지.”

“정말 그러네요.”

“여기 보이는 곳에 준비된 샘플들을 놓고서 다양한 영역의 전파들을 쏘아줄 거라네. 그러면 어떠한 특정 반응이 일어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지. 출력부 #1은 숫자로 이루어진 수치와 선형의 신호로 이루어진 그래프가 표현되도록 되어 있다네. 출력부 #2는 출력부 #1에서 표현되는 결과들이 특정 패턴이 있을 시 음성과 영상으로 표현되도록 되어있고. 일단 실험을 시작해봐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각기 다른 물질들로부터 어떠한 연결성을 나타내는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네. 혹시 샘플 간의 연결성을 넘어서는 다른 연결성의 증거가 나오면 더욱 좋고. 뭐 시공간을 뛰어넘는 그런 것 말일세.”

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대니얼 킴 박사는 한 동안 말없니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미동도 없이 말이다. 그러한 대니얼 킴 박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약간의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봐하이트 프로젝트를 통해서 내가 기대하는 결과가 다소 허무맹랑하다고 그가 생각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말이다. 마지막 말은 삼갈 것을 그랬다. 내뱉은 말은 엎질러진 물처럼 담을 수 없는 법. 흥분하거나 긴장을 하면 담아둔 말이 죄다 나오는 이 버릇도 좀 고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버릇이 쉽게 고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약 10여 초가 넘는 시간이 십여 분처럼 느껴진다.

“와. 샘플 간의 연결성을 넘어서는 다른 연결성이라. 시공간을 뛰어넘는 그런 것 말이죠. 그게 가능할까요? 하지만 정말 그런 결과가 나오면 좋겠네요. 만일 그러한 결과가 나온다면 전 세계인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을 거예요. 그렇죠, 교수님?”

“그러한 결과가 나온다면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

“지금까지 인류가 믿어오면서 유지해온 종교, 윤리, 사상 등의 기반을 허물어트릴 것이라 생각되네요. 그러한 결과만 나온다면 엄청난 변화가 시작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어찌 생각해보면 이 프로젝트 엄청나면서도 위험한 연구네요. 하지만 시도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게 되네요. 프로젝트에서 저의 역할도 그려지고요.”

“그렇게 말해주니 너무나 고맙네, 대니얼 킴 박사.”

“별 말씀을요. 일단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저는 샘플을 담당하면서 재원이와 샘플에 적합한 전파를 찾도록 할게요. 교수님은 당연히 프로젝트 총괄을 하시면서 분석되어 나오는 결과들을 저와 재원이와 함께 해석해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괜찮으시죠?”

“벌써 업무분장까지 끝내버렸구먼. 하하하. 나는 아까 자네가 잠시 침묵했을 때 사실 조마조마 했다네.”

“아니, 왜요?”

“내가 과학을 빌미로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한다고 여길까봐서 말이네.”

“에이. 교수님, 제가 그럴 리가 있나요. 그런데 시공간을 뛰어넘는다는 말을 하셨을 때는 사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잠시 들기는 했었어요. 하하하”

그렇게 우리는 대화를 모두 마치고 실험실을 나왔다. 잠시 동안 실험실에서 있으려 했지만 그래도 30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대니얼 킴 박사는 오후에 삼청동 어딘가에 들려볼 곳이 있다며 실험실을 나온 후 내게 인사를 하고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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