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준
가을도 어느덧 지나가고
후두둑, 하고 떨어진 삶의 자리를
허연 숨결들이 보듬고 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가을 나뭇잎들처럼
가슴속 가득했던 기억들
겨울 알리는 비와 함께
후두둑, 하고 떨어지고 나서
허연 눈물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서재에서 오래된 책을 꺼내보다
책 사이에 꽂힌 당신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눈망울과 코 그 입술
그 모든 것들이 손끝 촉감으로 느껴지는 듯합니다.
옷을 입어도 난방을 해도
오늘은 가슴을 헤집는 한기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당시에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리라 믿었습니다.
시간이 바람이라면
누군가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당신에 대한 나의 아련함은
불어 가는 시간에 흩어지리라 믿고 싶었습니다.
아마 지구가 둥글기 때문일까요?
흩어졌던 나의 아련함이 내게로 간혹 돌아오는 것은
아마 지구가 둥글기 때문일까요?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다시 그대가 가득한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책상 책꽂이에 오랜 시간 꽂혀진 책과 서류들을 보다가 지난날 군 장교시험 합격증과 대학원들의 입학허가서 등이 모아져 있는 파일 첩을 꺼내보았다. 약간은 모서리 부분들이 누렇게 변한 종이들이 내 기억 속의 시간들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몇 장의 편지들도 있었다. 지난 시간 속에 고이 접혀져있던 나의 모습들이 슬라이드 사진들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색이 바랜 편지봉투 하나를 또 열어보았다. 그 봉투에서는 지난날 사랑하던 사람의 얼굴과 나의 얼굴이 그려진 캐리커처가 있었다. ‘아, 이게 왜 여기 있지……?’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아마 지난날 기억들을 정리하고 처분을 하면서 미쳐 있는 줄도 모르고 보관되어진 것이다.
그림을 마주하고서 쉽게 그림을 접어 넣지를 못했다. 그리운 것도 가슴이 아린 것도 아니었지만 뭔가 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생기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참, 당시에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설레기만 했었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내 삶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했지만 정작 내 목적이 무엇인지를 몇 년간 잊고 지낸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었다. 이룬 것도 있고 나름 쉼 없이 지내옴에 대한 뿌듯함이 있다는 것은 한동안 나의 자부심이자 기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궁극의 목적의 목표 달성들에 불과한 것뿐이다. 나의 삶의 목적은 누구나 그렇듯이 ‘행복하자’는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면서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하지만 나는 요 몇 년 동안 행복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함께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다. 당신은 아직 내 삶 속에서 나를 일깨워주는 그런 사람이다. 지금부터라도 목표가 아닌 목적을 생각하며 삶을 살아가고 싶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인지? 다시 나에게 질문부터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