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해피영희의 필요충분조건입니다.

by 해피영희

7월에서 8월로 넘어가는 이 시기는 아마도 가장 뜨겁고 치열한 여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온 집안을 환기시키고 찬물 샤워로 몸을 식혀가며 버텨 왔지만 2021년 8월의 첫 토요일 오후는 더위가 유독 심해서 인내심에 한계가 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일까? 문득 알 수 없는 무식한 신념을 인지하는 순간 너무도 쉽게 연약한 실체로 변해 버립니다. 창문들을 꽁꽁 닫고 에어컨 전원버튼을 누릅니다. 작년여름 이후 처음 작동하는 기계들이 어설프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느라 시원한 바람을 만나기까지 제법 몇 분이 걸립니다.

좀 전까지 열 가마 같은 더위로 소화 기능까지 약해졌던 몸의 긴장이 누그러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남편이 어린아이 마냥 너무 신나합니다. 불편하면 자기 손으로 에어컨을 켜도 될 터인데 이 순진한 아저씨는 마누라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대단한 일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참 신기합니다. 저는 살다 정말 무섭고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남편을 찾습니다.

21살 여름에 만난 남편은 군대를 막 제대한 군기가 가득한 참 멋진 오뺘야~ 였습니다.

그때는 늘 그랬습니다.

“오빠만 믿어라~ 오빠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고~ 내가 손에 물 안 묻히고 행복하게 해 주게~”

얼마나 듬직했는데요. 어린마음에도 진짜 내가 의지할 사람이 생긴 것 같아 행복했지요.


그런데 결정적으로 사람이란 존재는 타고난 성향이 있고 언행일치라는 것이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어린 저는 몰랐습니다. 남편은 여유가 자산이고 오늘 안 되면 내일 하는 사람이지만, 저는 조급증과 책임감이 생명인지라 죽지 않으면 오늘 당장 어떻게든 불편함을 해소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형광등이 고장 나도 의자를 딛고 서 있는 것은 저이고 가구가 부셔져도 드라이버를 들고 있고 가족 중 누군가 불편한건 두고 볼 수 없으니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제가 중심에 있는 겁니다.

성향에 맞춰 제가 주도하는 시간이니 대부분은 큰 문제가 없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 찾아드는 피로감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 순간이면 남편에게 알 수 없는 삐죽거림이 올라옵니다. ‘아니 좀 알아서 해 주면 안 되나?’

그런데 이내 인정합니다. 남편은 자신이 주도하지는 않지만 한 번도 제가 제안한 사안들을 크게 반대한 적이 없습니다. 제게는 유전적으로 좋은 부모에 대한 세포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건 우리 부모님과 그 부모님들이 그러했기에 저에게도 내려온 것으로 압니다.

여하튼 아이들이 어릴 때 저는 정말 열심히 좋은 부모 프로젝트를 했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주말이면 하루도 쉬지 않고 아이들이랑 도서관, 여행, 영화, 놀이터, 공연 등을 다녔고 4년 동안 새벽에도 가족들이 함께 운동을 했습니다.

그 시간에 늘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주말 아침이면 남편의 한마디 “오늘은 뭘 할 거야?”

일단 참가자의 자세는 완벽하게 잡혀 있었던 겁니다.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워킹 맘으로 살아가는 저는 남편보다 훨씬 더 많은걸 희생하며 살고 있기에 남편은 복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삶이 심술부리는 고약한 상황들이면 늘 남편을 방패막이로 내 세웠습니다.

험상궂은 아저씨들이랑 협상이 필요하면 경찰제복을 입은 남편은 늘 제 옆에 떡하니 앉아 있었고 자동차 수리의 카센터 방문은 늘 남편 몫이고, 차마 사는 게 힘들어 겨우 목숨 줄이 붙어있는 순간에도 그 사람은 늘 말없이 나를 안아 주었습니다.


더위에 지쳐 누워있던 남편이 아르바이트 간 딸을 태우러 가려고 준비를 합니다.

“나랑 같이 가자. 내가 저녁으로 소고기 사줄게” “오~ 정말? 좋다 좋아.”

어린아이 마냥 신나하며 따라 나섭니다. 나이 50이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20대 연애시절 철딱서니 모습입니다.


주차장에 차가 들어서는 순간 계단을 팔짝팔짝 뛰어내려오는 꽃 한 송이가 보입니다. 얼굴이 행복해 보이고 몸은 아주 건강해 보입니다. 우리 부부의 보물입니다.

“ㅇ아 아빠가 소고기 사 준대, 좋지?”


참숯 화로 위로 선홍빛 소갈비가 부드럽게 지글거리기 시작합니다. 사장님이 텃밭에서 따온 상추는 더운 여름열기로 여기저기 반점이 보입니다.

“음~ 맛있다~”

“많이 먹어.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한테도 돈 쓰는데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인데, 이거 하나 못 사 주냐고”

양념으로 고소하고 짭짤한 고기가 남편의 따듯한 말 한마디에 더욱 촉촉하게 변합니다.

배구 올림픽 응원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닭똥집도 주문하고 맥주도 한 세트 안고 옵니다.

고기와 먹은 소주 3잔에 연이어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가 기분 좋은 마비를 가져옵니다.

남편을 꼭 안아 봅니다. “야, 에어컨 참 좋다. 낮에는 당신 몸이 닿으니 너무 더웠는데 지금은 당신 품이 따듯해. 돈은 역시 좋은 거야. ㅋ”


남편이 귀엽다는 듯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 최영희라는 사람을 세상이 판단할 때 여러 가지 요소가 기준이 되겠지만 그 중 남편은 정말 중요한 존재이고 최소 50% 이상일 거라고.


21살 마냥 열린 마음으로 만난 그 사람! 나의 20대, 30대, 40대, 그리고 또 현재와 그 이후~

그렇게 한결같이 존재하는 든든한 울타리~ 참 제가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남편은 해피영희의 필요충분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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