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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일꾼 최씨 #4~6

by 작가C

#4

밤공기가 제법 선선해졌다. 홍천에 와 생활을 하게 되면서 좋은 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홍천의 밤’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홍천에 와서 밤하늘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퇴근 이후 외롭고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밤하늘의 모습에 매료되어 보고 있다. 홍천의 밤하늘은 대도시의 밤하늘보다 높고 맑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보다 선명하게 빛나고, 칠흑처럼 어두운 별들의 배경은 오염되지 않은 심해처럼 투명하다. 이것은 홍천에 와서 밤하늘을 한 번만이라도 봤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오늘도 여전히 밤하늘은 아름답다.

“우준아!”

“어, 형!”

“너 일찍 왔니?”

“한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구나. 그런데 여기서 뭐해?”

“바람 좀 쐬느라고요.”

“그래? 바람 다 쐬었으면 들어가자.”

“그래요.”

나는 외사촌 형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고, 자리에 앉았다. 식당 여주인은 나와 함께 자리에 앉은 외사촌 형을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우리 테이블로 왔다.

“오랜만에 왔네.”

“그렇죠? 제가 한동안 일이 바빠서요. 한 3주 되었죠?”

“그 정도 된 것 같아. 여 동생은 그래도 그 사이 왔었는데.”

“그래요?”

“형이 소개해준 우체국장님이 지난 주 퇴근하고 소주 한 잔 하자고 하셔서 왔었어요.”

“그랬구나.”

“그나저나 이제 전골 내주면 되겠지? 내가 일부러 조금 늦게 끓였거든.”

“네, 주세요.”

“알았어. 바로 내줄게.”

식당 여주인은 그렇게 바로 주방으로 갔다. 외사촌 형은 소주병을 짚어들고서 내 소주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나 역시 형에게서 소주병을 건네받아 형의 소주잔을 채웠다.

우리가 서로에게 채워진 소주를 마시는 동안 식당 여주인은 곱창전골을 내왔다. 자글자글 끓고 있는 그 전골에서 피어나는 매콤하면서도 짭조름한 냄새가 식욕을 북돋았다. 그래서였을까? 나와 형은 한 10여 분 동안 말없이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

“나도 배가 많이 고팠나보다. 허겁지겁 식사를 했네.”

“형, 나도요.”

“참, 우준아.”

“응? 왜요?”

“혹시 지난달에 너 일하는 곳에서 사람 죽었니?”

“들었어요?”

“그래, 들었지. 그날 네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볼까 하다가 괜히 너 정신없을 것 같아서 말았거든.”

“아…….”

“어떻게 된 일이야? 너랑 친한 사람이었니?”

“아니요. 그렇게 친분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래? 너희 회사 사람은 맞지?”

“맞아요. 저희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였어요. 그런데 저와는 그다지 대화할 기회가 없었어요. 뭐, 대부분의 인부들과의 관계가 그렇지만요.”

“그렇구나.”

“네.”

“현장에서 사고로 죽은 거야? 아니면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을 당한건가?”

“뉴스에 대략 나오기는 했었는데, 형 못 봤나 보네요.”

“응. 그래서 네게 물어보는 거니까.”

“그 이야기 형한테 하려면 좀 시간이 길어질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괜찮아. 내일부터 주말이기도 하고.”

“형수한테는 늦을 거라고 말 했어요?”

“아, 깜빡하고 있었네. 잠시 메시지 좀 보낼게.”

“알았어요.”

외사촌 형은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바로 꺼내어 형수에게 몇 문장의 메시지를 서둘러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형의 휴대폰에 알림벨소리가 울렸다. 외사촌 형은 수신한 메시지를 확인했고, 곧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형, 왜요?”

“아니야. 와이프가 너무 과음만 하지 말고 재밌게 놀다 오래.”

“그래요? 다행이네요.”

“와이프는 우준이 너랑 있다고 그러면 관대해 지더라고. 아마 결혼 전부터 같이 봐서 그런가봐. 너를 워낙 좋게 보기도 했고.”

“어휴. 그게 벌써 언제 쩍인데. 형수는 그때의 내 이미지를 아직도 가지고 있나 보네요.”

“사람이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하잖아. 와이프는 특히 그런 것 같아.”

“아이쿠. 그때 착했던 게 천만다행이네요.”

“하하하. 그러네.”


#5

그의 이름은 ‘최상진’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날보다 ‘어이!’ 혹은 ‘최씨!’라고 불리는 날이 더 많았다. 노가다 판에서는 나처럼 본사에서 내려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하루하루를 인력시장에서 알선되어 온 일용직 인부들이다. 그런 탓에 서로가 서로에게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을뿐더러 서로의 이름마저 모르는 채 지내기가 일쑤다. 최상진 씨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최상진 씨와 함께 일을 한 기간은 반 년 정도였다. 내가 이곳 현장소장으로 발령을 받아 오기 이전부터 그는 일용직 인부로 일을 해오고 있었다. 대략 170cm 중반 정도의 작지 않은 키, 검게 그을린 피부, 오래 전에 생기를 잃은 듯 한 눈동자, 낡아서 헤어진 옷과 운동화, 이러한 것들이 내가 그를 기억하는 모습이다. 최상진 씨는 어눌했던 탓에 늘 말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더욱 의기소침하고 내향적인 사람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현장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은 그와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최상진 씨의 그러한 모습들이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으니 말이다. 나, 그리고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그가 죽고 나서야 경찰의 조사를 통해서 그를 알게 되었다. 이미 죽은 이에게 이러한 마음이 어떠한 의미가 있겠느냐 만은,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더라면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6

홍천은 인구가 많지 않은 시골인지라 누가 자살을 한다든지 하는 일이 흔치 않다. 그래서일까? 외사촌 형은 나에게 궁금한 것이 참으로 많았다. 최상진 씨의 죽음에 대해서 말이다.

“우준아, 그 사람 자살한 건 맞는 거야?”

“맞아요. 자살이에요.”

“얼마나 상황이 나빴기에 자살을 한 거지?”

“뭐,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상황과 느끼는 감정은 각기 다르니까요.”

“아니, 그래도…….”

외사촌 형은 그가 자살로 목숨을 잃었다는 나의 말에 마음이 답답했던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외사촌 형의 모습에 나도 한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와 형은 서로의 소주잔에 술을 따른 후 벌컥 삼켰다.

“크-. 쓰다!”

“오늘따라 술이 많이 쓰다.”

“나도 그래요.”

“우준아, 그 사람은 충동적으로 자살을 한 거야?”

“정확한 당시 상황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우울증이 꽤 심했다고 하더라고요.”

“우울증?”

“네. 그게 주요 사인이라고 말하더라고요.”

“하-! 우울증. 그거 정말 무서운 병이더라. 자살하는 사람들 보면 여지없이 우울증을 앓았더라고.”

“그렇죠.”

“우울증은 내력이었던 거니?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니?”

“내력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생활고가 컸다고 하더라고요.”

“생활고?”

“네, 생활고요.”

“아니, 얼마나 안 좋았기에?”

“많이 안 좋았다 하더라고요.”

외사촌 형은 잠시 동안 침묵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먹먹했던 것인지, 안타까움에 말문이 막혔던 것인지,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형이 그의 죽음을 얼마나 안타까워하는지는 곁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에는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니?”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사고이기도 하고요.”

“그렇지?”

“응, 그래요.”

“정말로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인지, 아니면 예전에도 많았는데 요즘에서야 뉴스로 많이 보도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 그런데 전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기는 해.”

“왜 그렇게 생각해요?”

“요즘은 살기가 너무 팍팍하고 어렵잖아. 내가 옛날에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어른들이 예전보다 지금이 더 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나 역시 요즘 살기가 어렵다고 느껴지거든. 넌 안 그러니?”

“그런 것 같네요.”

“그렇지? 내 주변에도 요즘 죽지 못해서 산다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

“하긴 저도 간혹 그런 생각을 하니까요.”

“휴! 어쩌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정말 용기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말이지.”

“형 말에 딱히 반박을 못하겠네요. 참, 씁쓸한 시절이에요.”

“그러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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