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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일꾼 최씨 #1~3

by 작가C

#1

강원도 홍천으로 발령을 받아 현장소장 직을 수행한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이곳은 어머니의 고향이자 외가가 있는 곳이지만, 내게 그리 친숙하고 정감이 크게 있는 곳은 아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3~4년에 한 번 정도 명절을 기해서 찾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집을 떠나 이곳에 혼자서 생활하고 있는 나는 한 달에 겨우 1~2번 정도만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가. 이곳, 홍천으로 발령을 받아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거의 매주 인천 집으로 올라갔었다. 그러나 점차 이곳의 업무가 많아지고, 또 주말 업무도 간간이 생기면서 인천 집에는 2~3주에 겨우 한 번 정도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가끔 3주 넘게 내가 가족들을 찾지 못하게 되면, 아내가 두 아이들을 데리고 내가 지내는 홍천으로 내려와 주고 있다. 가장으로서 낙제에 가까운 나를 여전히 사랑해주고 두 아이들을 챙겨가며 군소리 없이 살아가주는 나의 아내는 정말 좋은 여자다.

나는 서울 본사에서 건설현장 업무를 관리하기 위해서 내려온 사람이기에 이곳 현장에서의 사람들과 긴밀하게 지내고 있지는 않다. 원활한 업무를 수행하기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만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하루 업무를 마친 후에 직장사람들과 소주를 한 잔 한다든가, 주말에 만나서 여가생활을 함께 한다든가 하지는 않는다. 100% 나의 태도 탓은 아니다. 이곳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를 오래 있지 않을 십장(什長)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외로움을 적지 않게 느끼는 내가 지금까지 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가족과 근방에 살고 있는 외사촌 형 때문이다. 특히, 외사촌인 재억이 형은 수시로 밀려드는 외로움과 고독 등의 감정들을 지근거리에서 희석해주고 있다.

홍천에서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자주 가고 있는 음식점 한 곳이 있다. 남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작은 곱창전골집인 데, 하루 일과가 끝나고 소주가 당기는 날이면 외사촌 형을 불러 반주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곳이다. 식당은 오래되고 허름하지만, 곱창전골 맛은 일품이다.

오늘도 소주가 당긴다. 재억이 형에게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그래서 별다른 선약이 없다면 곱창전골에 소주나 한 잔 해야겠다.


#2

“여보세요.”

“형, 우준이요.”

“어, 우준아. 어쩐 일이니?”

“어쩐 일은요. 뭐, 내가 형한테 무슨 일이 있어야 전화했나요?”

“그냥 인사말처럼 나온 말이다.”

“형, 오늘 저녁에 선약이 없으면 나랑 소주 한 잔 할래요?”

“소주? 음……, 보자.”

“왜, 오늘 바빠요?”

“아니야. 그런 건 아니고. 그러자!”

“그러면 우리 매번 가는 곱창전골집 어때요?”

“거기 좋지. 그런데 우준아.”

“네, 형.”

“내가 지금 화촌면에 다녀와야 해서, 저녁 8시쯤이나 도착할 것 같다.”

“괜찮아요. 그러면 거기서 8시에 봐요.”

“그러자.”


#3

저녁 7시 30분,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재억이 형이 이곳에 도착하려면 30분이 더 지나야 한다. 식당에 자리가 얼마 없으니, 식당 밖에서 형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식당 안에서 미리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해놓는 편이 좋겠다.

식당 문을 열자마자 이 식당만의 고유한 냄새, 분위기, 색깔이 밀려든다. 실금이 여럿 있는 납빛 시멘트 벽, 매콤하면서도 고릿한 음식 및 식자재 냄새, 비좁게 놓인 몇 안 되는 테이블들, 끼익-끼익 둔탁한 소리를 내는 샷시문, 삶에 찌들어 있는 근로자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오늘은 혼자 온 거야?”

“아니요. 형도 잠시 후 올 거예요.”

“난 또 혼자 온 줄 알았네.”

“설마요. 하하하. 이모!”

“왜, 형 오기 전에 먼저 주문하시게?”

“곱창전골 지금 주문하면 얼마나 걸리죠?”

“한 10~15분 정도.”

“음……, 그러면 지금 주문할게요.”

“그래 그럼.”

“곱창전골 주시고요. 소주도 한 병 주세요.”

“소주는 먼저 가져다줄까?”

“네, 그래주세요. 먼저 주실 수 있는 밑반찬들도 같이 주시면 좋고요.”

“알겠어.”

식당 여주인은 잠시 후 나의 주문대로 몇몇 밑반찬들과 소주를 가져다주었다. 나이는 대략 70대 초반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고향이 홍천이 아니지만 젊은 시절 이곳에 시집을 온 이후로 지금까지 터를 잡고 식당을 운영하며 살아왔다고 들었다. 그러한 것들을 고려해보면 식당 여주인은 적어도 홍천에서만 족히 40~50년은 살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일까? 이곳 여주인은 적어도 남면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죄다 꿰고 있는 듯 했다.

오늘은 소주 맛이 꽤나 쓰게 느껴진다. 이렇게 소주가 쓰게 느껴지는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과음을 하곤 한다. 이유는 잘 모른다. “쓰다, 써. 크!”라는 늑씨 섞인 말을 하면서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은 아마도 그날의 삶처럼 느껴져서가 아닐까? 느껴지는 모든 감정, 생각, 느낌 등을 마취시키듯 무던하게 만들어주곤 하니까 말이다.

외사촌 형을 기다리면서 소주 몇 잔을 홀짝거리며 비워냈더니 벌써 취기가 오른다. 그러고 보니 벌써 소주를 1홉이나 마셨다. 저녁 7시 51분이다. 외사촌 형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더 취기가 오르지 않도록 식당 밖에서 바람을 좀 쐬어야겠다. 소변도 볼 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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