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죽은 최상진 씨 생각을 하면 죄책감이 몰려와요. 그래서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고요.”
“우준이 네가 왜?”
“우울증으로 그가 자살을 했다지만, 내 무관심이 그의 자살을 방조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왜 그런 생각을 해.”
“경찰이 말하기로 최상진 씨는 자살하기 3개월 전에 신경정신과에서 진료를 받고 약도 타서 복용을 했데요. 그리고 1개월 전쯤에는 동료 인부인 허씨 등에게 몇 차례 ‘죽고 싶다’는 말도 했데요.”
“정말? 그런데 아무도 관심을 안 가졌던 거니?”
“맞아요. 나를 포함해서 현장 사람들이 조금만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더라면 그는 자살하지 않았을지 몰라요.”
“이미 지난 일을 어떻게 하겠니. 우준아, 잊어.”
“잊어야죠. 잊지 않으면 저만 괴로워지니까요. 그런데 쉽지가 않네요.”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죽겠다는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진심으로 듣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다 흘려듣고 말지.”
“내가 그러다 최씨를 죽게 했잖아요.”
“네가 죽게 했다니. 그건 좀 억지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져.”
“알아요.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그런 생각이 맴도네요.”
“내가 너였더라도 그랬을 거야. 그러니 그 사람 죽은 거는 그 사람 팔자려니 생각하자.”
“그래야 하는 데…….”
“요즘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니? 다 세상 탓이야. 오죽하면 사람들이 요즘을 가리켜 ‘죽지 못해 사는 세상’이라고 말하겠니.”
“그러기는 해요.”
“장례식은 다녀왔니?”
“그럼요. 다녀왔죠.”
“어땠어? 사람들은 많았니?”
“아니요. 별로 없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없었구나.”
“응, 그래요.”
“그 사람 마지막 가는 길도 쓸쓸했겠다.”
“영혼이라는 게 실제로 있다면요. 그보다 장례식을 치르기 전에 정말로 말이 아니었어요.”
“아니, 왜?”
“가족 때문에요.”
“가족? 가족이 왜?”
“장례를 치르려면 상주인 가족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렇지.”
“상주를 해야 할 가족을 찾는 데 애를 먹었어요.”
“그래? 가족이랑 연락이 안 닿았던 거야?”
“그런 셈이에요. 직계 가족과는 연락을 하지 못 했고, 겨우 사촌여동생을 찾아 연락했어요. 최씨, 그 사람 거의 외톨이였더라고요.”
“부모님이나 형제, 혹은 자신의 가족이 전혀 없었던 거야?”
“노모가 있기는 한 데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최씨의 상주가 되어줄 직계 가족은 없었던 셈이죠. 그나마 사촌여동생에게 연락이 뒤늦게 닿아 상황을 말해주니, 매우 싫은 내색을 하더라고요. 왜 자기에게 전화를 해서 그 사실을 말하느냐고 말이죠.”
“그 여동생 너무 사람이 야박하다. 어찌되었든 자신과 혈연관계인 가족이 죽었다는 데, 어쩌면 그러니.”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서 장례는 누가 치러준 거니?”
“사촌여동생이 치렀죠. 그 사람 말고는 없었으니까요.”
“문상을 다녀오고서 뒤늦게 사람들 말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인데요.”
“그게 뭐니?”
“최상진 씨, 그 사람 살아 있을 때 행복하지 못했더라고요. 요즘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정말 그랬던 것 같아요.”
“아니, 어느 정도였기에?”
“외동아들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뭐 그렇다고 사랑을 받으며 자란 외동아들은 아니었고요. 그리고 성장기 시절 그의 아버지는 그처럼 일용직 인부로 생계를 근근이 이어나갔고, 거의 매일 같이 술에 취해 살았다고 해요. 그와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고요.”
“휴, 그러면 안 되는 데. 참…….”
“오래 사시지는 못 했나 봐요. 최상진 씨가 마흔이 되기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더라고요. 그 후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자신이 생계를 책임졌던 것 같아요. 물론 그 역시 일용직 인부였던지라 매일을 근근이 살아가는 정도였고요.”
“부가 대물림 되는 것처럼 가난도 대물림 되는 사회잖아.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청년들이 괜히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하겠어요.”
“참, 씁쓸하다. 이래서는 안 되는 데.”
“우리 같은 사람들만 푸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부를 대대손손 대물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세상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데요.”
“하긴.”
“그의 어머니가 건강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마저도 그렇지 못했나 봐요.”
“아까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말했었지?”
“응, 맞아요. 어머니도 식당일에, 건물 청소에 온갖 궂은일들을 하며 지내시다가 뒤늦게 치매가 왔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가 치매가 온 이후로 최씨는 그의 아버지처럼 매일 술기운을 빌어 잠을 청했다고 해요.”
“그의 어머니는 그러면 어디에 계시는 거야?”
“여수요. 여수에 있는 한 요양원에서 지내고 계시다 네요.
“아, 여수.”
“여수로 매달 내려간다는 건 알았었는데, 요양원에 계신 그의 어머니를 뵈러 가는 건지는 전혀 몰랐어요. 우리도 너무 무관심했었죠.”
외사촌 형은 나와 죽은 최상진 씨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이 무겁고 불편해진 것 같았다. 그런 형의 모습 때문에 나는 형을 데리고 잠시 식당 밖으로 나왔다. 꽤나 상쾌한 밤공기를 마시고 있음에도 우리는 가슴에 뜨겁고 매캐한 연기를 잔뜩 품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물에 적신 솜뭉치를 올려놓기라도 한 것 마냥 그렇게 무거웠다.
나와 외사촌 형은 밤하늘의 달과 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잠시 후 외사촌 형은 담배를 꺼내들며 내게 흡연을 권했다. 나는 분위기에 이끌려 무덤덤하게 형이 권하는 담배를 받아 피웠다. 아찔했다. 몇 개월 만에 체내로 받아들인 니코틴은 나를 지탱시키던 강박을 삽시간에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외사촌 형은 팔을 내 어깨 위로 얹어 나를 지탱해주었다.
“한 대 더 태울래?”
“아니, 됐어요. 지금 좀 어지러워요.”
“그럼, 들어가자.”
외사촌 형이 먼저 가게로 들어갔고, 나는 소변을 보기 위해 잠시 화장실에 들른 후 가게로 들어갔다. 제법 쌀쌀한 밤공기 탓에 두 손이 붉게 변해 있었고 살짝 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형, 벌써 9시 반이 넘었네요.”
“그러게. 시간이 빨리 지나갔네.”
“조금 더 마시다 들어가도 괜찮죠?”
“그럼. 시간은 신경 쓰지 마.”
“너는 괜찮지?”
“저야 혼자 지내고 있는 데 괜찮죠. 이번 주는 제가 집에 올라가지도 않고, 또 아내가 내려오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니? 지난주는 다녀왔고?”
“지난주는 아내가 일요일에 잠시 들려서 반찬이랑 해주고 갔어요.”
“네가 홍천에서 지내니 너도 고생이지만 재수씨도 힘들겠어.”
“어쩔 수 있나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이런 걸요.”
“하긴 요즘은 그래서 주말부부, 아니 월말부부도 그렇게 많다고 하더라.”
“그래도 저는 월말부부까지는 아니에요. 굳이 따지자면 격주주말부부 정도 되겠네요.”
“참 힘든 세상이야.”
“어쩔 수 없죠. 살아야 하니 사는 수밖에요.”
“우준아, 술을 더 마시려면 안주를 하나 더 시켜야겠다. 그렇지?”
“이모에게 계란말이 하나 더 달라고 하고, 전골은 육수를 조금 더 부어달라고 하면 될 것 같네요.”
“그러자.”
외사촌 형은 식당 여사장을 불러 계란말이 한 접시 추가와 곱창전골 육수를 채워달라고 했다. 잠시 후 여사장은 우리에게 주문한 것들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오늘 역시 여느 날들처럼 저녁 11시면 마감을 하니 추가로 주문할 것이 있으면 10시까지 주문하라는 말을 곁들였다.
#8
나는 외사촌 형과 나의 빈 소주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잠시 끊겼던 죽은 최씨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이었다.
“최상진 씨 장례식은 결국 사촌여동생이 상주가 되어 치렀어요.”
“그랬겠지. 아까 네가 그 여동생 말고는 없었다고 했잖니.”
“맞아요.”
“장례식은 잘 치러준 거야?”
“평범했어요. 요즘에는 다들 장례업체를 통해서 장례식을 치르니까요.”
“하긴. 사람들은 많이 왔었니?”
“아니요. 너무 적막하더라고요. 문상객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고인을 슬퍼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 분위기는 정말 제가 어찌해야 하는지를 모르게 만들었어요.”
“그래도 가족은 비통해 하며 있었을 거 아니야?”
“아니요. 그렇지 않았어요. 상주로 있던 가족은 3명뿐이었어요. 물론 제가 본 기준으로요.”
“그 사람, 정말 가족이 없었구나.”
“그랬어요. 40대 정도로 보이는 부부와 족히 여든은 되어 보이는 노인만이 상복을 입고 있었거든요. 그들 외에는 가족이 없어 보였어요.”
“40대 부부는 사촌여동생 내외였니?”
“맞아요. 그렇다 하더라고요.”
“그럼 그 노인은? 혹시 최씨의 어머니?”
“그랬을 거예요. 당시 그 노인은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 표정이었어요. 그리고 그 노인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소개를 해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그랬구나.”
“그런데 상복을 입고 그곳에 있을 노인은 고인이 된 최상진 씨의 어머니 밖에 없잖아요. 우리는 당연히 그 노인이 최씨의 어머니라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 어머니는 치매 때문에 그러신 거니?”
“그런 것 같았어요. 치매가 꽤나 심각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순간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자신이 왜 상복을 입고 있는지, 또 누구의 장례식에 상주로 있는 것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겠죠.”
“우준아, 그 사람 어머니도 너무 안 됐다.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신은 짓궂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세상 너무 불공평하잖아.”
“저도 그런 생각을 해요. 하지만 그 어머니에게는 어쩌면 잘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아니 왜?”
“자식의 죽음을 모르고 살아갈 테니까요.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에 대한 애절함으로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보다 희망 섞인 그리움을 간직하고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가 그나마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불행 중 덜 불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노모가 치매로 자신의 자식이 자살을 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 상황이 말이야.”
“응, 저도 그래요.”
“그 노모는 이제 어떻게 지내시는 거니? 아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요양원에서 지냈다면서. 그러면 그 간 요양원 비용을 그 최씨가 지불했을 테지만, 이제는 그래줄 사람이 없을 거잖아.”
“맞아요.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앞으로 어떻게 지내시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 정부에서 지원이 되는 다소 환경이 열악한 기관으로 옮겨지지 않을까요? 사촌여동생 내외의 태도를 보았을 때는 그 사람들이 그의 어머니를 살펴주지 않을 것 같거든요.”
“하-! 어려운 사람만 어려워지는 세상이라지만, 이거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