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의 우유부단함
오늘은 지난번 장비 편에 이어서 성격 때문에 일을 그르친 인물 3편으로, 원소의 우유부단함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원소는 원래 사세삼공 명문가 원씨 집안의 서자 출신으로, 위세 높은 집안 덕에 젊은 시절부터 출세해 승승장구했다. 지금으로 얘기하면, 금수저 엘리트에 해당하는 서원팔교위(후한 말, 영제 시기에 황제의 직속군인 서원군이 창시되었는데, 이를 이끈 여덟 교위를 의미한다)의 중군교위였는데, 여기에는 훗날 위나라의 시조가 될 조조와 순우경도 포함되어 있었다.
원소는 동탁이 집권할 당시, 하북의 발해태수로 외방으로 쫓겨나 있다가 반동탁연합군이 결성되자, 맹주의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러나 동탁이 헌제를 데리고 장안으로 천도(도주라고 말하고, 천도라고 쓴다)하자, 협력하지 못하고 서로 치고받고 싸우며 분열해 가는 연합군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그 분열에 뛰어들어 군웅들의 싸움에 불을 붙인다.
그 과정에서 기주자사 한복의 영지를 빼앗고, 기주를 차지해 비옥한 영토를 손에 넣는다. 그 후, 북평태수 공손찬과 하북의 패권을 두고 겨루지만, 뛰어난 모사들과 장수들의 활약으로 결국 승리해 북방의 패자가 된다.
그 후, 조조와 중원의 패권을 두고 겨루는 과정에서 유비가 원술의 잔당을 괴멸시킨 후, 조조의 부하 차주를 죽이고, 서주를 차지하자, 유비와 연합해 조조를 공격하려 한다. 그러나 막내아들이 병에 걸렸다는, 사소한 이유로 출정의 시기를 뒤로 미룬다. 유비가 조조에게 패해 혈혈단신 패장이 되어 원소에게 찾아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출정의 결정을 내린다.
연진과 백마의 전투에서는 조조의 계책에 빠져 관우의 손에 안량과 문추라는 뛰어난 장수들을 잃게 되고, 80만 대군을 일으켜 대대적으로 허도를 치기 위해 군대를 관도로 집결시킨다. 관도대전에서 적군인 조조군의 허실을 탐지한 허유의 계책을 물리치고, 허유가 공금을 횡령했다는 봉기의 상소만 믿고, 허유를 문책하는 큰 실수를 저지른다. 그 결과, 허유는 조조의 편으로 가담하게 되고, 조조는 허유의 진언에 따라 오소의 군량창고를 모조리 불태우고, 관도의 원소 진영을 함락시킨다.
관도에서 대패한 후, 창정 전투에서 자신의 아들들인 원담, 원희, 원상을 불러 모으지만, 평소 총애하던 아들인 원상에게만 편애하고, 장남인 원담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창정 전투에서도 십면매복의 계책에 걸려 대군이 모조리 몰살을 당하고, 실의 속에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평소 후계자를 확정시키지 못했던 터라 원소의 심복들은 저마다 원담과 원상을 지지하며 형제간 골육상쟁의 길을 가게 된다.
원소는 평소 사소하면서도 급박한 일에는 민첩하고 능수능란한 모습을 보이곤 했지만, 정작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결정을 미루며,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여러 번 조조를 이기고, 중원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그때마다 그 기회를 놓쳐 버린다.
예를 들어, 조조가 이각과 곽사의 싸움을 피해 장안에서 낙양으로 도망쳐 온 천자를 옹립했을 때, 원소 역시 천자의 구원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모사들의 제각기 다른 진언을 듣고, 차일피일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조조에게 선수를 뺏겨 버리고 만다. 결국 조조가 한나라 조정의 모든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또, 원소는 후계자 결정에 있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인다. 평소 총애하던 부인인 유씨의 소생 원상을 특히나 이뻐해 내심 후계자로 점찍어두고 있었다. 그러나 청주자사인 장남 원담의 원소군 내에서의 입지도 있는 지라 쉽게 운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원소는 원담을 형의 양자로 입적시키고, 자신의 호적에서 제명시킴으로써 그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후계자 자리에서 제외시키려 했다. 그러나 끝내 후계자 자리를 완전히 정하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원담과 원상 형제간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원소가 만약 우유부단하지 않고, 기회가 올 때마다 시의적절하게 중요한 결정들을 내렸다면 위나라 시조의 자리는 조조가 아니라, 원소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북방의 패자, 중원의 패자, 그리고 천하통일에 가장 가까웠던 군웅이었던 원소. 그의 치명적인 성격적 결함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원소를 유비, 조조와 같은 뛰어난 영웅으로 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군주로서는 못내 아쉬운 하북의 패자 원소였지만, 그가 있었기에 조조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