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어느 누가 남자는 여자의 조명발에 넘어간다고 했던가? 나는 이미 아정이의 관능미에 홀려버렸다. 어쩌면 조명발에 의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 할지라도 아정이는 나에게 완벽했다. 마음 한 구석에 억눌러 놓았던 음욕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솟았다. 특히 대화를 하면서 오물거리는 입술, 붉은 와인에 촉촉해진 그 입술은 너무도 자극적이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키스하고 싶어.”
아정이는 나의 이 말에 크게 흠칫했고, 몇 초 간 미동도 없이 답변하지 않았다. 그저 놀란 토끼처럼 나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정이에게 다시 말했다. “키스하고 싶어.” 그제야 아정이는 나를 향하며 말없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나는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 나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윗입술에 나의 윗입술이 닿은 상태로 잠시 멈추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느껴지는 촉촉함 그리고 아주 미세한 떨림. 아름다웠다. 야하지만 순수한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조금 더 그녀의 입술에 나의 입술을 밀착했고, 우리 서로의 입술은 포개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포개진 나의 입술을 살며시 열었다. 이어 그녀의 입술도 조심스럽게 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몸 안에서 밀려나오는 뜨거운 온기를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그것은 우리의 몸을 더욱 달구기 시작했다. 시간이 멈추어 있는 것 같았다. 심장은 왜 그리도 쿵쾅거리는지. 자칫 모든 혈관들이 터져나갈 것만 같이 느껴졌다.
나와 그녀의 혀가 서로 마주하는 순간 나의 욕정은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소파에 기댄 그녀에게 키스를 진하게 하며, 그녀의 원피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나의 행동에 그녀는 흠칫 놀란 듯 했으나, 저지를 하거나 거부의사를 표현하지는 않았다. 나는 조금 더 과감해졌다. 나는 곧 그녀를 소파 위에 눕혔고, 원피스와 속옷들을 모두 벗겼다. 오른팔로 살포시 젖가슴을 가리고 두 다리를 가볍게 꼬아 가장 은밀한 부위를 가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그리스 신화의 여신과 같았다.
나는 그녀를 안아서 안방의 내 침대 위로 옮겼다. 침대에 옮겨진 후 나를 부끄럽게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귀여운 아기 고양이 같았다. 나는 상의를 벗고 그녀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진한 키스를 하면서 내 바지를 벗으려는 순간 아정이는 재빨리 나의 품 안에서 빠져나갔고, 잠시 씻고 오겠다는 말을 내게 하고서 욕실로 달려갔다.
나는 홀로 방 안에 남겨졌다. 그녀가 욕실에서 있는 동안 나는 그녀에게 무슨 잘못을 한 것은 아닐까, 또는 너무 성급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심사가 다소 좋지 않았다. 20여 분이 지났다. 아정이는 온몸에 샤워타월을 두르고 미소를 지으며 내게로 왔다.
“이제야 개운해요. 오빠는 안 씻어요?”
“어? 어. 나도 씻어야지.”
나는 바로 욕실로 갔다. 마음이 급해서였을까? 평소보다 급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한 5분 정도밖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빠, 샤워한 거 맞아요?”
“응. 했어.”
“오빠는 정말 빨리 씻네.”
“마음이 급하니 평소보다 좀 빨리 씻었네.”
“오빠! 무슨 마음이 급해요. 변태 같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정이는 다시 나를 온몸으로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몸에 남은 물기를 다 닦아내고서 나는 아정이 곁에 앉았다. 아정이의 몸을 두르고 있는 샤워타월을 걷어내고서 그녀의 입술, 그녀의 목, 그녀의 가슴, 그녀의 배꼽에 입을 맞추었다. 간혹 부르르 떨리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꽃잎 같았다.
“오빠, 나 사랑해요?” 뜨거운 숨을 몰아 내쉬며 아정이는 내게 물었다.
“당연하지.”
“오빠, 고마워요.”
“내가 더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아정이는 두 다리를 열어 나를 받아들였다. 나는 그녀의 안에서 그녀의 일부가 되었다. 너무도 황홀하고 아름다웠다.
도덕, 윤리, 이성 따위는 더 이상 나를 통제하거나 지배하지 못했다. 나는 모든 순간을 내 욕망에 충실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방 안에는 우리의 체온, 신음소리, 거친 숨결만이 가득했다. 적막함이 있을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17
그녀의 신음소리는 점차 거칠어져 갔고, 나는 절정을 향했다. 우리의 몸짓은 아름다웠으며 격렬했다. 이성과 판단의 기능은 이미 정지되었고, 본능에 충실했다. 사정을 하기 직전까지 나의 본능은 더욱 큰 쾌락을 갈구하도록 했다.
오르가슴에 달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아정이의 목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죄었다.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아정이는 내 손을 걷어내려고 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힘을 주어 목을 죄었다. 아정이는 숨이 넘어가는 목소리로 “오…빠……, 수흐마켜…여. 그으…만….”이라고 말하며 몸부림쳤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며 부풀어 올랐다.
아정이는 자칫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두려웠다. 하지만 즐거웠다. 그녀의 몸부림은 점차 사그라졌다. 나는 잠시 동안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 잠시 동안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았다.
내게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죽어있었다. 내게 목이 졸린 채로. 제니 킴이 그러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