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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C Mar 14. 2021

3화. 노동자의 편은 노동자일 것이라는 착각!

나 역시 '노동자의 편은 노동자일 것'이라는 철석 같은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 믿음은 2018년 1월을 계기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20세 이후로 내 삶은 나 스스로 돌이켜 봤을 때 참으로 치열하게 고민하며 성취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내 직장과 신분은 그 결과가 오롯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운칠기삼'이라 하지 않던가! 사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자들에게는 이 '운칠기삼'도 과분한 표현이다. '운구기일'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박사학위 취득자가 국내 수요에 비해 너무 많이 공급(배출)되고 있다는 것이며, 박사학위 취득자의 잠재수요는 있으나 실질적 수요(직접 일자리로 연결되는 수요)가 시장에서 부족하다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나는 이 사실이 괜히 부끄럽게 느껴졌고, 나의 자질 문제로 생각하며 자책토록 하는 요인이었다. 군 장교 생활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형태였는지를 불문하고 급여를 받는 사회인으로서 한 번도 내가 작성한 근로계약서에는 '근로계약 기한의 제한이 없는'이라는 표현이 명시된 적이 없었다. 바로 이것이 그 사실이다. '비!정!규!직!' 군 복무를 마친 이후, 약 10년 간의 내 삶은 비정규직으로서 삶 그 자체였다. 물론, 비정규직이라 하여도 여타의 비정규직보다는 상황이 좋은 편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특히, 비정규직 삶을 한 번도 접하지 않은 사람들 말이다. "비정규직이면 비정규직이지 다른 비정규직이 있는가?" 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다! 정말 다양한 비정규직이 있다. 대기업의 기준으로 일반화하여 구분해 보자면, 비정규직도 나름 계층 아닌 계층이 있다.


그나마 처우가 괜찮은 비정규직은 두 가지 타입이 있다. 한 타입은 급여 수준은 정규직에 비해 현저히 낮을지언정 고용의 안정성은 보장된, 그래서 일명 '준규직'이라 불리는 '무기계약직'이다. 다른 한 타입은 고용의 안정성은 보장되지 않으나 특정 직무에서 전문성이 요구되어 채용되는 '전문계약직'이다. 전문계약직 직원들은 대부분 국내/외 박사학위 취득자나 변호사, 공인회계사, 변리사 등 소위 '士'자 자격증을 보유한 이들이다. 그래서 무기계약직 직원들보다는 능력이나 직무의 차이에 따라 급여 수준이 높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직보다는 처우가 좋지 않다. (물론, 베이비부머 시대에는 현재 전문계약직 직원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처우가 매우 좋았다. 그때는 전문직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희소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A대기업에서 직접 고용한 계약직, A대기업의 계열사를 통해 고용되어 파견된 계약직, A대기업의 계열사의 하청업체가 선발한 후 A대기업으로 파견된 계약직, 일용직 등, 이들은 앞서 언급한 '그나마 처우가 괜찮은 비정규직' 이 외의 비정규직이다. 이들 중 그나마 상황이 좋은 경우는 'A대기업에서 직접 고용한 계약직'이다. 이 경우는 정규직에 비하여 급여 수준이 낮고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음에도, 만 2년 이후 정규직으로의 신분전환을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법상으로는 그러하나, 현실에서는 23개월차에 계약만기에 의한 당연해지 되는 경우가 상당수다.)


2020년 초 문재인 대통령이 한 방송사에 나와 국정 방향을 알리고 국민들의 질문을 받아 답변을 했던 적이 있다. 나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일용직 근로자 한 분께서 일용직 근로자의 처우 등에 대해서 정부의 정책방향을 질문했다. 그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질문자께서는 어디 소속이시죠?"라고 되물었고, 이에 질문자는 "저는 일용직 노동자입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은 어디 소속이냐는 질문을 한 차례 더 했고, 그 질문자는 대통령께서 일용직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는 뉘앙스를 내비치며 다소 실망한(혹은 절망한) 모습을 보였다. 현실이 그러하다. 일용직은 매일 같이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여 그날그날의 생계를 이어가는 계약직으로,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일자리에 노출되어 있는 이들이다.


2021년 3월 한 방송사에서 특집 형식으로 세계의 지성 중 한 분인 마이클 샌델 박사를 온라인으로 초청하여 인터뷰를 진행하였는데, 그는 여기서 '공정함이란 폭력'을 언급했다. 이는 그의 최근 신간인 [공정하다는 착각]을 인용하며 표현한 것이었다. 한국 사회는 대학입시와 직장의 공채 등을 빌미로 주류 사회에 진입하지 못한 이들을 폄하하고 짓밟는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운칠기삼, 이것을 잊은지는 너무도 오래되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도 사실은 자신의 노력을 기반으로 때가 되어야 가능했음이다. 우리는 이를 잊고 있다. 스스로 돕는 자를 하늘이 돕는다고 했던가, 이를 달리 표현하면 '하늘이 돕지 않으면 스스로 노력하고 또 노력해봐야 목표한 바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말이지 않은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인생을 터무늬 없이 낭비하며 죽음만을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각자 나름의 재능이 있고, 인생의 방향을 달리하며, 삶의 가치도 다양하다. 한국 사회는 다름을 틀리다고 규정지으며, 모두가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으로 길러내는데 집중한다. 즉,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국민 각 개인을 하나하나의 국가를 위한, 사회를 위한 부품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국한된 포지션에 채용되지 못한 이들은 낙오자라는 사회적 불명예가 씌워진다. 우리 사회는 이들에 대한 일말의 배려(인본주의에 입각한 사회 안전망)가 없다. 결국, 죽지 못해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한국에서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SKY라 불리는 일류대학교에 진학하고, 고등고시나 S社 등 굴지의 대기업 입사시험에 통과한 이들은 '자신들은 노력한 대가를 공정하게 받았다'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의 삶을 '노력하지 않았거나 (자신보다) 노력이 부족한 자들'이라 그릇된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 엘리트 지배계층에 편입된 '운칠기삼'의 당사자들은 "'기삼'만 있을 뿐 '운칠'이 없었던 그들의 이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뿐 아니라,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은 그 이웃을 폄훼하고 무시하기까지 하는 극악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는 발언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W은행 전문계약직 직원으로 재직했던 당시 소속부서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당했던 나와 동료는 은행 내의 몇몇 고충처리부서에 도움을 청했으나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었다. 정규직의 경우 부서 내 애로사항이 있을 시 부서장이나 고충당사자의 의견을 받아 차후 인사시즌에 다른 곳으로 분리하여 배정을 해주는 등의 조치가 있다. 다만, 비정규직인 나와 동료의 경우 1년 단위 계약직이고 해당 부서의 필요에 의해 채용된 노동자이기 때문에 인사부서 차원에서는 그렇게 신경을 써주어야 할 동기가 없었다. 공학박사이건, 변리사이건, 전문직이라고 하여서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자리가 부족한 당시나 현재와 같은 시기에는 전문직도 계약직일지언정 당장은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은 중요하기에, 드라마에서처럼 쿨하게 사직서 딱 던지고 나가는 것은 상상만으로만 가능했다. 그래서 고충해결을 통해 조치를 어느 정도 받고서 W은행에 조금 더 재직을 한 후, 기회를 봐서 이직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고충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1주, 2주가 지났고, 견디다 못한 나는 노동조합에 연락을 취했다.


사실 금융권 노조는 한국노총 산하 금융노조가 주류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노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대학시절 '한국 정치사'라는 과목을 이수하면서 '한국노총은 전두환 정권 시절 국제기구로부터 노동법 제정과 시행에 대한 압박이 국내에 가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관련 법에 근거하여 노동조합설립을 인정해야만' 했으며, '전두환 정권은 정부에 반하는 노동조합이 생겨나는 것을 지극히 꺼려하여 정부에서 돈을 대주어 친정부 성향의 노동조합이 설립되도록 도왔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의 한국노총이다'라고 배웠다. 최근에야 그 성향이 상당히 변화되었지만, 그래도 그 태생적 특성 때문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적지 않게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정치권, 특히 국내 주류 양당에서 공천하고 국회의원으로 소속시키는 노동권 인사를 살펴보면 진보계열 정당이라 칭하는 곳에서는 '민주노총'계열 인사가 많으며, 보수계열 정당이라 칭하는 곳에서는 '한국노총'계열 인사가 많다.


2018년 3월 나와 동료는 결과적으로 W은행에서 퇴사를 해야만 했다. 그 계기는 바로 노동조합에 연락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너무도 순진했던 나는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국노총 산하 산별노조인 금융노조(한국노총 W은행 지부) 조합원이 아닐지언정 노동자를 비호하고 부당함에 대하여 대변해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노조 조합원은 아니었지만, 우리사주를 취득하여 매번 노조에게 주주권 위임을 해주었다. 이러한 행동은 나와 같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 것이었다. 오판이었다. 잘못된 믿음이었다. 노조 간부가 나와 동료에게 부당함을 저지르고 있던 부서와 사측 담당자에게 직통으로 전화를 걸어 "너희 부서 계약직 C가 노조에 민원을 넣었다. 준비하고 있어라."라는 언지를 줄 것이라 나는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라고 같은 노동자는 아니다, 이것은 내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고서 얻은 경험적인 진실이다.


노동조합, 특히 기득권화된 정규직 노동조합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단체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직과 실직을 반복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그들의 입장에서 단지 '거쳐가는 자들'일뿐인 것이었다. 함께 한 공간에 있는 동안은 한 식구라 표현하지만, 그 내심은 그렇지 않은 것이었다.


군 장교 시절, 특히 전라남도 장성군 상무대 포병학교 고등교육반 시절 한 영관급 교관께서 나를 포함한 대위급 동기들에게 했던 말이 있다. "중/소위까지는 서로 동료이고 친구일 수 있으나, 대위부터는 서로가 서로를 밟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관계이다."


박사학위 공부를 마치고 생계를 위해 여러 번의 대학교수 공채와 정부연구소 공채 등 시험을 치렀고, 최종적으로는 '운칠'이 것이 닿지 않아 계약직으로 전전긍긍하게 되면서, 그 당시 그 교관의 말이 사무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밟고서 살아남는다, 라는 다소 변형된 어조로 말이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 나는 더 이상 정규직 일자리로의 이직을 계획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비정규직으로 삶을 계속하고 싶다는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노동자로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물론, 생계를 위해서 어느 정도 기간은 어금니를 악 물고 버티며 지금의 이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다만, 이 생활은 얼마간만이다.


내가 금융공부를 최근에 들어 집중하고, 주식 투자에 몰입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노동자에게 뒤통수 맞으며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가 되고 싶지 않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 노동자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는 그러한 노동자가 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최근의 주식 투자는 나에게 있어서 어쩌면 삶을 향한 최후의 몸부림인 것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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