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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일꾼 최씨 #9

by 작가C

#9

“나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요.”

“어떤 생각?”

“지금의 이 사회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이요.”

“사회가?”

“응. 그래요.”

“하긴 사회가 이 모양이니.”

“조금 더 비약해보자면 우리 모두가 살인방조자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게 무슨 말이니?”

“말 그대로에요, 살인방조자. 물론 어떤 이들은 살인교사 내지 살인의 직접적인 죄가 있겠네요.”

“그건 너무 갔다, 우준아.”

“이 사회가 자살을 부추긴다는 사실은 솔직히 부정할 수가 없잖아요. 오죽하면 헬조선, 탈조선이라는 표현이 이 시대를 반영한다고 세간의 사람들이 말을 하겠어요. 희망이라는 단어마저 이 세상에서는 철저히 소멸되었으니까요.”

“그렇기는 하다만…….”

“사회는 결국 제도권 내에서의 사람들을 의미하잖아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 그게 바로 사회잖아요. 우리는 사회라는 추상적이면서도 개념화된 허구적 실체를 쉽게 탓하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개인의 문제들로부터 비롯되어 지옥을 만든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직‧간접적인 살인죄가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네 말이 논리적이기는 하다만은 수긍하기가 쉽지는 않네.”

“그럴 거예요. 저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상은 변화를 두려워하니까요. 아니 엄두도 못 낸다는 말이 더욱 옳겠네요.”

외사촌 형은 잠시 동안 침묵했다. 나는 그 침묵을 깨지 않았다. 소주를 마시는 목 넘김 소리가 웅장하게 들리는 시간이 짧지 않게 유지되었다. 잠시 후 나는 다시 대화를 이었다.

“커뮤니티, 휴머니티, 이 용어들이 요즘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형도 들어 봤죠?”

“들어봤지. 도시계획을 하는 사람들에게 요즘 중요한 용어이기도 하잖아. 맞지?”

“맞아요. 저처럼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익숙한 용어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지방자치 구현을 위한 지역행정정책, 도시재생, 지역단위 협동조합 등 주요한 이슈들을 해결하기 위한 키워드들이 바로 커뮤니티와 휴머니티에요. 그런데 이것들의 본질이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말하면 순 껍데기뿐이에요.”

“껍데기? 결핍?”

“응. 맞아요. 껍데기뿐이고 결핍되어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말 그대로에요. 커뮤니티와 휴머니티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중심이 되고, 또 인간 사이의 관계가 전제되어 있어요. 맞죠?”

“그렇지. 사전을 찾아봐도 정의가 그렇게 기술되어 있으니까.”

“그렇죠. 최상진 씨의 죽음도 그렇고, 최근 언론을 통해서 자주 접하게 되는 자살과 고독사 등의 사건들은 정부의 정책이나 사회가 그리고 우리가 인간이 없는 커뮤니티와 휴머니티를 주장해서라고 생각해요.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이제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가 되어버렸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저희 가족만 하더라도 옆집, 위‧아랫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관심이 없죠. 설령 이웃집에서 심상치 않은 고성이나 물건이 집어던져지는 소리가 난다고 하더라도 무관심해요. 층간소음이라는 불만만 마음 속 가득히 가지고 있을 뿐 사람에 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지 않잖아요. 형도 그렇죠?”

“응.”

“조선족 오금수의 잔혹한 살인사건, 인천 여중생의 엽기적 살인사건, 대구 40대 남자의 고독사 사건 등은 모두 우리의 무관심이 빗어낸 사건들이에요. 이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언론에서, 그리고 학자들의 분석을 통해서 언급된 내용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변화된 것이 없어요. 흔히 하는 말로 그때뿐인 거예요.”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가족에게도 관심을 가지기가 어려울 만큼 팍팍하고 치열한 세상이잖아.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맞아요. 도대체 정치인들은 뭐하는 새끼들이죠? 내로라하는 좋은 머리로 고시를 보고 정책결정을 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고위직 공무원들은 뭐하는 인사들이죠? 또 학자라는 작자들은요? 너무 답답해요. 답답하고 또 답답해요. 요즘은 내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만 들어요. 이러한 세상에 적응하며 살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에요.”

나의 이 말을 끝으로 외사촌 형과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남은 술병을 비웠다. 서로를 바라보며 깊게 내쉬는 한숨은 말없이 서로의 마음을 전달했다. 시계는 10시 40분을 가리켰다. 식당 여주인은 이제 가게 마무리를 해야 하니 술자리를 매듭지어달라고 말했다. 우리는 식당 여주인의 재촉에 마지막 술잔을 비워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바라봤다. 사람들의 마음에 멍이라도 진 것처럼 검은 밤하늘의 달은 유난히 붉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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