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하이트 프로젝트 #6~8

by 작가C

#6

나는 봐하이트 프로젝트가 인간을 비롯한 우주의 모든 존재들의 연결성을 증명해주리라 믿는다. 종교인들의 교조주의적 신념, 시오니즘 등으로 표출되는 민족주의, 홀로코스트나 마루타와 같은 극단적 인종차별, 비인간 생명체들에 대한 학대와 학살 등 ‘나와는 다르다’는 인류의 그릇된 믿음이 이 프로젝트에 의해서 무너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로부터 기인할 역기능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그 결과의 잘못된 해석으로 인류 믿음의 부재, 가치의 상실, 극단적 허무주의 또는 염세주의가 곳곳에서 우후죽순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자의적인 죽음이 정당화 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근래에 흥미롭게 시청한 영화 한 편이 있다. <디스커버리>라는 제목의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내용인 즉 이러하다.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사후세계 연구의 권위자이기도 한 토마스 하버는 사후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혀낸다. 그 연구를 위해서 그는 죽은 사람의 뇌를 실험장치에 연결하여 뇌에 기록된 기억들과 영혼이 사후 존재하는 곳의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한다. 여기서 죽은 사람의 뇌는 일종의 메모리이자 매개체로서 역할을 한다. 토마스 하버가 사후세계에 대한 존재를 입증하면서 현 세상에서의 삶에 실증과 환멸을 느꼈던 사람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자살은 사회 전반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세상의 혼란을 초래하고 만다. 다른 세상에서 다른 버전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티켓이 사람들에게 주어짐으로써 생명에 대한 가치가 무너져 버리는 상황이 연출된다.

어느 철학자는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언제 어떻게 자신이 죽을지 모르게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어느 종교인은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자신이 사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말 지옥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어떠한 삶을 살아야 지옥에 가지 않지? 이와 같은 사후세계에 대한 미지(未知)가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라는 말을 했다. 카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믿음이 있다. 자살을 하는 자는 절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된다고.

만일 죽음이 사후세계로 가는 시작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 사람들은 어떠한 행동을 할까? 현 세계에서의 죽음이 그냥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또 그 이후의 사후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 세상에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 단지 죽음은 우주의 일부들이 순환하는 과정일 뿐이고, 그 과정에서 기억들이 제한적으로 공유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인류는 어떠한 삶의 가치를 가지게 될까?

충분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 하나는 영화 <디스커버리>에서 보여준 연쇄적 자살과 생명가치의 부재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봐하이트 프로젝트에 기대하는 바가 큰 반면에 우려하는 바도 적지 않다.


#7

봐하이트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 동안 대니얼 킴 박사가 적당한 샘플들을 찾아주어 두 번의 실험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던 결과는 얻을 수 없었다.

“샘플을 조금 더 다양하게 구하면 좋겠는 데, 쉽지가 않네요. 교수님, 혹시 생각하고 있는 샘플이 있으신가요?”

“그러게. 나 역시 현재로서는 원하는 결과가 나올 샘플이 무엇인지, 또 그러한 샘플이 있다 할지라도 구할 수 있을는지 잘 모르겠네.”

“하긴 쉬운 일이 아니죠.”

“재원이는?”

“박사님, 저 역시 마찬가지죠. 지금까지 샘플들도 쉽지 않게 구했잖아요. 그런데 이런 생각은 드네요.”

“어떤 생각?”

“음……. 아니에요. 괜한 소리일 것 같네요.”

“재원아, 뭘 그리 뜸을 들여. 한 번 말해봐.”

재원이는 바로 말을 잇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 몇 초, 아니 십여 초 정도였다. 나와 대니얼 킴 박사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으니, 마지못해 재원이는 입을 열었다.

“사람 샘플을 생각했었어요. 영안실 같은 곳에서 아직 부패가 진행되지 않은 시체의 일부와 그 가족의 혈액 또는 머리카락 등을 샘플로 사용하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해서요. 저희 프로젝트가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역시 인간의 연결성이고요. 하지만 무리겠죠?”

나와 대니얼 킴 박사는 순간 메두사의 모습을 본 직후 석상이 되는 것처럼 굳어버렸다. 우리의 모습을 본 재원이도 말을 잇지 못했다. 째각째각하는 벽시계의 초침소리만이 순간 정적이 흐르는 사무실을 채웠다. 잠시 후 나는 입을 무겁게 열었다.

“시체라니, 섬뜩한 샘플이구만. 예전 막연하게 머릿속으로만 생각을 나도 해보기는 했었지. 그런데 누군가 직접 그 샘플을 언급하니 소름이 돋는구먼.”

“그러게요. 저도 순간 재원이의 말이 뭐라 말을 이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사람과 관련된 샘플은 권리자의 동의를 얻기도 쉽지 않고, 윤리적인 문제도 있으니까요.”

“그렇지, 킴 박사. 의대라면 해부용 실습 시신이 기증되기도 하지만, 그 외의 연구자들이 시신을 기증받기가 어렵지.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재원이는 나와 대니얼 킴 박사의 답변을 듣고는 머쓱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름 고민을 한 결과로서 제시한 샘플이었을 텐데, 나와 대니얼 킴 박사가 너무 재원이를 위축되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 역시 그러한 샘플을 구하면 좋겠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할뿐더러 소름끼치지 않는 샘플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그러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머릿속에 ‘사람의 시신을 샘플로 쓰는 것은 어떨까?’라는 재원이의 목소리가 맴돈다. 한동안 이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맴돌 것 같다.


#8

2018년 5월 14일, 내 사무실에서 대니얼 킴 박사와 재원이와 샘플에 대한 논의를 한지 벌써 네 달이 지났다. 재원이가 제안했던 것처럼 사람 시신을 샘플로 구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원하는 성과가 나오리라 판단한 샘플들을 구해서 실험을 수차례 진행했다. 물론 오늘도 또 다른 샘플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성과는 쉽게 얻어지지 않고 있다. 하긴 애초 이 프로젝트가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용 가능한 연구비가 벌써 거의 다 고갈이 되어 단 2~3차례의 실험을 진행하고 나면 더 이상 실험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앞으로 2~3차례의 실험에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현재의 연구 진행상황으로 봤을 때 그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봐하이트 프로젝트는 여느 프로젝트들처럼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래도 이 프로젝트를 현재와 같이 수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의 문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인건비는 현재 재직하고 있는 세계대학교로부터 매월 급여가 나오고 있고, 재원이의 인건비는 과학기술부로부터 융합과학인재 양성사업 과제가 있어 거기서 충당하고 있다. 대니얼 킴 박사의 경우도 자신이 수주한 과제에서 인건비가 해결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여느 프로젝트들도 그렇듯이 어떠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에는 인건비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연구용 기자재, 재료비, 기타 비품 및 소모품을 구입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필요하다. 다행히 그 비용들도 이곳 학교에서 기초연구 지원을 위해 지급하는 연 5천만 원 정도의 연구비와 내 급여의 30%를 출연해서 충당하고 있다. 특히 학교에서 지원하는 기초연구비용은 연구주제의 정함이 없어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연구비의 잔액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샘플을 확보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애초 내 예상보다 꽤 컸기 때문이다. 만일 현재의 연구비 잔액까지 고갈이 된다면 더 이상 봐하이트 프로젝트는 진행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연구비 앵벌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 온 것이다.

하! 깊은 한숨만 나온다. 내게 타임머신이 있다면 중세 시대의 이태리로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바로 메디치 가문을 찾아갈 것이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처럼 말이다.

갈릴레오의 유명한 일화가 하나 생각난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그러니까 약 1610년대에 갈릴레오는 자신이 고안한 망원경을 통해 목성의 위성 4개를 발견했다. 그 4개의 위성들을 발견하고서 갈릴레오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메디치 가문의 이름을 따 ‘메디치 별’이라고 칭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명확했다. 바로 메디치 가문의 궁정학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당시 메디치 가문은 지금의 이태리 지역에 존재했었던 피렌체공화국에서 가장 유력하고 영향력이 높았던 가문이었다. 어쩌면 공화국의 실제 통치가문이었다고 표현하더라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메디치 가문은 여러 분야의 학문들과 예술을 후원하고 장려하면서 르네상스 시대가 피렌체에서 열리는 데 매우 큰 기여를 했었다. 그만큼 정치적 영향력뿐 아니라 막대한 부도 축적한 가문이었다. 그래서 메디치 가문의 궁정학자가 되면 여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학문 활동을 할 수가 있었다. 갈릴레오 역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신의 학문 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넉넉한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에 대해서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매사 진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구자라면, 학자라면 분명 그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나저나 어디로 찾아가봐야 할까? 어디로 가야 부족한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을까?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된다. 그래도 이렇게 상황을 한탄만 할 수는 없는 법. 해결방법을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대니얼 킴 박사와 재원이에게 지금의 이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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