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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C Dec 06. 2020

일기 - 2020년 12월 6일, 부산 문현


이번 주도 계획한 만큼 집필 진도가 잘 안 나간다. 한 주간 누적되는 피로가 문제인 것 같다. 요즘은 나도 나이가 제법 들어서인지, 20대와 30대 시절 그때의 체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근 10년간 매일 4시간 내외로 잠을 줄여가며, 직장 다니고 책 쓰고 논문 쓰고 나름 가야금 등 취미활동도 어떻게 했는지 나 스스로가 경이롭게 느껴진다.


어제도 새벽 4시 다되어서 잠을 청했지만 그다지 실속은 없었던 것 같다. 집필활동도 좀 했지만, 머릿속이 어수선한 이유도 있다. 요즘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먹고사는 문제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여러 중대 이슈들로 인해 구조조정 계획이 몇 년 내로 있다. 지난 금요일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일반직원들 대상으로 희망퇴직 공고가 났다. 물론 그들은 공고문을 보니 상당한 보상비가 보장되어 있어, 다소 부러운 감도 있다. 그렇지 않은 신분인 사람들은 매년, 혹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간 만료에 의한 당연 해지 상태가 되는지라, 그냥 등지고 떠나야 한다. 법정 퇴직수당이 전부다. 그것도 몇 달 버틸 수 있을 정도가 다인 수준이다.


요즘은 본의 아니게 인생이 도박처럼 바뀌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전에는 내가 공부하고, 연구하고, 일하고, 집필하고, 내가 하는 모든 활동들이 중장기적인 내 삶에 있어서 투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매년 작은 돈이지만 적금도 넣고, 목돈이 되면 대출금도 갚고, 부모님 용돈도 남은 돈으로 드리고, 일부는 나를 위해서도 쓰고. 그렇게 5년 10년을 나름 바라보면서 재정계획도 진행했던 것 같다. 불안정한 신분임에도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나를 비롯하여 내 주변의 친구, 형들, 동생들을 보아도 그런 모습은 찾기 어렵다. 정말 하루하루 죽을 것 같다고 외치다가 죽어나가는 내 또래들. 혹은 겨우겨우 50대 60대까지 버티다가 노령 빈곤층으로 전락하여 고통스러운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거나, 최대한 영 끌 하여 한방을 노리며 자본시장으로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산다.


나 역시 내 삶의 모든 방향이 바뀌었다. 특히 최근 2~3달 사이에. 그리고 지난 금요일을 보내고 이번 주말은 내내 혼란스럽다. 나이 40에 혼란스러운 삶을 살 것이라고 전혀 생각 못했다.


문득 고등학생 시절 생각이 난다. 당시 나는 무엇이 될까라는 질문에 여러 직업들을 나열하거나, 어떠한 영역에서 어느 위치가 되어 있겠다는 답을 적었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40대 중반이 되고 싶다고 했다.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왜 이상한 답을 적었냐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답했다. "아니, 그때는 내 가정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될 거고, 삶이 안정적인 느낌이 들 것 같아서. 드라마 보면 그렇잖아." 친구는 나에게 "하여튼 짜우(당시 내 별명) 특이해."라고 말하며 웃었다.


지금까지 최고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또 최고라는 표현을 혐오하기도 하지만. 내 삶에 정직하고 떳떳한 23년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3년을 포함하여 대학, 군대 시절, 대학원 석/박사 시절, 몇 번의 이직을 거치는 동안의 직장시절 도합 23년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나의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이 아닌 직업이 있기 때문이다. 저술가이면서 재야학자라는 정체성 말이다.


요즘은 특정 너튜브 채널도 많이 본다. 자본으로부터 독립이라는 주제로, 소위 부자 되는 채널을 말이다. 물론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나에게 그러한 운이 올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평일 주간에 일하고, 퇴근해서 잠시 쉬다가 신간을 위해 집필을 하고, 책상에 쌓아둔 책을 읽으며 공부한다. 그러면서 이들 채널을 보면서 꿈을 꾸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불안을 느끼지 않는 상황, 미래가 고통스럽지 않은 삶을 살면서, 주변 사람들이 내게 끊임없이 말하는 가정이라는 것도 꾸려보는 꿈을 말이다.


다시금 나에게 솔직해지는 글이 써지고 싶어 진다. 나는 이런 글을 시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나의 시를 시가 아니라고 말할지라도. 이 글은 결코 내가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거나 삶에 찌들어 있을 때는 잘 다가오지 않는다. 정말 나쁜 놈이다. 꼭 이러한 상황에만 나를 찾는다.


부산 문현동 오늘의 오전 햇살은 너무도 좋다. 남의 속도 모르고. 방금 끓여낸 커피가 참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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