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박사님, 오늘은 조금 일찍 왔어요.”
“아직 오전 8시도 안 되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오늘은 박사님과의 대화가 조금 길어질 것 같아서요. 그리고 다녀올 곳도 있고요.”
“다녀올 곳이요? 어디로 가나요?”
“그건 제가 박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알려드릴게요.”
“알겠어요. 그런데 오늘은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눌 건가요? 저는”
내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연희는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오늘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눌 거예요. 박사님께서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잖아요. 그렇죠?”
“네.”
연희는 내가 말하려던 주제를 그렇게 먼저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 나와 이 주제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해왔을 것이다. 벌써부터 많은 기대가 된다.
“저는 오늘 박사님과 대화를 하면서 인간에만 국한하지 않을 거예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질에 대해서 대화할 것이랍니다. 그리고 지금 박사님이 존재하는 이 우주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드릴 거예요.”
“정말인가요? 벌써부터 많은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연희 씨는 그 모든 것들을 알고 있나요? 제게는 그렇게 들리는군요.”
“저 역시 모든 것들을 알고 있지는 못하답니다. 완벽하게는 더욱이 그렇죠. 그러나 박사님께서 알고 싶어 하는, 또 박사님께서 알아야 하는 것들은 충분하게 이야기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시작해 볼까요?”
#7
“우선, 제가 박사님께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게 뭐죠?”
“박사님이 현재 가지고 있는 ‘존재하는 것들의, 우주의 본질’에 대한 생각은 옳다는 것입니다. 박사님께서는 몇 년 동안 수행한 연구들을 통해 ‘소립자 수준에서 물질은 서로 공유되는 어떠한 반응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셨죠? 그리고 끈이론을 접하면서 생각을 보다 구체화 했고요. 아직, 가설에 불과한 수준이지만요. 제가 거듭해서 말하지만, 박사님의 ‘우주와 모든 존재들은 단일한 에너지로 존재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서로 공유되는 관계다.’라는 가설은 옳습니다. 향후 미래에 입증도 될 것이랍니다. 본질을 너무도 정확하게 파악하신 거예요.”
“정말인가요?”
“네.”
“다행이네요. 그리고 기쁘네요. 저는 제 생각이 제 생전에 입증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그 가설이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세간의 비웃음을 사지는 않을까 매사 걱정했답니다.”
“그런 걱정은 이제 떨치세요. 그리고 박사님께 질문을 하나 할게요. 박사님 본인, 즉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세요?”
“거시적으로 보면 눈, 뼈, 근육, 뇌, 심장 등과 같은 다수의 기관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들을 미시적으로 보면 궁극에는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인간은 원자들의 집합체이죠. 원자 단위에서 인간이나, 동물, 식물, 하물며 돌이나 철 등의 무기물들까지 지구의 모든 것들은 구분이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구분 없이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로서 탄소를 생각해 보도록 하죠. 많은 인간들은 탄소가 나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탄소가 나의 일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죠. 그러나 탄소는 박테리아에 의해서든, 식물의 광합성에 의해서든, 나의 직접적인 호흡(들숨) 및 섭취에 의해서든, 탄소는 나를 구성하는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내가 배설을 하거나, 호흡(날숨)을 하거나, 사후에 부패된다면 탄소는 다시 내가 아닌 별개가 됩니다. 인간과 탄소 사이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들은 모든 생명들과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가 별개가 되었다가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지구는 우주와 같은 관계를 가지지요.”
“정말 좋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네요.”
“별말씀을요. 저 이래봬도 과학자랍니다. 하하하. 연희 씨, 제가 말을 조금 더 이어갈게요.”
“네, 그러세요. 본의 아니게 제가 말을 끊었네요.”
“아닙니다. 그럼, 이어갈게요. 제가 조금 더 생각을 한 것이 있습니다. 제가 나노 단위에서 물질을 합성하고 분석을 하면서 정립한 가설이지요. 전자 정도의 크기를 가지는 무엇, 어쩌면 그보다 더 작은 무엇은 인간이 인지할 수는 없지만, 에너지의 형태든, 매우 극도로 작은 소립자의 형태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관계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아까 제 몸의 일부가 되기 이전의 탄소와 제 몸의 일부가 된 이후의 탄소는 분명 같지만 다릅니다. 화학구조적인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탄소의 본질은 변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고유의 에너지 변화가 바로 대표적이죠. 각 물질들의 원소분석을 수행해보면 분명 그렇게 확인됩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을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 봤어요. ‘사랑, 텔레파시, 전생에 대한 기억, 감정의 공유 등은 그 현상 때문에 일어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까지요. 그러다가 저는 물리학계에서 최근 부각되고 있는 ‘끈이론(String Theory)’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근원물질은 입자가 아닌 진동하는 1차원 끈이다.’ 이 가정에서부터 시작하는 이론이지요. 물리학계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보어 등에 의해 정립된 ‘양자역학’을 통합하여 하나의 통일된 이론으로 우리 우주를 완벽하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끈이론은 그 통합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이론으로 여겨지고 있지요. 하지만 저는 끈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우주와 모든 존재들의 본질을 규명하는 데 적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끈이론은 그동안 제가 고민했던 가설을 더욱 체계화하는 이론이라 믿게 되었죠. 결국, 다르게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 되니까요.”
“네, 맞아요. 이 우주가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이해하면 박사님의 이야기가 왜 맞는지 알 수 있답니다. 제가 속한 우주는 박사님이 속한 우주와 다른 우주이고, 다른 물리법칙들이 적용되기 때문에 박사님이 속한 우주를 대상으로 이야기 할게요.”
“다른 우주라고요? 다중우주 또는 평행우주를 말하는 건가요?”
“그렇답니다. 저는 다중우주에 속해 있어요. 평행우주는 상대성이론에 의해 설명되는 우주죠. 엄밀히 말하자면, 평행우주는 다른 우주라기보다 시공간의 차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우주입니다. 박사님이 속한 우주에서 적용되고 물리법칙들은 평행우주에도 적용됩니다. 차우준 박사님은 이 우주뿐만 아니라 평행우주에도 존재하지요. 그러나 박사님의 지위나 행동, 성격, 건강상태, 신분 등은 이곳과 다릅니다. 각 평행우주에서 살아가는 차우준 박사님의 매 순간 선택들이 이곳과는 다르기 때문이죠. 다중우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우주를 말합니다. 이 우주나 평행우주에서 적용되는 물리법칙들은 제가 속한 우주에서 적용되지 않습니다. 다중우주는 정말 많이 존재합니다. 어쩌면 무한대의 다중우주들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부분은 제가 잘 모른답니다. 그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상당히 많은 다중우주들이 생겨나고 없어지기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다중우주들 중 한 곳에서 왔을 뿐입니다. 참, 지구의 물리학자들이 주장하는 평행우주와 다중우주의 개념과 제가 설명한 개념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그 우주들을 직접 접해보지 않았으니까요. 단지 수학적으로 입증된 그 우주들의 개념을 인식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설명한 평행우주와 다중우주의 개념이 박사님께는 더욱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평행우주와 다중우주가 실제로 존재하는 우주라니……. 그리고 연희 씨가 다중우주에서 온 존재라니 더욱 놀랍습니다. 솔직히 걱정이 되네요. 연희 씨의 앞으로 이야기를 제가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요.”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박사님은 분명히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실 테니까요. 미래에 박사님은 이 모든 것들을 토대로 정말 위대한 사상을 집대성하거든요.”
“네.”
“이 우주는 ‘빅뱅(Big Bang)’이라 불리는 대폭발로부터 탄생되었습니다. 빅뱅은 137억 년 전에 일어났지요. 빅뱅이 일어나기 이전의 이 우주는 엄청나게 높은 밀도를 가지는 하나의 거대 점이었답니다. 지구의 천문학자들이 밝혀낸 블랙홀과 유사한 상태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나 크기는 더욱 컸고, 밀도는 더욱 높았습니다. 그렇게 그 상태로 존재하다가 137억 년 전 중력·밀도의 한계를 버티지 못하고 폭발했습니다. 그 이후로 이 우주는 지속적인 팽창을 하고 있습니다. 빅뱅이 일어나기 이전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들은 에너지와 같은 하나의 무엇으로만 존재했습니다.”
“혹시 ‘코스믹플라즈마’를 말하는 것인가요?”
“지구의 물리학자들은 그리 부르더군요. 무엇이라 불려도 상관없습니다. 그 에너지, 코스믹플라즈마는 빅뱅 이후 급격하게 공간이 팽창하고 밀도와 온도가 낮아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들과 물질들로 만들어졌습니다. 힉스입자, 원자, 중력자, 광자, 원소 등으로 말이지요. 수소는 이 우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원소입니다. 수소들은 서로 중력에 의해 충돌했고 핵융합을 일으켜 많은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며 헬륨 원소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반응들은 계속되면서 또 진화하면서 여러 물질들을 만들어냈어요. 현재 주기율표상의 모든 원소들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행성과 항성, 위성, 은하단 등 역시 동일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다만 그 탄생과정이 복잡하고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는 차이점만이 있을 뿐이죠. 이 우주와 모든 것들은 하나의 재료로부터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인간이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에너지와 물질들도 있습니다.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이것들도 코스믹플라즈마로부터 만들어졌습니다. 지구에서는 이 에너지와 물질을 확인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을 쏟고 있지요? 당분간은 어려울 것입니다. 현재 인간들의 인식수준을 뛰어넘어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 외에 *&%포스, $$$포스, @@#입자도 아직 인간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인류가 앞으로도 파악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우주의 차원을 넘어서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인간이 그 차원을 넘어설 수 있나요?”
“저와 같은 존재의 도움을 받는다면 일시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와 정신으로는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없을 거예요.”
“연희 씨와 같은 존재들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저희는 다른 차원을 가지고 있답니다. 다르다고 말하기보다 더욱 높은 차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네요. 지구의 물리학자들은 이 우주의 차원을 ‘M이론(M Theory)’에 의해 11차원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관점에 따라서 조금 달라질 수는 있지만, 그들의 주장은 거의 정확합니다. 그러나 제가 속한 우주는 30차원을 가지고 있답니다. 이 우주는 시간이 한 방향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3차원이 기본차원이지만, 제가 속한 곳에서는 기본차원이 7차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지금 제가 박사님 곁에 있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제가 속한 곳은 이곳으로부터 약 7백광 년 떨어진 곳이거든요.”
“첫날 저를 마광수 교수가 있던 곳으로 데려갔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동하나요? 혹시 그렇다면, 연희 씨의 의식은 양자단위의 에너지로 전환하여 이동하는 건가요? 양자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무의미하고 확률적 동시성을 가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류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7차원을 기본차원으로 생활하는 연희 씨는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되네요. 그렇죠?”
“맞아요. 그래서 과거 인간들은 저와 같은 존재를 만날 때 두려워했었고 경외했었습니다. 저를 신이라 부르던 인간들도 있었죠. 저는 그 상황들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도움만 주고 급하게 그들을 떠났었죠. 그들은 저를 신으로 여기고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당시 제가 도움을 주었던 인간들은 ‘괴베클리 테페’와 ‘마야’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저를 표현한 모습은 다양합니다. 제가 박사님에게 온 것처럼 에너지의 형태로 그들에게 찾아갔었던 탓이죠. 그들은 저를 보고 싶었던 모습대로 보았던 셈이죠. 빛의 모습으로,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거대한 인간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랬을 수 있겠네요.”
“네, 그들은 지금의 인류와 달랐으니까요.”
“너무도 흥미롭습니다. 궁금증들이 계속해서 생길 정도로요. 그러다 보니 연희 씨의 이야기를 미안하게도 끊게 되네요. 이야기를 계속해주세요.”
“어디까지 이야기 했었죠? 음……, 맞다. 우주 최초의 물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죠. 거기부터 이어갈게요.”
“네.”
“이 우주의 근원물질은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어요. 빅뱅 이전에는 말이죠. 빅뱅 이후 이 우주에는 거시세계가 형성되면서 다양한 에너지들과 물질들이 만들어졌지만, 그것들의 근원물질은 같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주와 모든 것들의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 우주의 근본물질(혹은 형태를 가지는 에너지)로 제시되고 있는 초끈은 빅뱅 이전의 코스믹플라즈마와 매우 많이 닮았습니다. 초끈은 우주와 모든 존재들이 코스믹플라즈마라는 동일한 재료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증거입니다. 결국 우주와 모든 존재들은 본질이 같다는 의미입니다. 현재의 모든 만물과 에너지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서로 다르지만 초초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공유하기를 반복하며 ‘생멸(utpāda-bhaṅga)’하는 존재들인 셈이죠. 우주라는 틀 안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주라는 틀 안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말은 불가에서의 가르침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원전 6세기 경 고타마 싯다르타가 구한 깨달음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우주와 존재들의 본질에 대해서 대부분 이해하고 있었죠. 저희의 도움이 없이도 말이죠. 그래서 그 당시 제가 속한 우주의 구성원들은 모두 적지 않게 놀랐었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붓다가 된 이후 저희 우주로 건너와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우주의 난제들을 해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