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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시작 #13~15

by 작가C

#13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6시 17분이었다. ‘누가 이 시각에 전화를 건 것일까?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별의별 생각들이 다 들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오빠, 나에요.”

“응, 아정아. 이른 아침에 무슨 일이야?”

“내가 무슨 일이 있어야 오빠한테 전화하나요? 치.”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오늘 저녁에 시간 어때요?”

“저녁? 저녁에 왜?”

“오빠랑 저녁식사 같이하고 데이트 좀 하려고요.”

“내일도 평일인데 출근하려면 힘들잖아. 거리가 가까운 것도 아니고.”

“그래서 오빠 싫어요?”

“설마, 그럴 리가. 아정이 힘들까봐서 그러지.”

“사실 오늘 서울로 출장이 있어요.”

“정말?”

“응.”

“당일치기야?”

“아니요. 1박 2일. 내일 오후 회의까지 참석하고서 천천히 내려가면 되요.”

“다행이네. 그러면 오늘 어디서 언제 볼까?”

“장소는 오빠가 정해요.”

“그럴게. 시간은 어떻게 할까?”

“나는 서울에서 일이 오후 5시 반은 되어야 끝나요.”

“그러면 대략 6시 30분에서 7시 정도에 만날 수 있겠네.”

“출장 오는 곳은 어디야?”

“구로요.”

“아정아. 그러면 홍대나 상수동 쪽에서 보자. 자세한 장소는 내가 이따가 메시지로 보내줄게.”

“알았어요.”

“먹고 싶은 거 있어?”

“나는 아무거나.”

“음……. 파스타나 리조또 먹을까?”

“좋아요. 그러고 보니 파스타 안 먹은 지 꽤 되었네.”

“오케이. 괜찮은 레스토랑 찾아볼게.”

“아직 광주니?”

“이미 출발했죠. 지금 익산 지나고 있어요.”

“조심해서 서울 올라와.”

“응. 알았어요.”

“저녁에 보자.”

“오빠, 이따 봐요.”


#14

저녁 6시 47분, 나는 상수역 근처에 위치한 해바라기레스토랑에 약속시간보다 약간 일찍 도착했다.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이다. 음식이 맛있는 이유도 있지만, 분위기 역시 음식만큼이나 꽤 좋다. 게다가 이 레스토랑은 내게 좋은 추억들이 서려있다. 제니 킴에 대한 지난 추억들이, 그리고 아정이와의 현재진행형 추억들이.

“아정아, 여기.”

나는 입구에서 나를 찾는 아정이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나를 확인한 아정이는 곧바로 내가 있는 테이블로 와서 자리에 앉았다.

“오빠, 일찍 도착했어요?”

“나도 얼마 전에 도착했어. 서울 올라올 때 힘들었지?”

“괜찮았어요. 평일이라 차 막히는 것도 없었고.”

“그런데 오늘 너무 예쁘다. 빨간 원피스 너무 잘 어울리네.”

“정말? 잘 어울려요?”

“응. 너무 잘 어울린다. 너무 예뻐.”

“오늘 오빠가 처음!”

“뭐가 처음이야?”

“예쁘다고 해준 사람이요.”

“설마. 이렇게 예쁜데?”

“정말로요.”

“오늘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시력이 좋지 않은가 보다. 아니면 부끄러움이 많던가. 하하하.”

“그러게요. 호호호.”

“배가 많이 고프지?”

“응. 배고파요.”

“뭐 먹을까?”

“음. 나는 크림파스타 먹을래요.”

“그것만?”

“그러면 고르곤 졸라 피자 하나 하고 샐러드 같이 시킬게.”

“응, 오빠. 같이 나누어 먹으면 되겠다.”

나는 웨이터를 부른 후 바로 음식들을 주문했다. 우리는 음식들을 기다리는 동안 그다지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체로 너무 좋았다.

이 레스토랑은 오두막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지어졌다. 목재로 레스토랑이 지어져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봤을 때도 그렇고 내부에 있는 동안에도 그러한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레스토랑들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다.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기분 좋은 음식냄새들, 치즈향, 은은한 촛불들, 통나무집이 주는 질감 등.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연애감성을 한껏 고양시킨다.

레스토랑의 이러한 분위기 안에서 아정이는 너무도 아름답다. 빨간 원피스는 더욱 절묘하게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성적 욕망이 샘솟기 시작한다. 이 욕망을 주체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오빠, 맛있어 보여요.” 웨이터에 의해 테이블에 놓이는 음식들을 보면서 아정이는 내게 말했다.

“어, 어. 그러네.”

“오빠, 무슨 생각했어요?”

“아니. 생각은 무슨.”

“아니면 말고요. 호호호.”

“어서 먹자.”

아정이는 “잘 먹겠습니다.”라고 밝게 말을 한 후 식사를 시작했다. 크림파스타를 주로 먹었다. 아정이는 그 파스타를 먹으면서 입술에 크림을 계속 묻히고 닦아내기를 반복하였는데, 나는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엽고 관능적으로 느껴졌다. 체리빛깔 입술 위에 묻은 아이보리빛깔 크림을 닦아내기 위하여 살포시 날름거리는 그녀의 작은 혀. 나는 아정이의 그 모습에 매료되어 좀처럼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음식 맛이 없어요?”

“어? 아니. 왜?”

“너무 안 먹고 있어서요.”

“아정이 때문에.”

“나 때문에요?”

“응. 아정이 때문에.”

“내가 왜요?”

“너무 예뻐서. 음식 먹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넋 놓고 바라보게 만들잖아.”

“에이. 오빠도 참. 느끼해요.”

“그런가? 하하하.”

“그래도 고마워요. 오빠한테 예쁨 받는 거 나는 좋아요.”

“참, 오늘 서울에서 자고 내일 광주로 내려간다고 했지?”

“응. 맞아요.”

“숙소는 정했고?”

“아니요. 평일이니 방 잡기 어렵지 않을 것 같아서 예약 안 했어요.”

“음. 그러면 오늘 오빠 집에서 묵을래?”

“오빠 집에서?”

“왜 불편하니?”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런 게 아니면 식사하고 오빠 집으로 가자. 오빠 집에 한 번도 못 와 봤잖아.”

“그렇죠.”

“아정이랑 같이 있고 싶네.”

아정이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있다가 그렇게 하겠다고 내게 답해주었다. 우리는 여러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인근의 홍대 거리를 걸으며 길거리 데이트를 즐겼다.


#15

저녁 9시 40분이 되어서야 나는 아정이와 함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 오빠 생각보다 깔끔하게 하고 사네요?”

“아니야. 정리를 깨끗이 못해서 좀 부끄러운걸. 총각냄새도 폴폴 나고 말이야.”

“이런 말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우리 집보다 여기가 더 깔끔한 것 같아요.”

“에이, 설마. 나 듣기 좋으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거지?”

“아닌데.”

“하하하. 알았어, 알았어. 아정아, 우리 와인 한 잔 할까?”

“와인 있어요?”

“얼마 전에 사놓은 게 있어.”

“저는 좋아요.”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 간단하게 안주 만들어서 같이 가져갈게.”

“알겠어요.”

“그 동안 거실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어.”

“응, 오빠.”

나는 바로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치즈와 크래커, 칠레산 포도를 꺼내어 안주로 준비했고, 와인냉장고에서 캘리포니아산 와인 한 병을 꺼냈다. 나는 와인과 안주를 들고서 거실로 향했다. 거실의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아정이의 모습에서 불현 듯 제니 킴의 모습이 보였다. 흠칫했다. 갑자기 왜 그녀의 모습이 아정이에게서 보인 것인지. 잠시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나는 아정이에게로 갔다.

“무드등도 켤까?”

“어둡지 않아요?”

“어둡지는 않을 거야.”

“그래요.”

나는 아정이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고선 재빨리 일어나 모든 형광등을 껐고 거실에 달 모양으로 된 무드등을 켜놓았다. 은은한 불빛이 제법 마음을 차분하게 편안하게 만들었다.

“와! 오빠 분위기 꽤 좋아요.”

“그렇지?”

“그런데 오빠 이건 왜 사놓은 거예요? 남자 혼자 살면서.”

“얼마 전에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무드등을 봤는데, 너무 괜찮더라고.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충동구매를 했지. 하하하. 제대로 켜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네.”

“그래요?”

“응. 나 혼자 있을 때는 그다지 켜고 있을 일이 없더라고.”

“하긴 그렇겠어요. 나한테 고맙죠? 무드등 사용할 기회도 만들어주고.”

“하하하. 고마워.”

“오빠, 우리 한 잔해요.”

“그러자.”

나와 아정이는 서로의 잔에 와인을 채우고 마시기 시작했다. 와인을 마시며 대화가 깊어질수록 몸에 온기가 가득해지고 있었다. 아정이 역시 그러했다. 뽀얀 얼굴이 어느새 잘 익은 복숭아처럼 분홍빛이 감돌고 있었다. 서울의 야경이 거실의 창으로 밀려들었고, 나의 이성은 그 분위기에 잠식되었다. 스멀스멀 피어나는 욕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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