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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과의 만남 #1~2

by 작가C

#1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 나는 이곳 용문사를 찾았었다. 용문사는 경상북도 예천군 소백산의 약 7~8부 능선에 위치한 고찰(古刹)이다. 당시 한 달 동안을 세상과 단절하고 이곳에서 지냈었다. 매일 아침 법당 8곳을 돌며 기도와 명상을 했었다. 마지막으로 가던 법당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천불전이었다. 그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 천불전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랜 시간 명상을 했었다. 용문사를 다녀온 이후로 새롭게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마음에 켜켜이 쌓여 있던 분노와 억울함, 슬픔 등을 덜어놓을 수 있었고, 비워진 마음에는 꿈과 희망, 열정 등을 채워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틀 전, 나는 용문사에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삶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내려놓고자 이곳을 찾았다. 즉, 자살할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이곳을 찾은 셈이다. 이곳에서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곳 용문사에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남길 유언장만을 작성할 것이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내가 가진 재산에 대한 상속 및 처분방식도 유언장에 남길 것이다.

나는 해변을 볼 수 있는 부산 광안리의 한 모텔에서 죽음을 맞이하려고 한다. “왜, 하필 그곳이냐?”라고 내게 질문한다면,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답변할 수밖에 없다. 그냥 내가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이유 말고 별다른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죽을 때만큼은 내가 누리고 싶은 것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2

“자살에 대한 생각은 거두세요.”

“누, 누구세요?”

“많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박사님의 가치와 능력을 세상의 사람들이 몰라주니까요. 생각만큼, 노력만큼 인생이 잘 풀리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자살은 안 됩니다. 박사님은 인류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니까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160cm 정도의 키와 아담한 체구, 매우 예쁜 얼굴을 가졌다. 벽에 몸을 기댄 채 않아서 눈을 지그시 감고 사념에 잠겨 있었던 나는 갑작스런 그녀의 인기척에 적지 않게 놀랐다. 방문은 분명히 잠귀여 있다. 어떻게 들어온 것일까?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고는 밖에서 문을 열수도 없거니와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내가 현재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안 것일까? 어느 누구에게도 그것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도대체 누구세요? 제 처소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고요?”

“많이 놀라셨나요? 놀라지 마세요. 두려워하실 필요도 없고요. 저는 박사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먼 우주에서 왔답니다.”

“먼 우주요? 저를 도와주시기 위해 왔다고요? 아니, 별안간 남의 처소에 들어와서 무슨 이상한 말을 하시는 거예요!”

“예상은 했습니다. 박사님께서 이러한 반응을 보이시리라고요. 뭐,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 저를 믿으시라고 강요하지는 않을게요. 저와 함께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믿어지실 테니까요. 호호호. 저는 먼 우주에서 왔어요. 박사님이 속한 이 우주가 아니라 다른 우주랍니다. 박사님은 이미 알고 있으시죠? 다중우주를 말이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한 다중우주와는 조금 다른 개념의 다중우주랍니다. 일단은 그 정도로만 알고 계세요. 저는 박사님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답니다. 오랫동안 박사님을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지구의 표현으로 박사님을 미행하거나 스토킹을 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는 인류를, 그리고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들을 여자는 한다. 너무도 혼란스럽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잠시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미치고 있는 것일까? 아, 너무도 혼란스럽다.

“당신 실제가 아니죠? 이 상황이 꿈은 아닌 것 같은 데. 당신 귀신인가요? 이곳은 깊은 산중에 위치한 사찰이니 당신은 귀신이겠네요. 다른 곳으로 가요. 괜히 내게 해코지 할 생각은 말고. 떠나요! 나는 곧 죽을 사람입니다. 그러니 다른 곳으로 가요!”

“박사님도 참! 저를 귀신으로 생각하시는 거세요? 지금 이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시는군요. 그러면 박사님이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믿도록 해드려야겠네요.”

“무엇을 하려고요! 제게 무엇을 하려는 거예요!”

“겁먹지 마세요. 그렇게 겁먹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아니, 누가 겁을 먹었다고 그래요!”

“좋아요. 그러면 제 손을 잡으세요.”

“당신의 손을 잡으라고요?”

“네. 제 손을 잡으세요. 제 손을 잡고 나시면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아시게 될 거랍니다. 제 말도 믿으실 수 있을 거고요.”

솔직히 겁이 났다. 이 여자의 손을 잡았다가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그러나 내게 위해를 가할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 일단 잡아보자. 손을 잡았다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 바로 손을 놓으면 되니까. 그렇게 위험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니까. 그래, 손을 잡아보자.

“박사님, 눈을 떠 보세요.”

“벌써 끝난 겁니까?”

“네, 다 끝났어요. 그러니 눈을 뜨셔도 되요.”

용문사가 아니다. 여자의 손을 잡았을 때 잠시 어디론가 미끄러져 가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곳으로 이동한 탓이었나 보다.

“박사님, 저 앞의 창문이 보이시죠? 그곳으로 가서 창밖을 내다보세요. 박사님께서 그리도 만나보고 싶었던 분이 계실 거예요.”

여자의 말은 이상했지만, 나는 여자의 말을 따라 창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창밖을 내다봤다. 어! 마광수 교수다. 창밖에서는 마광수 교수가 아라비아풍의 옷을 입은 여러 명의 야한 무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즐거워 보인다. 그리고 행복해 보인다.

“저분, 마광수 교수죠?”

“네, 맞아요.”

“마광수 교수는 작년에 자살을 했는데. 그러면 여기는 어디입니까? 혹시 제가 지옥에 온 것인가요?”

“아니요. 지옥은 아니에요. 하지만 인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저는 벌써 지옥에 오면 안 됩니다. 저를 다시 돌려보내 주세요!”

“걱정 마세요. 잠시 후 다시 돌아갈 거예요. 그리고 이곳은 엄밀히 말하면 지옥이 아니랍니다. 인간들이 현재 믿고 있는 종교들에서는 지옥과 천국이라는 개념이 있지요? 각 종교에 따라서 명칭은 다를 수 있지만요. 어찌되었든, 천국이나 지옥은 종교가 인간들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결속시키고 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개념들이랍니다. 결국, 천국이나 지옥은 실제로 없는 셈이지요. 이곳은 다른 시공간이랍니다. 작년에 이 지구에서 자살한 마광수 교수와 지금 앞에 보이는 마광수 교수는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이죠. 박사님은 지금 저와 양자세계를 이용해 다른 시공간으로 여행을 한 것이랍니다. 만일 이해하기가 어려우시면, 그냥 지옥에 잠시 방문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네요.”

“결국은 지옥이란 말인가요? 저는 벌써 이곳에 오면 안 됩니다. 아직 이곳으로 오기 위한 모든 정리가 끝나지 않았어요. 그러니 저를 당장 돌려보내 주세요.”

“호호호. 알겠어요. 곧 돌아갈 거예요. 참, 지금 이곳에 박사님은 의식만 왔어요. 박사님의 몸은 용문사에 있답니다. 그런데 박사님은 이곳에 와서 마광수 교수를 만나고 있는 것이 좋지 않으신가 봐요? 평소 마광수 교수를 만나보고 싶어 하셨잖아요. 그렇지 않은가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런데 의식이 몸을 빠져 나오는 것이 가능한가요? 쉽게 말하면 유체이탈인 거죠? 왜 의식만 이곳으로 온 거죠?”

“유체이탈. 지구에서는 그렇게 부르기도 하더군요.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개념입니다. 일단 인간의 몸은 일정한 부피와 질량을 가지기 때문에 시공간을 뛰어넘어야 하는 순간이동 여행을 할 수가 없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의 이론과 양자역학을 박사님께서 알고 계시다면, 그 사실은 이해할 것입니다. 그래도 간단히 설명을 드리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운동을 해야만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운동을 하려면 질량을 가지면 문제가 발생하게 되죠. 인간의 몸은 어떠한 방법을 강구하여도 질량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의식은 빛을 이루는 광자와 유사하거나 조금 더 적은 질량을 가지고 있어요. 즉,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여행이 가능하게 됩니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물질이 양자단위로 작아지게 되면 거시세계와는 다른 현상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양자얽힘 등이죠.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양자세계에서의 물질들은 확률에 의해 존재하죠.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 동시에 저곳에 존재할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저는 박사님과 이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양자세계로 진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박사님의 몸은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의식을 몸으로부터 분리하여 이곳으로 왔답니다.”

“SF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것을 지금 제가 한 셈이네요.”

“SF영화요? 호호호. 하긴 그렇겠어요. 아직 박사님의 지구에서는 쓰이지 않는 기술이니까요.”

“참, 제가 마광수 교수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어요? 한국 사람들은 흔히 마광수 교수를 좋아한다거나 존경한다고 말하면, 그 말을 한 사람을 변태로 내모는 경향이 있어 누구에게도 마광수 교수를 만나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었거든요.”

“제가 말했잖아요. 저는 박사님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고요. 현재까지 박사님의 생각과 행동들은 물론 미래의 모습들까지 알고 있답니다. 그러나 박사님이 마광수 교수를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아, 네. 그렇다면 그렇겠네요.”

“이제 다시 돌아갈까요? 제 손을 잡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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