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차우준
과학자는
인간이 속한 자연과 우주에 대한 사랑이 깊은 사람이다
공학자는
인간 생활에 대한 사랑이 깊은 사람이다
인문학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은 사람이다
사회과학자는
인간 사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은 사람이다
교육학자도 미술학자도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 깊은 사람들이다
궁극적으로 학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깊은 사람이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알고 싶은 욕망 탐구 깊이 있는 이해
이러한 것들을 결국 사랑의 한 방식들이다
학자는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이 전제된다
나도 당신도
궁극의 인간을 사랑하고 있다면
학자로서의 자격은 이미 갖추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보다 깊게 사랑하는 일만이 남았다
요즘에 들어서 내가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는 말이 있다. "나는 과학자다. 나는 학자다. 나는 학자가 될 것이다. 나는 연구자다." 과학을 했고 한동안은 금융업무를 하며 부분적인 필요한 연구를 수행했고 앞으로 대학이나 연구소에서의 근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연구를 할 것이다. 물론 대학이나 연구소가 아니라면 실험을 해야 하는 연구들은 제한이 되겠지만 내가 하는 업무들과 주변의 관심을 가져볼 수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는 제한적이지만 나름의 연구를 하고 논문도 쓰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를 잊지 말자! 나는 학자다.'
이것이 나의 다짐이고 앞으로의 삶의 신념이 될 것이다.
과학자라는 말을 생각하다가 '과학'을 빼고 다른 낯선 단어들을 붙여보니 과학자의 궁극의 의미는 오롯이 연구를 하는 연구자 즉, 학자로 귀결되는 것 같았다. 학자, 그래 학자. 어느 분야이던지 그 분야에 대한 이해와 현상에 대한 분석, 보다 좋은 방향으로의 움직임 이러한 목적을 가지는 사람들이 학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연구를 하는 사람이다. 연구,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없으면 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계속적인 나와 연구대상으로의 끊임없는 질문, 탐구, 알고자 하는 욕망, 깊은 이해가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은 사랑이라는 단어와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는 개념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모든 학문은 인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과학자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거나 인간이 속하는 자연과 우주에 대한 깊은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이다. 공학자는 인간에게 이롭고 유익한 방법과 기술들에 대한 사랑이 깊은 사람들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인간과 그 인간이 구성하고 있는 사회에서의 현상과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들에 깊은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인문학자들도, 교육학자들도, 미술학자들도 각자의 방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하여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인간이 빠져버린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세상의 학자들을 본다. 정치인들이 그렇고 기업인들이 그렇고 주변의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다. 이제는 본질을 찾아 다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시나브로 본연의 학자의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