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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C Sep 05. 2015

2014년 여름, 예천 용문사[#1]

소백산 중턱의 한 고찰에서 나를 돌아보다.  

"여행"


한 번쯤은 낡은 배낭에 속옷과 겉옷 몇 벌, 양말 몇 족만을 챙기고 어디론가 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여행을 떠나면 그냥 전화도 꺼놓고 작은 암자에 거처를 정하고는 나를 바라보는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시간이 날 때에는 시집을 읽고, 노트와 볼펜을 들어 하루의 기록과 짧은 소회를 남길 수 있는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2014년 여름, 문득 떠났다."


2014년 여름,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과연 그랬어야 했던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도 그 당시에는 뭔가 주체할 수 없는 충격과 절망감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고 그러한 것들은 나에게 패배감을 맛보라는 듯 나의 몸을 조여오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아침 짐을 꾸리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저 좀 떠났다 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도착지는 예천 용문사"


예천 용문사의 주법당과 윤장대가 있는 법당들이 보이는 전경이다.


짐을 꾸리고 막상 직장과 집을 떠나왔는데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가 도착한 곳은 소백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예천  용문사였다. 그 곳에는 스님 두 분과 공양주 보살님, 사찰관리 및 사찰의 박물관 학예업무를 보시는 두 분의 팀장님과 연구사분이 계셨다. 반갑게 맞아주시고 한 동안 거처할 곳을 안내해 주셨다.


아, 아무것도 없는 작은 방이다. 세탁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설비도 없었고, 하물며 샴푸와 텔레비전 등  아무것도 없었다. 하물며 무선통신도 단절된 곳. 내가 바라는 곳이 었으나 순간 내가 여기서 얼마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걱정도 함께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800여 년이 넘은 고찰, 그리고 두 번의 대화재를 겪은 곳"


짐을 풀고 사찰의 사무처로 가서 간단한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의 안내사항과 사찰의 간단한 소개를 받았다. 사실 용문사라는 이름의 양평에 소재한 사찰 이름은 들었어도 예천의 용문사는 오기 전까지는 처음 이름을 들어본 곳이었다. 그런데 이 곳이 상당히 오래된 곳이고 문화재도 상당히 있고 우여곡절의 사연도 있는 곳이었다.


사찰을 총괄적으로 관리를 담당하시는 팀장님은 예천의 용문사가 약 800여 년이 된 곳이며 역사적으로 상당히 의미가 있는 사찰이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아마 영주의 부석사와 거의 주축이 되는 곳이었으리라 생각이 된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하지만 지금은 사찰도 대외적인 피알이 잘 되지를 않고 두 번의 대화재를 겪으면서 사찰 내의 대부분의 법당들이 소실된 이후 다시 건축을 하였으나 이전 초기의 모습은 아무래도 많이 없어진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사실, 예천 용문사는 그 산중의 사찰의 부지로는 규모가 내가 가본 고찰들 중에서 상당한 규모에 해당하는 곳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초기의 사찰의 모습을 복원하려는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현재까지 아직은 부족함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사찰에서 수도를 하고 공부를 하시며 일을 하시는 스님이 주지스님을 포함하여 두 분 밖에 없다는 것도 조금 그 규모가 작다라고 느껴지는 것 중의 하나였다.


"주법당인 보광명전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모셔져 었다."


예천 용문사의 주법당인 보광명전이다. 이 곳에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보통의 사찰들의 주법당은 대웅전으로 알고 있으며 주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알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참고로 내가 한자를 잘 모르는 관계로 사찰에서 근무를 하는 팀장님께 여쭈어보니 예천 용문사의 주법당은 그러니까 일반적인 사찰들의 대웅전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위 사진에 있는 '보광명전'이라고 했다. 이름을 보광명전이라고 한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보신 것이 아닌 지혜를 구하는 부처님이신 비로자나불을 모셔놨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천 용문사의 부처님은 지혜를 구하시는 분이 신 것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주법당인 보광명전에 들어가서 삼배를 올리고 법당의 한 켠에서 가부좌를 틀고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행을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모든 것을 뒤로 한 채로 달려온 곳이 지혜를 구하는 부처님이 계신 곳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 곳의 비로자나 부처님이 나를 운명적으로 불러들이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스님이 들어오셨고 저녁기도를 위해서 준비를 하셨다. 조용한 새들의 소리와 바람의 촉감, 은은하게 피어올라 가만히 멀리 가는 향내음이 나를 편안함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밤은 깊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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