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자체로 효도를 다 한 아들

by 해피영희

“아쿠 요즘 세상에 아를 3명이나 어째 키우노? 검사해 보고 낳아라. 가시나모 낳지 마라. 니 힘들어서 안 된다. 내가 알아본 병원이 있으니까 알려주께”

첫째 딸에 이어 둘째의 임신 소식을 전해 들은 친정엄마는 사전 성별 검사를 하라는 권유를 했습니다. 2001년 딱 20년 전, 참 그때까지만 해도 남아선호 사상이 사회적으로도 만연했지만 더 큰 문제는 아들 지상주의인 저희 시댁 문화였습니다.


시어머니가 그랬습니다. “거푸집도 지꺼는 많으모 좋다. 아들 낳을 때 까지 낳아라”

여기서 거푸집은 안타깝게도 딸을 의미합니다. ㅠ

남편은 너무도 당연한 듯 둘째가 딸이면 셋째까지만 낳아보자고 하고 그야말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자라는 동안 1남 5녀의 형제 관계에 언제나 오빠가 우선인 상황이 늘 불만이었고 친정엄마와 가장 큰 갈등 요인이었습니다. 게다가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만나 여성 인권에 대해 고민을 했던 제가 성별 문제로 출산을 고민하는 장면을 만난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선 시대도 아니고 단순히 성별이 여자라는 이유로 한 생명이 태어나 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 낳자. 낳아 보고 딸이면 셋째는 그때 가서 고민하자. 설마 둘이 벌어 밥이야 굶기겠어.’


임신 8개월이 넘어가자 진료를 하던 의사 선생님이 무심히 툭 한마디 던집니다.

“아이 장난감은 파란색으로 준비하시면 되겠네요.”

와우~ 아들인가 봅니다. 남편이 얄밉도록 좋아합니다.

시골부모님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너무도 기쁜 나머지 그 주 주말에 산청에서 울산을 올라오셨습니다. 단지 너무 기뻐 며느리에게 밥을 사주기 위해서... 흠....


그렇게 2002.3.2. 아들이 우렁차고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탄생의 신비로움은 이미 첫째 때 경험했지만 또 다른 진통과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2002년도에만 해도 산후조리는 친정엄마나 시어머니들이 집에 상주하며 돌봐주는 방식이 흔했습니다.


아들 손자라는 기쁨으로 시어머니는 저의 의사와 상관없이 예정일보다 10일이나 일찍 저희 집에 올라오셔서 손주의 탄생을 기다리는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시어머니의 손자 사랑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 딸아이 때는 손 타면 엄마 힘들다고 함부로 안아 주지도 못하게 했는데 이번에는 자꾸 안아 주는 아이가 똑똑하다며 한시도 손에서 내려놓지를 않으시는 겁니다.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어찌나 서운해 하시던지 의도하지 않은 죄를 짓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지나친 손자 사랑이 처음에는 크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어떻게 남을 믿을 수 있냐며 시골로 데려가 당신이 키우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첫째도 아파트 아주머니와 어린이집의 도움으로 키웠는데 둘째라고 안 될 이유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는 무조건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불안하면 제가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했지만 남편과 시어머니는 저는 직장을 계속 다니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한 명도 제 편이 없는 겁니다.

남편, 시누이, 심지어 친정엄마까지도 시어머니가 하자는 대로 하라고 말하는 겁니다.

선택권이 박탈당한 억울한 상황은 산후 우울증이 찾아왔고 매일 지옥 같았습니다.

게다가 아들은 어찌나 예민하던지 체력적인 에너지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공무원 공부를 할 수 있을 만큼 순둥이였던 딸과 달리 아들은 1시간 단위로 우유를 먹고 저녁 6시가 시작되면 이유 없이 울기 시작하여 새벽 1시가 되어야 겨우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아토피는 또 얼마나 심하던지 피부가 벗겨져 피도 나고 이래저래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출근 날은 다가오고 어쩔 수 없이 아들은 시골 할머니 집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딸과는 또 다른 부모의 인연을 예고한 채 우리는 자동차로 4시간 이상 떨어진 먼 물리적 거리를 장애물로 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참 묘합니다. 육아 문제로 시어머니와 그리도 힘든 감정을 준 아이였지만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할머니와 친척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제게는 시댁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아들 출산에 대한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준 고마운 존재입니다.

누군가는 저 아줌마 정말 답답하고 무식한 소리 한다 여길 수 있지만 제가 바꿀 수 없는 시 어른들의 사고와 그분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생각하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었습니다.

실제 두 명의 아래 동서들도 아들들을 낳았고 시어머니는 그 사실을 평생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탄생자체로 축복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정말 우리 아들은 탄생 자체로 효도를 다 해 준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고맙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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