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없어도 문제?

2026년 1월 27일 화요일

by 제갈해리

평일 오전에 출근하는 영등포 매장은 다른 매장들에 비해 할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계산 업무와 매장 관리 업무는 여사님이 담당하시고, 물건 진열과 청소는 장애우 친구가 담당한다. 나는 여사님이 시키시는 일만 하면 되는데, 출근하자마자, 들어온 물류 검수와 유통기한 확인, 여사님이 안 계실 때 카운터 계산 업무와 식권 판매 업무가 전부다. 영등포 매장에서 일하는 4시간 동안 손님은 거의 오지 않아 매장이 한가하기 짝이 없는데, 여사님이 카페에서 매장으로 돌아오시면 단순 계산 업무조차도 하지 못하고, 그저 앵무새처럼 반복적으로 여사님 옆에서 손님에게 인사를 드리기만 할 뿐이다.


일한 지 이제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하는 업무가 거의 없어 시간만 축내고 있는 것 같아 뭔가 양심에 찔리기도 하고, 쓸모없고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여사님은 정신없이 카페와 편의점을 왔다갔다하시면서 바쁘게 업무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진열과 청소 역할을 맡은 장애우 친구보다도 더 적은 업무를 하고 있다. 장애우 친구가 나보다 업무를 많이 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는 건 아니고, 단지 나에게도 제대로 된 업무가 배정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다른 매장에서는 검수, 진열, 청소 등 다양한 업무를 해왔는데, 영등포 매장에서만 유독 할 일이 없으니, 뭔가 의욕도 생기지 않고, 일할 맛도 나지 않는다. 일이 너무 많으면 힘들다고 하겠는데, 일이 너무 없으니, 힘들다고 하기도 뭣하다.

이런 내용을 꼬북이와 여동생에게 하소연했더니, 둘 다 하는 말이 일 안 하고 돈 벌어가면 그만큼 좋은 게 어딨냐고, 꿀직장을 얻었다고 되려 좋겠단다. 일 많아서 힘들지도 않고, 닦달하는 상사도 없는데, 얼마나 좋냐고 하면서 너무 따지지 말고 받아들이고 일하라고 한다.


두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듣다 보니,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좋게 생각해 보면 일도 어렵지 않게 하고, 밥도 공짜로 먹고, 연차도 쓸 수 있고, 공휴일에 쉬고... 이만큼 좋은 직장이 없다. 괜히 내게 일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린 것 같다.

그리고 여사님이 나에게 업무를 주지 않으시는 것도 이제 이해해 보려고 한다. 여사님의 업무 스타일이 원래 본인이 다 해내려고 하시는 완벽주의 스타일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일한 지 아직 한 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업무를 온전히 맡기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 일단, 지금은 내게 주어진 작은 업무라도 최선을 다해서 해내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새로운 업무들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여사님이 혼자 다 일하시는 것에 괜히 질투나 시기를 느낄 필요도 없고, 장애우 친구와 나를 굳이 비교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나로서 내게 배당된 업무에만 충실하면 된다. 괜한 투정과 불만을 가져서 좋은 직장을 잃는 누를 범하지 말자. 내게 주어진 환경에 제대로 적응해 나가는 지혜를 발휘해 보자. 화이팅, 제갈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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