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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노 Sep 06. 2017

와이노의 세상보기2

2016.8.   내 삶을 바꾸는 출신학교차별금지법을 꿈꾼다.

이 글은 2016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주관 출신학교차별금지법 공청회  발제문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비록 책을 소개하는 글은 아니지만 선생님들과 함께 고민을 공유하고 싶어 나누려 합니다.



즘과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출신학교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배부른 생각 같고 먼 미래의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시기야 말로 출신학교차별금지법을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어야 하는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출신학교에 따라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수없는 차별들이 지금의 망국적 상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적 위기 사태를 초래한 현 상황을 만드는데 조력자로, 혹은 직간접적 수혜자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 특정 대학 출신입니다. 최근의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그들이 대부분 학연으로 엮여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의 실력이 아닌 선후배, 인맥, 학맥이 만든 지도력의 적나라한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20살 시절 시험 잘 치는 능력이 곧 실력이라고 생각한다면, 특정 대학출신이 국가기관의 상층부를 장악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며칠 전 부모님 댁에 함께 식사할 일이 있어서 본가에 방문하여 식사 후 아버지와 함께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저희 아버지는 소위 SKY 대학 중 한 곳을 나오셨습니다. 불행히도(?) 아들은 지방교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최근 국가의 말도 안 되는 사태에 대한 보도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비선 실세니, 문고리 삼인방이니 하는 사람이 구속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함께 흥분하고 분노하며 뉴스를 보며 이야기 하던 중 60대인 저희 아버지가 갑자기 하시는 말씀이 “역시 서울대가 다 해먹는 구나. 역시 높은 자리 가려면 최소 SKY는 나와야 명함이라도 내미는 거지!” 별 생각 없이 하신 아버지의 말 속에서, 우리의 의식구조를 지배하는 출신학교에 대한 당연한 차별의식에 대해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방에서 초중고를 나오고 지방대에 입학하여 지방에서 취업하여 살고 있는 저에게 20살 전후에 입학한 대학이 그 사람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사고방식입니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대학이 중요한가? 실력이 중요한 것 아닌가?’하면서도 막상 학교에 일할 사람들을 뽑거나 계약할 일이 있을 때면 사람들을 출신학교로 판단하는 부끄러운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가 깨달게 된 사실은 출신학교로 사람들과 제 자신을 판단한다는 것이 제 생각 이상으로 저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여러 연구회모임이나 교사시민단체 활동을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해왔지만, 그러나 한 번도 그 모임의 대표가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저의 역량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저의 출신학교가 수도권이나 소위 명문대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냥 이곳 부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감당해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부산’에 사는 제가 ‘부산’교대를 나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지방에서 국립대 출신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과 비슷한 기능을 합니다.) 제가 부산의 다른 사립대를 졸업했거나, 부산이 아닌 다른 곳에 교사로 임용되었다면 저의 생각은 또 달랐을 것입니다. 지방국립대 출신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취업하게 되면 또 하나의 서열화에 의한 출신학교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교육의 몇 안되는 교육에 대한 국민적 합의 중 하나가 바로 이 출신학교 차별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제는 20대 초반, 4년 밖에 보내지 않는 출신대학이 인생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현실과 이를 당연시 하는 우리 사회의 의식이 사회를 점점 더 활력이 떨어지게 하고 비효율적인 경쟁과 사회적 비용의 낭비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학생과 학부모님들을 힘들게 하는 폭압적인 학습강요와 기형적인 사교육 또한 마지막에는 이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 전체에서 출신학교에 따른 열등감, 혹은 우월감을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때문에 내 자식들은 이런 차별을 겪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에 부모님들도 죄책감과 미안함 감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이 경쟁과 사교육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15년차 초등교사 이면서 동시에 초등학생 자녀와 유치원 학생을 둔 두 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합니다. 아이를 낳기 전 혹은 아이가 어린 시절에는 학부모님들이 우리 반 학생들을 왜 그렇게 사교육으로 선행학습을 시키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는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커가면서,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점점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불안함”입니다. 우리 아이만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두려움, 특히, 체면문화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이기에 명문대에 나의 자녀가 들어가 못했을 때, 명문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취업은 할 수 있는 대학이라도 들어가지 못했을 때, 느껴야 할 주위 시선들이 부모님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때문에 점점 연차가 더해질수록 학부모 상담이 어려워집니다. 예전에는 학부모님들께 체험 위주의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학교교육성실하게 하면 된다고, 아이의 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이제는 쉽게 그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학부모님들의 마음을 공감하면 할수록 쉽게 말씀드리기 어려워집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출신학교차별은 공고하고 뿌리 깊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출신학교 금지법은 새로운 희망의 단초라고 생각합니다. 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일상의 의식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시행된 ‘선행학습금지법’ 물론 이 법은 완벽한 법은 아닌 반쪽짜리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법이 시행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유익은 모든 사람들은 선행학습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학원은 선행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으로 인해 선생님들은 더 자신감 있게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 선행학습의 위험성과 무용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선행학습법 만큼이나 이 법 또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최근 일어나는 국가적 사태를 보면 김영란법은 권력자에게는 유명무실한 법인 것 같고 영향이 있더라도 힘 있고 높은 신(?)분들에게만 의미 있는 법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법이지만 이 법이 시행되면서 이 법을 핑계(?)로 학교내, 혹은 직장내에서 많은 관행들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학부모님 들은 학교 갈 때 ‘선물을 들고 가야 하나’하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도 이 법의 시행을 통해서 학교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찬조 관행들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물론 촌지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진짜 힘 있는 권력자들은 가뿐히 이 법을 피해가면서도 그들이 이제까지 해온 대로 여전히 뇌물로 일들을 처리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 법을 통해서 당연시되고 너무나 만연한 촌지 및 뇌물문화를 사회 전체적으로 공론화 시키고, 이제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사회로 간다는 것을 모든 국민들에게 다시금 알리고 선언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으로 선행학습을 금지하고, 법으로 뇌물을 금지하고, 심지어 인성도 법으로 진흥하겠다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많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이렇게라도 우리 사회의 의식을 한 단계 성숙시킬 수 있다면, 이러한 법은 얼마든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때로 학습의욕이 현저히 떨어진 학생들의 학습동기유발을 위해 보상이 필요 합니다. 그리고 그 보상은 처음에는 칭찬스티커나 사탕 같이 눈에 보이는 외적 보상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학생들 스스로의 만족감, 교사의 인정과 같은 내적 보상으로 발전시켜 가야 합니다. 압축적인 경제성장은 가능하지만 압축적인 의식의 성장을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위와 같은 우리사회 의식을 바꾸기 위한 금지법들은 외적보상과 유사합니다. 이 법은 처음에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잘 정착되지 않아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법이 우리사회의 의식 성장을 촉진 시키는 데에는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출신학교차별금지법 또한 법으로 제정되는 과정이 쉽지 않을 수도 있고, 이 법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이 제정 되고 처벌조항이 생긴다면 앞의 법들처럼 우리의 일상과 문화 사회 분위기를 많이 변화 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수십 년간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출신학교에 대한 잘못된 신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두가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차별에 대해서 금지하는 법이 제정된다면, 많은 학부모님들과 학생들 그리고 선생님들을 고통에서 자유롭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더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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