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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과의 만남 #3~5

by 작가C

#3

여자의 손을 잡고서 나는 용문사의 내 처소로 돌아왔다.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여자는 귀신도 아니고, 내가 무언가에 홀리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여자가 내 앞에 있음을 보는 데도 현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 내게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지금은 어떠세요?”

“무엇이 어떻다는 거죠?”

“저 말이에요. 제가 아직도 귀신같아요? 이 상황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으세요? 꿈처럼 느껴지세요?”

“그런 건 아닌데……. 솔직히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가 잘 안되기는 하네요. 당신이 내게 와서 왜 이러는지도 잘 이해가 안가고요.”

“박사님을 이해시키려 하지는 않을게요. 차츰 이해하시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저의 존재를 이해시키는 것이 제가 박사님을 찾아온 이유도 아니고요. 저는 다만 박사님의 자살을 막고, 앞으로 미래를 위해 박사님이 하실 일을 도와드리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니까요. 물론 며칠 정도의 당분간일 테지만요.”

“며칠 정도요? 저와 이 처소에서 같이 지내려고요?”

“아니요. 당분간 매일 이곳으로 찾아올 거예요.”

“아, 네. 그런데 혹시 이름이 무엇인가요?”

“제가 속한 곳에서는 이름을 가지지 않아요. 이름이 없어도 서로를 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박사님이 부를 이름이 필요하겠죠? 음. ‘연희’라고 불러주세요. 박사님께 익숙한 이름이죠? 박사님의 대학생 시절 짝사랑 했던 여자의 이름이니까요. 호호호.”

“아니, 그건 어떻게……. 흠. 일단은 그렇게 하죠. 연희 씨라고 부르도록 할게요. 그런데 연희 씨, 제가 왜 필요하다는 겁니까? 그것도 인류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말이죠. 저는 한국 사회 어디에서도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는 사람이고요. 제가 부족하거나 모자라다는 말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는 학맥, 인맥, 빽이 없으며, 변변한 일자리를 얻어 밥 먹고 사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저 같은 사람이 능력과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언젠가는 쓰일 곳이 있겠지, 그리고 빛을 발하는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지난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말이죠.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누구하나 봐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이러한 제가 어떻게 인류와 세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겁니까?”

“아니요. 분명히 박사님은 그렇게 되세요. 지금은 너무도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답니다. 저는 박사님의 그 모든 상황들을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자살을 하고자 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시면 안 돼요. 박사님은 자살을 하면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돼요.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세요. 박사님은 앞으로 20년 후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사상가가 된답니다. 그리고 인류와 세계에 큰 공헌을 하실 거예요. 현재까지 몇 권 팔리지 않은 도서 「우리의 일자리는 어디에 있는가?」는 앞으로 5년 후 각광을 받는 답니다. 5년 후 한국의 경제상황은 더욱 나빠질 거예요. 그때 한 유력정치인이 우연치 않게 박사님의 이 책을 보게 되고, 책의 내용들을 직접 경제정책에 적용하면서 한국의 경제가 좋아지게 되요. 더불어 박사님의 이 책은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가 된답니다. 박사님은 각종 경제관련 모임에 초청을 받게 되고요. 「촉매와 환경기술」 역시 5년 후 국내 유수의 대학교들에서 전공교재로 채택이 되요. 지난달에 집필을 마치신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교양서가 있으시죠? 그 책은 7년 후 여러 언어들로 번역이 되어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읽히게 되고, 세계인들의 생각과 행동을 친지구환경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한답니다. 즉,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에요. 지금 박사님은 다소 모호한 개념 정도만 가지고 있는 가설이 있으시죠? 우주와 존재들의 본질에 대한 것 말입니다. 저의 도움을 받아 미래에 그 가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저서로서 세계에 발표될 때, 인류의 종교, 과학, 철학, 윤리 등이 큰 틀에서 통합되고, 영구적인 인류의 평화와 공존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답니다. 박사님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 된답니다.”

“제가요? 정말로요?”

“네, 그렇답니다.”

“아직 제게 일어난 일들이 아니니 믿을 수는 없지만, 연희 씨의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 미래까지 살아서 제 모습을 확인해보고 싶네요.”

“당연히 그러셔야 해요. 그게 제가 박사님을 찾은 이유니까요.”

나는 연희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이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20년 후 내가 전 세계로부터 존경을 받는 위대한 사상가가 된다니!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자살을 하고자 하는 마음은 흐릿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벌써 해가 저물고 있다. 새가 울기 시작한다. 밤이면 울기 시작하는 새가 울기 시작한다. 연희는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며 내 앞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4

아침이 밝았다. 솔직히 어제는 연희에 대한 생각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연희는 오늘도 정말 나를 찾아올까?’라는 생각과 ‘아무래도 내가 미쳐가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러한 생각들이 밤새 나를 잠 못 이루게 했다. 그러나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나의 미래가 너무도 궁금해 졌다. 연희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의 미래는 너무도 의미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꼭 살아야만 하는 삶이지 않은가! 오늘은 연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생기고 있다. 연희가 너무 많이 기다려진다.

“처사님, 누굴 찾으십니까?”

처소의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던 내 모습이 스님에게는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 듯하다. “아니요, 스님.”이라고 답변을 하고 싶었지만, 어젯밤 나를 찾았던 연희의 정체가 궁금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님께 물어보았다.

“스님, 혹시 이 절에 20대 여성이 거처하고 있습니까?”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요?”

“다름 아니라, 제가 어제 저녁에 그런 여성을 본 것 같아서요.”

“어디서 보셨나요? 저희 사찰에는 주지스님과 저, 학예연구사 말고는 상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처사님도 아시다시피 모두 남자이지요. 이곳에 오신 첫날 그분들과 인사하시지 않았습니까. 여자는 공양주보살님이 있지만, 출퇴근을 하시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저녁에 사찰에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공양주보살님은 어제 역시 오후 6시 이전에 퇴근했지요.”

“아, 네.”

스님은 나를 보며 고개를 다소 갸우뚱 했다. 나는 스님에게 꿈에서 본 여자가 너무 생생해서 직접 본 것으로 착각한 것 같다고 둘러댔다. 그랬더니 스님은 내게 “이곳에 머무르시는 잠시 동안에도 속세의 욕정이 잊히지 않으시나 봅니다.”라고 말하고는 법당을 향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계는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다.


#5

“박사님, 잠을 못 주무셔서 피곤하시죠?”

연희는 어느새 내 처소에 와서 내게 말을 걸고 있다. 그런데 내가 밤새 한숨도 잠을 못잔 것은 어떻게 안 걸까? 혹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혹시 저를 어디서 지켜보고 있었나요? 잠을 못 잔 것은 어떻게 알죠?”

“아니요. 제가 박사님을 밤새 지켜볼 것 같았으면 처소에 함께 있었겠죠. 그러나 저는 알 수 있답니다. 뭐라고 설명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으나, 일단은 에너지의 감지라고 해두죠.”

“그래요.”

“오늘부터는 박사님께 필요한 내용들, 아니 박사님께서 궁금해 하시던 내용들을 보여드리고 알려드릴 거예요. 그래야 미래에 발표하실 박사님의 이론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자, 그러면 무엇부터 시작할까요?”

“갑자기 물어보니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그러면 ‘행복’에 대해서 시작할까요? 박사님께서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고민을 했음에도 명쾌하게 답을 찾지 못했던 주제잖아요.”

“행복이요?”

“네, 행복이요.”

“그래요. 좋습니다.”

“박사님은 행복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행복을 어떻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이네요. 제가 답을 찾지 못했던 문제들입니다. 행복은 주관적 감정이 많이 개입되기 때문이죠.”

“주관적인 감정이라. 좋아요. 그렇다면 감정이란 무엇인가요?”

“감정이란, 음……. 사람이 가지는 일종의 마음이나 기분이지요.”

“맞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을 해보면 에너지라고 말할 수 있어요. 행복은 에너지입니다. 행복은 에너지에 의해서 느껴지고 얻어지는 거예요.”

“에너지요? 행복에너지? 뭐 그런 것을 말하는 건가요?”

“호호호. 아니요. 박사님이 익히 알고 계시는 에너지에요. 전기화학적 에너지, 물질이 가지는 에너지, 바로 이런 에너지요.”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인간의 사고활동, 감정, 판단 등은 모두 인간 뇌의 전기화학 반응들에 의한 현상들이죠.”

“네, 맞아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은 행복을 나름의 방식대로 느낀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같아요. 각 감각기관에 의해서 자극을 받고, 그 자극이 뇌까지 전달이 되면, 비로소 느끼거나 생각하게 되죠. 이때, 느끼거나 생각하게 되기 위해서는 뇌에서 여러 전달물질들 또는 전달체계들에 의해서 전기화학 반응이 일어나야 하죠. 행복은 이러한 전기화학 반응의 결과들 중 하나랍니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행복을 에너지라고 단정할 수 있나요?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화학 반응은 에너지의 한 형태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 감각기관에서 받아들이는 자극들은 에너지라고 보기 어려워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러나 미시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세요. 인간의 오감기관이라 불리는 감각기관들은 일종의 센서들입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것들이 바로 오감이죠. 오감기관은 이 오감을 감지하는 센서들입니다. 시각은 빛을 감지함으로써 느끼게 됩니다. 빛은 광자의 집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광자는 입자라는 개념이지만, 일종의 입자 형태를 가지는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즉, 시각은 빛의 형태를 가지는 에너지를 인간의 감각기관이 받아들이면서, 인체 내 여러 전달체계들을 통해 에너지 전환 및 호환과정을 거치면서 인지하게 되는 결과이죠. 그래서 내가 지금 어떠한 아름다운 형상을 보고서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면, 빛의 형태로 받아들인 에너지가 나를 구성하는 에너지와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청각은 소리라는 진동형태의 에너지를 통해서, 미각은 화학적 반응의 에너지를 통해서, 촉각은 전자기력을 통해서 이루어지죠. 즉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고 생각하고 있다면, 나의 에너지와 외부의 어떠한 에너지가 어떠한 반응들을 긴밀하게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연희의 말은 매우 그럴 듯 하고 논리적이다. 또한 일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연희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다. 대신, 질문이 떠오른다.

“행복을 느끼는 보편적이고 공통된 에너지는 없나요? 인간들이 행복을 느끼는 조건은 너무도 다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예전에 제가 수단 지역에서 어부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매우 척박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죠. 현대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물고기를 잡으러 나일강으로 갈 때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 나일강은 신이 자신들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어요. 나일강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자신들은 신으로부터 축복받았고, 그 사실은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말했죠. 반면에 많은 한국인들을 보세요. 나일강의 어부들보다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고, 생존에 대한 어려움이 없이 살아가고 있어요. 또한 발달된 과학기술로 많은 편의들도 제공받고 있어요. 그런데도 많은 한국인들은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소유하고 싶었던 물건을 소유하면서 등으로 단기적 행복인 즐거움을 느끼기는 하지만, 본질적인 행복을 느끼고 있지 못하죠. 행복이 에너지라면, 나일강의 어부들이나 한국인들이나 동일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에너지가 존재해야 하지 않나요? 인간들은 생물학적으로 다르지 않으니까요.”

“박사님, 예로 들었던 나일강의 어부들과 한국인들의 행복을 느끼는 에너지가 서로 다르게 보였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같답니다. 다만, 현상으로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감각기관의 문제 때문이에요. 인간을 기계로 생각한다면, 센서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가 동일한 행복의 에너지를 받고 있음에도 많이 행복하거나, 약간 행복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도록 하지요. 가스누출감지기를 예로 들어보죠. 가스누출감지기의 알람소리는 행복이라고 가정하죠. 가스누출감지기의 가스감지센서는 여러 단계로 조정이 가능합니다. 일단, 2단계로 설정할게요. 가스가 2단계 정도로 누출이 되어야 감지가 되고 알람이 울리겠죠? 이제, 6단계로 설정할게요. 지금부터는 가스가 6단계가 되어야만 알람이 울리게 됩니다. 그렇겠죠? 인간도 만찬가지 입니다. 결국 행복과 행복을 느끼도록 하는 에너지, 그 자체가 다른 것이 아니라 감각기관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르게 보일 뿐입니다. 다른 생명체들도 마찬가지고요. 자신들이 기본적으로 타고나는 센서의 차이, 그리고 살아가면서 변화되는 센서의 차이가 있을 뿐이에요. 행복이나 행복을 느끼도록 하는 에너지는 본질적으로 변하거나 다르지 않답니다.”

“아, …….”

“이제 이해가 좀 가시죠?”

“어렵네요. 그러나 이해는 됩니다.”

“한국에는 존경받던 수행자들이 많이 있었죠. 물론 지금도 그러한 분들이 있지만요. 그분들의 종교적 배경이라든지, 사상적 환경이라든지, 개인적 성향이라든지, 이러한 것들은 일단 배제하고 그들의 행위만을 의미부여 없이 살펴보죠. 그러면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들은 감각이 둔화되지 않도록 노력했고, 둔화되고 무뎌진 감각을 다시 회복시키려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 노력들 끝에 그들은 아주 작은 에너지에도 행복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답니다. 하물며 숨을 쉬는 그 평범한 순간에도 말이죠. 내가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서 행복을 느끼는 경지에 도달한 것입니다. 아주 간혹 감각기관을 통하지 않고 행복을 느끼는 경우도 있어요. 외부의 에너지와 인간 내부의 에너지가 감각기관에서의 접촉 없이 직접 반응하는 경우죠. 일란성 쌍둥이들 사이에서, 부모와 자식들 사이에서, 아주 특수한 경우의 인간들에게서 이러한 현상이 간간이 발견된답니다. 다르다고 생각하겠지만, 염력과 텔레파시, 정신조종 등 역시 동일한 메커니즘을 가지는 현상들이죠. 중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인간들은 이러한 현상을 행하는 아주 특수한 경우의 인간들을 신이라 부르며 숭배하기도 하더군요. 현재도 그들은 초인이라 칭해지고 있죠. 사실 이러한 현상은 저와 같은 존재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랍니다. 제가 속한 곳에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들과 직접 교감하는 것은 일상이거든요.”

“네, 그렇군요.”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치죠. 그래야 박사님께서 행복에 대한 생각을 더욱 깊이 있게 확장해 갈 테니까요.”

“오늘 오간 대화가 쉽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여 생각의 정립이 필요할 것 같네요. 그래도 막혔던 부분이 뚫린 느낌입니다.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행복에 대한 개념과 생각은 오늘부로 많이 변화될 것 같네요.”

“박사님,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더 필요할까요?”

“아니요. 오늘은 이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잠을 자기 이전까지 오늘 오간 대화 내용들을 정리해야겠어요. 필요하다면 제 생각을 추가하고요.”

“네, 그러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내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연희는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연희가 오늘 내게 말해준 내용들은 이전의 내가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내용들이다. 나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벌써부터 내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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