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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C Mar 07. 2021

2화. 81년생 남자 주식투자를 하다

쿵, 하고 뇌리를 내리친 생각은 바로 "불안하다."였다.


삶을 돌이켜보면 나이 마흔에 접어들도록 '안정적'으로부터 나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나 스스로가 모험적인 삶을 즐기는 태도를 지니지도 않았다. 얼핏 누군가 나의 이력을 보면 모험적이고 매사 도전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나는 그저 그때그때의 삶에서 차선책을 찾았을 뿐이었다. 최선도 아닌 차선을 말이다.


20대 초반에는 대학을 졸업,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는 직업으로서 군 장교 복무,

30대 초반부터 그 중반까지는 연구소 생활 및 박사학위 취득,

30대 중반부터 현재까지는 사기업에서 직장생활, 9권의 도서를 출간한 저술가 활동, 기술거래사 등록 등.


20세가 되었을 무렵의 봄, 내가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강원도 강릉에 소재한 한 공간에서 '앞으로 나의 인생 계획(20년 계획)'을 노트에 빼곡히 적었던 일이다.

그날 이후 매년 1~2월에 내가 달성했던 목표와 그렇지 못하여 변경해야만 했던 목표를 작성하는 것은 일종의 나의 연례행사였다. 지금도 부모님 집 내 방에는 그 인생 계획 끄적임들이 보관되어 있다.


얼마 전에는 30대 초반 군에서 전역을 했던 당시 작성한 나의 인생 계획을 꺼내본 적이 있다. 추구하고자 했던 인생의 방향은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으나, 본래의 목표대로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이 차선으로 선택하여 지금의 나의 모습을 이루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지금 나의 모습은 1년 단위로 매년 생계수단을 고민하면서 치열하게 내 삶을 다듬어가야 하는 직장인이다. 게다가 삶의 안정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나 스스로로 인하여, 아직 미혼과 비혼 사이에서 어떠한 나만의 의미를 치열하게 찾아 헤매고 있는 타향살이 40대 남자의 모습만 나에게 남겨져 있다. 얼마 전 카카오페이 톡으로 수신한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아 든 나의 예상 연금수령액은 약 90만 원 정도, 그것도 앞으로 지금 수준의 납입금액을 유지하면서 20년 납부를 해야만 가능한!


7년 정도의 군 생활을 하면서 저축해두었던 자본금과 박사학위 취득 이후 한 푼 두 푼 모은 돈, 은행 대출금을 통해 경기도 외각에 마련한 20평대의 아파트 한 채라도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있지만, 사실 앞으로 생계에 대한 고민은 매일 떨칠 수는 없다. 게다가 사람의 인연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인지라, 누군가를 만나 '함께 하고 싶다'는 갈망이 생기고 그것이 현실화된다면 앞으로 삶에 대한 경제적 고민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그러니까 2014년부터 현재까지 창업/중소기업 금융지원 관련 기업평가나 컨설팅, 기술사업성/지식재산 분석 등의 업무를 담당해오고 있다. 사실 이 업무는 나의 전공과 꽤나 거리가 있을 수 있다. 나는 대학교부터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환경기술을 전공한 공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영/금융 분야의 업무를 현업으로 삼고 있음은 내 전공과도 내 꿈과도 적지 않게 괴리가 있다. 지금의 내 업무는 기업을 보는 일인지라, 어찌 보면 본격적인 주식투자는 조금 더 일직 시작했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지금 20~30세대 기준으로 본다면 기성세대에 진입하는 나이 때인지라 주식투자에 대한 다소 부정적 인식이, 또한 위험한 행위라는 인식이 있었음을 전혀 부정하기 어렵다.


영끌과 빚투에 대해서 사실 몹시 우려하는 논조로 글을 2020년 가을 즈음하여 내어놓은 적이 있다. 그리고 어디로부터 초대를 받아 현시대적 상황 관련 가볍지만 절대 가볍게 여길 수 없던 토의의 장에서 역시 영끌과 빚투에 대하여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기 어려웠다. 어느 영화의 제목을 패러디하자면, 지금의 나에게 있어 영끌과 빚투는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이다.


시간이 더 지나 내 나이 40대 후반 혹은 50대에 접어든다면 과감한 주식투자는 분명 틀린 행동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아직 내 삶에 대한 과감한 베팅이 가능하다고 나 스스로는 생각한다. 설령 실패한다 하더라도 재기의 시간이 주어질 수 있는 나이이고, 다행히 앞으로 몇 년 정도는 특별한 악재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비 통장, 즉 자유입출통장에 단 1백만 원 남겨두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한 투자처 몇 곳과 ETF방식의 펀드에 전 재산을 묻어 두었다. 국내 투자처 25% 비중, 그리고 미국과 중국 투자처 75% 비중이다. 가치주와 성장주, 아직은 펀더멘털이라 평가할 것이 없는 유망 섹터의 기술기업 주식에 적절히 분산해 놓았다. 종목적으로는 분산일 수 있겠으나, 사실 분야를 보면 겹치는 분야도 적지 않아, 잘 분산되어 있는 포트폴리오라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내가 내 거의 모든 재산을 과감하게 투자한 계기는 당연히 첫째가 '40대 후반 이후 비자의적 경제활동 단절에 대한 적극적인 대비'이며, 둘째는 최근 신간 집필을 하면서 공부한 결과로써 '특정 기술산업 분야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는 빠르게 대응하지는 못하였지만, 완전히 놓치지 않겠다는 '부의 창출' 기회였다.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연계되면서 2020년 11월을 넘기면 안 된다는 판단이 섰고, 즉각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2021년 2월 초까지 평균 수익률 30%, 게다가 배당수익률 약 1%를 나는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지금은 시장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수익률은 곤두박질쳐 1% 정도만 겨우 남겨두고 있다. 이마저도 단기적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도 마음은 평화롭다. 조급함이란 것이 생겨나지 않는다. 참으로 이상하다. 이전 같다면 단 몇만 원만 손실을 보아도 속이 쓰렸는데, 매년 기업의 변화를 면밀히 체크하면서 10년은 묻어둘 것이라 생각하며, 궁극적으로는 최소 2~3배 이상의 자산증식을 내게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 되려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도 한다.


금수저나 다이아수저가 아닌 국내/외 거의 모든 청년과 갓 중년 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영끌과 빚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다만,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즉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수준에서 과감히 자신의 경제적 자유(혹은 미래 생계 보장)에 투자한다면 응원하고 격려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 아니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속을 많이 상하게 했던 사람이다. 20대를 지내고, 30대를 생활하면서 공부보다는 연구자로서 학자로서 갈망을 가지게 되었고, 박사학위가 생계를 보장해주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그 길을 과감히 걸었다. 돌이켜보면 운이 좋았다. 국내 대표적인 명문 사학인 K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진행했고, 국내 최초의 종합과학기술 연구원에서 더없이 좋은 연구장비를 사용하면서 연구를 진행했다. 게다가 2013년에는 미국의 주요 주립대학교 중 한 곳에서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동실험을 진행할 기회도 가졌었다. 나 스스로는 학술적 성과와 학업적 성과 모두 긍정적으로 가질 수 있었다. 이로 인하여 대학원장 표창은 물론 정부부처 경연대회에서 대상 몇 차례를 수상하기도 했었다. 행복했었다. 그리고 뿌듯했었다. 또한, 연구자로서 학자로서 내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었기에 매일매일을 만족했다. 


다만, 거기까지 였던 것 같다. 수년간 대학교 교수와 주요 정부 연구기관이 정규직 연구원 공채에 도전했지만 서류전형에서 번번이 탈락하던가, 어렵게 도달한 최종 전형에서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 결과는 지금과 같은 불안정한 신분으로서 경제적 삶을 살아가는 삶이다. 몹시 화가 났고, 시간이 지나서는 우울감이 몰려왔고, 더욱 시간이 지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께는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그냥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당시 내 생각에 이번 생에서는 내 역할이 없는 것만 같았다. 


2014년 첫 시집 겸 에세이집을 출간했고, 2017년부터는 공학분야 전문 학술서와 사회비평서, 환경 교양서 등을 현재까지 집필 및 출간하고 있다. 지금은 이 활동을 통해서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으며, 연구자로서의 내 정체성을 확립시켜가고 있다. 물론, 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말이다. 훗날 수십 권의 내 저술서가 세상에 출간되어 누적되어 있다면, 그 훗날 언젠가는 나도 빛을 볼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이 활동은 계속할 것이다.


81년생 남자 주식투자를 하다.


시대적으로 웃프게도 우리는 삶을 치열하게 모험적으로 살아야만 환경에 내몰린 것 같다. 최소 5년, 그리고 10년이란 시간이 앞으로 더 지나도 이러한 환경은 크게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이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연구자로서 치열하게 리서치하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판단한 나름 논리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상황이 참으로 웃프다. 사실 웃프다의 의미처럼 웃기면서도 슬프다는 것은 아니다. 영단어로 표현하자면 내가 사용한 '웃'은 Ridiculous에 가까울는지도 모른다.


나를 비롯한 국내의 모든 非금수저인 20~30대, 그리고 갓 40대들에게 훌륭한 베팅을 하라고 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 베팅이 겜블링에 대한 베팅이 아니었으면 한다.



- 다음 3화에서 계속됩니다.

81년생 남자 주식투자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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