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빨대 값 갚을 때까지 건강해야 해

by 해피영희

고3이던 아들이 드디어 2021학년도 대입수학능력 평가를 쳤습니다. 3년을 준비해온 시간이니 온 가족이 긴장감으로 함께 한 하루였습니다. 남편과 저는 시험이 시작되는 아침부터 시작하여 마치는 시간까지 약 7시간을 인근 절에서 108배를 하며 아이와 마음으로 함께 했습니다.


교문 밖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약 10분 동안 아들을 키워온 19년 동안의 사연이 영상으로 지나가며 알 수없는 감동과 울컥함이 마음에 올라왔습니다. 어느새 눈에 눈물이 맺히며 이제 이렇게 우리 아들 인생의 1막이 마무리 되어 가는구나 싶었습니다.


드디어 수험생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또래 아이들이니 모두가 아들 같아 제 눈은 허둥지둥 거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보드라운 손 하나가 저의 팔을 잡습니다. 눈을 돌려보니 아들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순간 모든 것을 인지하고 일부러 과장되게 웃으며 아들을 안아주었습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만 한 놈이고 공부가 본인이 제일 잘하는 것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도 과학고를 준비했는데 2차 면접에서 탈락하여 나름 아픈 개인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은 과학고 실패를 일반고에서 만회하겠다며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목표로 나름 열심히 준비해 왔습니다. 그 대학이 그리 쉽고 누구에게나 열어주는 공간은 아니기에 우리 가족 누구도 감히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마친 아들 얼굴을 보니 뜻대로 되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제 마음속에 제일 두려운 것은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못가는 것이 아니라 그로인해 아들이 혹시나 정신적 상처로 인생의 구덩이에서 헤 메는 고통의 시간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본인이 겪어야 하는 삶의 숙제가 될 것이 당연하기에 그런 시간은 제발 오지 않기를 빌었습니다. 아니 오더라도 잘 버텨주기를 늘 기도했습니다.


살아보니 인생은 절대로 개인의 희망대로 사연을 열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또 새로운 사연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19살 아들은 그 오묘한 인생의 원리를 알 수 없습니다. 그 나이에는 당장 내가 원하는 것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분명 큰 좌절을 느낄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대학입시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제법 큰 시련이니까요.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방안에 들어가 가채점을 시작했고 남편과 딸은 난감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도 답은 없는지는 지라 잠시 어색하고 어려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사실 저도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제가 늘 신념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 번쩍 머리에 들었습니다.


‘부모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 앞에서 의연해야 한다.’

“자자, 우리 저녁 맛있는 거 먹자. 뭐 먹을래? 코로나라서 외식도 어려운데 시켜 먹자. 딸, 뭐 먹을래? 아들한테 물어보자”

“아들, 뭐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거 사줄게”

“됐어. 아무거나 시켜”


그러니 딸이 그럽니다. “엄마, 이왕 이리된 거 술이나 한잔 하자. 치킨에 안주 좀 준비하고 술 마시자. 준이도 오늘 같은 날 우리랑 함께 마시면 괜찮아. 나도 수능 마치고 엄마, 아빠가 술 사줬잖아”


드디어 우리 가족의 즐거운(?) 술 파티가 열렸습니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각자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저는 ‘괜찮다’는 단순한 단어만 반복하는데 동생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딸이 갑자기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합니다.


“준아, 너 재수해라. 누나가 볼 때 너 그 성적으로 대학가면 평생 후회한다. 네 실력으로 내년에 그 성적보다 더 낮은 점수 받기 힘들다. 우리 집에 누나를 비롯해서 아빠, 엄마 모두 다 자기 한 몸은 책임 질수 있다. 너 하나 공부시킬 형편은 된다.”


그러더니 휙 저를 보며 “엄마, 맞지? 우리 집 준이 재수시킬 정도는 되지? 내가 대학학비 아껴 줬으니까 그 정도 해주자”


딸아이는 서울 최고의 유명대학에 4년 전 장학생 합격을 하고도 진로를 생각해서 교대를 갔고 등록금도 1백 만 원대, 용돈도 아르바이트로 해결하고 경제적으로 그야 말로 엄마인 저에게는 복덩어리입니다. 2021년이면 3학년이 되니 이제 몇 년 만 있으면 직장도 뭔가 뚜렷함이 나온다며 늘 걱정 말라는 기특한 아이입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가슴이 찡 해집니다. 목소리에 기운이 가득 들어가며 말합니다.

“그럼, 당연하지, 그래서 아빠, 엄마 이렇게 열심히 버는 건데.. 준이가 원하면 해줄게”


“준아, 기죽지 마라. 엄마가 늘 말했지. 살다 정말 어렵고 힘든 순간을 만나면 엄마에게 오라고. 그럼 따듯한 밥 한 끼 해 준다고. 지금이 그 시간인거 같다. 너에게는 늘 우리 가족이 있어. 너 우리가 빨간 팬티는 부적이라며 너 시험 한 달 전 부터 빨간 팬티만 입은 거 알지? 미신이라도 너를 위해서라면 어떤 작은 행동이라도 우린 한다. 그러니 절대 기죽지 마라”


아들이 벌컥 벌컥 술을 몇 잔 마시더니 히죽 히죽 웃으며 술 취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그래 그래, 모두 고마워. 사실 한 번 더 하고 싶어. 나 진짜 아쉬워. 그런데 야~ 술은 진짜 신기하다. 기분이 막 좋아진다. 이래서 술을 마시는 구나. 그런데 너무 잠이 온다. 나 조금만 자고 와서 다시 마실게. 엄마 사랑해~”


순간 너무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최소한 아들이 실의에 빠져 인생의 구덩이로 빠져들지는 않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수능성적표를 받은 며칠이 흐르자 아들은 여기 저기 확인하고 고민하더니 어느 재수학원의 정보를 제게 내밀었습니다. 자기가 알아보니 이곳이 가장 좋은 것 같다며 이미 서류등록은 했고 학원비만 입금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와우~ 한 달 학원비가~ 후덜덜 합니다. 무려 380만원. ㅎ 1만원 옷 살 때도 며칠을 고민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아들이랑 약속한 것이 있으니 입안에 맴도는 말을 함부로 뱉을 수가 없어 프린트 된 종이만 뚫어져라 바라보았습니다.

“엄마, 회사 나가서 조금만 더 알아보고 결재할게. 학원 알아보느라 수고했어.”


상담을 위해 학원에 전화를 하니 너무 바쁘다며 제대로 통화는 되지 않고 조만간 등록 마감되니 입금하지 않으면 수업을 들을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돈을 입금 하니 학원에 등록되었다는 문자메시지가 들어옵니다. 이내 연말 바쁜 업무로 아들일은 덮혀 버렸습니다. 밤 11시 늦은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오니 아들이 반갑게 방에서 뛰어나옵니다.

“엄마, 오늘 등록됐다고 문자가 왔어. 엄마 입금했구나.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하루 만에 입금했어? 신기했어.”


“당연히 마이너스 통장에서 보냈지. 이놈아, 엄마가 최선을 다한 거니까 너 진짜 열심히 해야 해. 마지막 너 한 방울 엑기스까지 다 넣는다는 생각으로 해.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리는 거 아니야. 네 복으로 너는 한 번 더 기회를 갖지만 두 번은 없어.”


“응, 엄마, 너무 고마워. 우리 엄마 이렇게 힘들게 벌어온 돈으로 공부하러 가는 거 알아. 그래서 너무 미안해. 그런데 엄마, 나는 어릴 때부터 될 듯 말듯 하면서도 한번도 1등을 해 본적이 없어. 그래서 한번은 1등을 해보고 싶어. 만약 내년에 안 되면 미련 없이 다른 거 할게”


아쿠~ 이놈이 또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런 기특함(?) 때문에 매번 아들에게 넘어갑니다.

고달프지만 흐뭇한 아이러니를 늘 느낍니다.

그 1등이라는 것이 누군가 보기에는 헛되고 속물의 상징일 수도 있지만 엄마인 저는 자신의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위해 한 번 더 도전해 보겠다는 아들이 먼저 보였습니다. 그런 마인드이면 살면서 올바른 방향만 가지면 항상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으로 잘 살아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들의 마지막 결정타가 저의 시간을 멈추게 합니다.

“미안해 엄마. 살면서 내가 이렇게 엄마에게 빨대를 꽂을지 몰랐다. 빨대도 그냥 빨대가 아닌 버블티 큰 빨대 같아. 그런데 엄마, 진짜 건강해라. 내가 그 빨대 값 꼭 갚아줄 거야. 그러니 그 비용 돌려 줄때까지 건강하게 있어야 해. 아들이 우리 엄마 효도할 수 있도록”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것은 수많은 사연과 수많은 녹아내림을 거치는 과정입니다. 세상 어떤 관계와 달리 무조건으로 진행되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자녀의 건강함과 행복한 웃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저에게 ‘감동’이라는 대가를 선사합니다. 제법 잘 키웠다는 자부심이 올라 면서 제 마음에 떠다니는 번뇌를 일순간 녹여버립니다.

‘그래, 인생 뭐 있냐, 이런 거지. 이런 순간을 위해서 사는 거지. 다른 거 부족해도 다 괜찮다. 여전히 건강한 우리가족, 마음이 따듯한 우리 아이들, 그리고 늘 희망가득 찬 나’


갑자기 추워진 겨울날씨로 오들거리던 몸이 후끈해집니다. 내일 어느 순간 또 우리가 괴로움으로 힘들어하겠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순간 순간 만나는 이 감사함으로 버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참 신기하게도 절망의 끝자락에는 늘 희망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인생이 잔인하다 느껴지지만 한편 인생이 가르쳐 주는 귀한 그 무엇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휴로 맞이하는 꿀맛 같은 휴식의 시간… 코로나로 아무 곳도 떠나지 못하지만 오늘은 따듯한 밥 한 끼를 준비해야겠습니다. 당분간 우리 4명 가족이 함께 할 시간이 어려워 질 듯 하니까요.

깜깜하던 새벽이 주홍빛 햇살로 밝아오는 1월의 첫째 날 해돋이를 보며 빌어봅니다.

세상의 모든 축복과 행운을 기원하며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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